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학생이 하버드 입학을 취소당한 이유 / 박용현

박용현 2022. 5. 26.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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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발][아침햇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 23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한덕수 국무총리 취임식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용현 논설위원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인사 검증 과정에서 불거진 자녀의 스펙 쌓기용 논문 표절·대필 논란이 미국 사회에까지 여파를 미치고 있다. 한 장관의 딸과 이른바 ‘스펙 공동체’로 의심받는 처조카 두 명이 미국의 한 유명 대학에 재학 중이거나 입학 대기 중인데, 이 학교 교내 신문은 이들이 학술지에 실은 논문의 표절 의혹을 지난 19일 크게 보도했다. 미국에서도 일부 계층의 입시용 스펙 쌓기는 만연해 있지만, 표절에 대해서만큼은 유독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

2003년 미국 현지 언론들의 주목을 받았던 사건이다. 뉴저지주 한 고등학교 3학년이던 블레어 혼스타인은 장애를 이겨낸 완벽한 우등생이었다. 만성피로증후군 진단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그는 모든 수업을 집에서 개인 교사에게 받았다. 동료 학생들보다 고급 학습 과정을 더 많이 이수하고 좋은 점수를 얻었다. 그 결과 졸업 성적 1등에 올랐다. 기부금을 모아 빈곤층 학생들에게 졸업파티 드레스를 마련해주는 등 봉사활동도 쌓았다. 올림픽 성화 봉송 주자로도 참여했다.

수석 졸업생이라는 영예는 스펙의 마침표가 될 듯했다. 그런데 동료 학생들은 혼스타인에게 주어진 개인 교습 방식이 공정하지 못하다며 이의를 제기했고, 학교 당국도 이를 받아들여 성적 2등인 학생을 공동 수석 졸업생으로 지명하려 했다. 그러자 혼스타인은 학교 당국을 상대로 집행정지와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그의 아버지는 판사였다. 법원은 학교 당국의 조처는 장애인 차별이라며 혼스타인의 손을 들어줬고 그는 결국 단독 수석 졸업생이 됐다. 이 소송은 전국적인 논란으로 번졌고 혼스타인에게 부정적인 여론이 일었으나, 예정된 하버드대 입학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 듯했다. 사건을 불행한 귀결로 이끈 결정적 계기는 바로 표절이었다. 혼스타인이 몇해 전 지역 신문 청소년란에 기고했던 글들에 표절이 있었던 사실이 밝혀졌고 하버드대는 이를 이유로 입학을 취소했다. 고등학생으로서 저널리즘 글쓰기 방식에 익숙하지 않았다는 해명도 소용없었다.

표절(剽竊)은 ‘도둑질하다’라는 뜻의 두 한자로 이뤄졌다. 남의 독창적 생각과 표현을 훔쳐 자기 것인 양 내세우는 행위다. 학문을 하는 사람이나 배움의 길에 있는 학생에게 정직이란 가치는 무엇보다 중요하고, 그래서 표절은 허투루 다룰 수 없는 문제다. 공론장에 오른 한동훈 장관 딸의 표절 논란에서 분명한 교훈을 새겨야 하는 이유다. 그럼에도 한 장관은 해명 과정에서 교묘한 말들로 표절이라는 심각한 문제의 본질을 흐려놓았다. 우리 사회와 미래 세대에게 유해한 언사로, 분명히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대표적인 게 ‘입시에 사용하지 않았다’는 해명이다. 표절은 표절물을 책이든, 학술지든, 학교 과제물이든, 언론 기고든,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이름으로 공개하는 순간 완성된다. 어떤 용도로 ‘사용’했는지와 무관하다. 혼스타인의 경우 ‘정직성과 성숙성, 도덕성에 의문을 일으키는 행동을 한 경우 입학을 취소할 수 있다’는 하버드대의 방침에 따라 입학이 취소됐다. 표절이 입시와 관련됐는지 여부는 상관없다. 표절은 그 자체로 정직성을 훼손하는 비도덕적·비교육적 행위이기 때문에 이렇게 가혹한 응징을 받는 것이다.

또 표절물의 ‘사용’은 입시에서만 문제 되는 게 아니다. 표절한 책·논문을 출판하거나 학술지·공모전에 내는 순간 피해자가 생긴다. 표절당한 사람은 이미 피해를 본 것이고, 학술지나 공모전 관계자도 평판 저하와 업무방해 등의 피해를 본 것이고, 그 책이나 논문을 본 독자들도 기망당한 피해를 입은 것이다. 입시에 사용될 경우엔 경쟁자들이 입는 피해와 기망당한 학교 쪽의 피해가 추가될 뿐이다.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았다’는 한 장관의 해명 역시 본질을 흐린다. 비록 의혹이 제기된 이후이기는 하지만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았다면 법적인 문제는 해소된다. 저작권 침해의 피해자는 저작권자 혼자이므로 그가 문제 삼지 않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표절은 저작권 침해와 별개의 문제다. 예를 들어, ㄱ 작가의 웹툰을 ㄴ이 내려받아 제멋대로 유통시키면 저작권 침해가 발생하지만, ㄱ이 용서해주면 ㄴ의 저작권 침해에 따른 민형사상 책임은 사라진다. 하지만 ㄴ이 이 웹툰을 자신의 작품인 것처럼 포장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아무리 ㄱ의 용서를 받더라도 표절 작가라는 지탄을 피할 수 없다. 그것을 믿고 본 독자들과 정직한 다른 작가들에게까지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이처럼 저작권 침해와 표절의 법적 의미를 구분하는 태도는 우리나라와 미국의 판례에서도 확인된다. 한 장관의 해명은 이 구분을 교묘하게 흐려 표절 행위의 부도덕성을 가리는 논리다.

또 하나, 대필 의혹이 있다. 대필은 표절의 가장 극악한 유형으로, 그 자체를 범죄화하는 나라들이 늘어나고 있다. 영국은 최근 16살 이상 학생들에게 대가를 받고 대필을 해주거나 이를 주선하는 행위를 범죄로 규정해 처벌하는 법을 만들었다. 오스트레일리아도 지난 2019년 대학 과제 등을 대필해주는 행위를 최고 징역 2년에 처하는 법을 제정했다. 미국의 17개 주에서도 대필 행위는 불법이라고 한다. 이에 비춰 보면, 법무부 장관 인사 검증에서 자녀의 대필 의혹은 쉽게 넘길 수 없는 대목이다.

한 장관 자녀의 경우 표절이 일부 확인됐고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표절·대필 의혹이 여럿이다. 이런 행위를 자녀가 주도적으로 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누군가의 권유·조언을 받았거나 아니면 본인이 개입하지 않은 채 이뤄졌을 수도 있다. 문제의 본질은 자녀의 잘잘못을 넘어선다. 혼스타인 사건을 다룬 한 영국 교수의 <가디언> 칼럼은 이렇게 맺는다.

“한 영리한 소녀가 무너졌다. 왜? 부모가 몰아붙였기 때문이다. 학교가 몰아붙였기 때문이다. 전체 교육 시스템이 몰아붙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것을 탁월함의 추구라고 부른다. 나는 그것을 아동학대라고 부른다.”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말이다. 한 장관도 이런 맥락에서 부모로서 책임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어야 한다. 그랬다면 당사자와 우리 사회 모두 아픈 과거에서 교훈을 얻고 인격적으로, 문화적으로 한 단계 성숙하는 계기가 됐을 것이다. 그러나 한 장관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법기술적 시각과 의혹 제기를 무력화시키면 된다는 정치공학적 대응으로 일관했다. 오히려 표절이라는 부도덕한 행위에 이런저런 변명 거리를 덧대면서 사회적 각성을 무디게 만들었다. 그렇게 정직이라는 또 하나의 가치를 훼손했다. 한 나라의 법무부 장관이 되겠다는 사람이기에 더욱 무책임한 행동이었다.

사족: 김건희 여사의 학위논문 표절 의혹과 관련해 국민대와 숙명여대의 조사 절차가 계속 늘어지고 있다. 학위논문은 표절 문제를 가장 엄격히 다뤄야 할 영역이다. 정치적 배경으로 표절 심사가 왜곡된다면 대학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셈이다. 대통령 부인의 학위논문 표절 의혹에 법무부 장관 자녀의 표절 논란까지 겹쳤다. 이 문제들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는다면 허위와 기망이 시민권을 획득하는 ‘표절 공화국’의 오명을 벗기 어려울 것이다.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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