[슬기로운 기자생활] 어떤 빈소

전광준 2022. 5. 26.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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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기자생활]

2020년 10월 한 장례식장 로비에 마련된 포토라인에서 취재를 준비하고 있는 취재진들. 채윤태 기자 chai@hani.co.kr

전광준 | 법조팀 기자

들이대는 게 일상인 기자에게도 절대 하기 싫은 취재가 있다. 바로 빈소 취재다. 무엇보다 이물감을 극복하기 힘들다. 다들 고인을 추모하러 온 자리에 혼자 유족을 붙잡고 질문을 던져야 하니 말이다. 정신을 차리고 나면 사람들의 시선이 따갑게 느껴진다. 자괴감도 만만찮다. 짧게는 몇시간, 길어야 하루 이틀 전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에게 ‘고인이 어떤 분인지’, ‘마지막으로 주고받은 연락 내용은 뭔지’, ‘고인의 마지막 식사는 뭐였는지’ 따위를 물어봐야 한다. 가끔 이런 질문에 다시 눈물을 흘리는 유족도 있었다. 사건 공론화를 위한 일이라지만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대형 참사 때는 그나마 다른 기자도 많아 이물감이 덜하지만 일반 사고 때는 훨씬 힘들다. 화재로 손주를 잃은 유족을 만난 일이 있다. 빈소가 차려지기 전이었다. 기자도 두세명뿐이었다. 몇시간 전 사랑하는 손주를 떠나보낸 유족은 당신의 오갈 데 없는 슬픔을 생면부지의 기자에게 수십분 쏟아냈다. ‘이렇게 자세히 듣는 게 맞나’라는 사람의 마음과 ‘더 듣자’라는 기자의 마음이 충돌했지만, 계속 캐물었다. 그 덕에 타사보다 상세한 기사를 쓸 수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은 사라지지 않았다.

산업재해로 숨진 노동자 빈소를 취재할 때는 상대적으로 내적 갈등이 좀 덜하다. 기사화로 고인의 부당한 죽음을 알리고 싶어 하는 유족이 있는 경우가 많아서다. 고인의 생전 이야기에 가슴이 아픈 건 똑같지만, 그나마 ‘기자가 필요한 일’을 한다는 생각에 ‘이렇게까지 해도 된다’ 싶었다. 하지만 기사화를 꺼리는 유족을 만나면 얘기는 달라진다. 종일 장례식장 식당에 멍하니 앉아만 있다 나온 적도 있다. 나름 절절한 내용으로 편지를 써 명함과 함께 전달했지만 연락이 오지 않는 일도 적지 않았다. 빈소 취재는 정말 쉽지 않다.

여러 빈소를 찾다 보니 문득 발견한 공통점이 있다. 주목을 많이 받은 대형 참사 합동 장례식장에는 국회의원, 자치단체장 등이 보낸 근조 화환이 많았다. 그러나 일반 사고나 산재로 숨진 이들의 장례식장에는 화환이 전혀 없는 경우도 많았다. 넓은 빈소에 가족 네댓명만 덩그러니 앉아 있는 모습을 볼 때면 ‘얘기를 좀 들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자의 마음과 ‘얼마나 황망할까’라는 사람의 마음이 차례로 스쳐갔다.

보름 전 방문한 장례식장은 좀 달랐다. 근조 화환이 넘쳤다. 로펌 대표부터 지검장, 고검장 등 검찰 고위직들이 보낸 근조 화환 십수개가 빈소 앞을 장식했다. 압권은 빈소 안 ‘윤석열 대통령’ 명의 근조 화환이었다. 커다란 하얀색 도자기 위에 화환이 놓인, 난생처음 보는 생김새였다.

‘윤석열 라인’이자 차기 검찰총장 후보로도 거론되는 이두봉 인천지검장 장인상 상가였다. 이 지검장은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장이던 2014년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 유우성씨에게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 등을 적용한 기소를 이끌었는데, 대법원은 지난해 10월 이 기소가 ‘공소권 남용’이라고 판단했다. 2010년 기소유예 처분 뒤 별다른 사정변경 없이 기소가 이뤄졌다고 봐서다. 지난해 국감 때 의원들이 대법원에서도 공소권 남용(보복기소)이 인정됐다며 유씨에 대한 사과를 독촉했지만, 그는 사과하지 않았다. 유씨 고소로 지난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이 지검장 등에 대한 수사를 시작했다.

빈소라 그랬을까. 이 지검장에게 명함을 건네며 인사했지만 ‘공소권 남용 인정하나요’라는 말이 차마 나오지 않았다. 귀갓길 내내 ‘빈소에서 할 질문은 아니지’라는 사람의 마음과 ‘그래도 물었어야지’라는 기자의 마음이 충돌했다. ‘멘트를 따오라’는 선배 지시가 따로 없지 않았냐며 위안도 해봤지만 납득이 안 됐다. 사실 지금도 명쾌한 결론은 못 내렸다. 다만 공인에게 공적인 질문을 못 한 건 후회돼 반성의 뜻에서 칼럼을 쓴다. 지검장님, 다음에 만나 뵈면 꼭 질문드리겠습니다.

ligh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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