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칸영화제] 콜센터 실습 나간 고교생의 죽음..우리 사회의 그늘 들추다

김유태 2022. 5. 26.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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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영화제 비평가주간 초청
'다음 소희' 정주리 감독
현장실습 명목에 착취당한
10대들의 절망 다루면서
직장 갑질·불법고용 등
시대 문제로 확장시켜
칸영화제에서 만난 김시은 배우(왼쪽)와 정주리 감독. [사진 제공 = 트윈플러스파트너스·키이스트]
"적당히 하십시다." 칸영화제 진출작 '다음 소희'에서 관객의 표피를 찌르는 말이다. 콜센터로 실습 나간 소희는 부당함으로 절규하고, 고교생 하청 시스템을 수사하는 형사에게 교육청 장학사는 "일개 장학사가 무슨 힘이 있느냐"며 적당함을 요구한다.

혹자에겐 적당한 기준이, 누군가에겐 생의 붕괴로 이어짐을 주장하는 영화 '다음 소희'가 25일(현지시간) 칸영화제에서 공개됐다.

칸영화제엔 '헤어질 결심' '브로커' 등이 진출한 경쟁 부문(황금종려상 후보) 외에도 문제의식을 담은 작품이 주를 이루는 '비평가주간' 영화가 상영되는데, '다음 소희'는 한국 영화사 최초로 비평가주간에 초청돼 현지 호응이 뜨겁다. 칸에서 만난 정주리 감독은 "소희 얘기에 분노하는 마음이 오래 남아야 한다고 생각해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고 영화의 처음을 되돌아봤다.

고교생 소희는 콜센터에 실습을 나간다. 말이 좋아 실습이지 '월급 100여만 원'의 하청직이다. 약정을 해지하는 고객 마음을 돌리는 업무가 주어지고, 수치화된 '약정 해지 방어율'이 실시간으로 전광판에 뜬다. 콜 수 할당량을 못 채우거나 해지 방어율이 낮으면 정식 취업은 없다. 회사의 인원은 670명. 그러나 연간 620명이 퇴사하는 곳. 다시 뽑으면 그만인, 세상의 어두운 현주소다. 정 감독은 "시사 고발 프로그램을 보다 '어떻게 고등학생이 콜센터에서 직접 상담을 하지?'란 생각이 들었다. 실습 명목으로 성년도 되지 않은 아이들이 내몰린다. 취재해 보니 이미 논란이 컸는데 이걸 여태 모르고 있었나 싶어 영화화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다음 소희'엔 신예 김시은 배우가 연기하는 고교생 소희가 극의 1막을 이루고, 배두나 배우가 연기하는 형사 유진이 소희 사후에 수사하는 내용이 2막으로 이어진다. 유진은 소희의 가해자들을 한 명씩 따라가며 소희의 마지막 3일을 추적한다. 유진은 절망하는 세상에 희망일 수 있을까. 정 감독은 "아무리 적은 수의 사람일지라도, 열심히 하면 어딘가에서 응답이 있으리란 믿음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두나 씨는 관객을 사로잡는 독보적인 아우라를 펼치는데, 영화 '도희야'에 이어 협업했다. 두나 씨는 굳건한 동지"라고 설명했다.

소희의 뒷모습으로 시작된 영화는 그의 앞모습을 보여주며 끝난다. 가면 뒤에 남겨진 실루엣이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일 때가 있다. 정 감독은 "소희뿐 아니라 유진도 뒷모습이 자주 나오는데, 어떤 마음은 얼굴보다 뒷모습에서 느껴지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앳된 얼굴의 배우 김시은은, 몰락해 가는 청춘 소희의 민낯을 정확하게 연기한다. 그는 "시나리오를 본 뒤 감독님과 만난 자리에서 '이 영화가 세상에 꼭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꼭 제가 캐스팅되지 않더라도 소희가 세상에 나오길 바라는 마음이었기 때문"이라고 털어놨다. 한 직장의 갑을관계를 현장실습, 취업률, 불법 고용 등 사회 이슈로 확장된다는 점은 이 영화의 최대 매력이다. 실습이란 주제 하나로 사회 전체의 그늘을 조망하는 무시무시한 주제의식이 칸영화제 초청의 동력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동정과 무시 사이에서 어린 아이들은 자란다. 그런 아이들은 표정 없는 얼굴을 하고 있다.

정 감독은 "소희의 이야기이지만 소희만의 이야기가 아니기에 제목을 '다음 소희'로 정했다"며 "이것은 누구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고 덧붙였다.

[칸 =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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