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한나 빈심포니 대타로 지휘..클래식 공연 대타 전성시대

임석규 2022. 5. 26.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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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빈심포니 내한 공연에서 ‘대타’로 투입돼 지휘봉을 잡게 된 첼리스트 출신 지휘자 장한나. 노르웨이 트론헤임 심포니 상임지휘자인 장한나는 최근 독일 함부르크 심포니 수석 객원지휘자로도 위촉됐다. 장한나 페이스북 화면 갈무리

야구에만 대타(代打)가 있는 게 아니다. 클래식 연주회가 열리는 콘서트홀도 대타는 필수다. 지휘자나 협연자가 무대에 설 수 없는 긴급 돌발 상황에서 연주회를 차질 없이 진행하려면 언제든 대신 나서줄 대타를 늘 염두에 둬야 한다. 최근 코로나19로 지휘자나 연주자들이 불가피하게 ‘펑크’를 내는 경우가 잦아지면서 대타는 더욱 귀한 존재가 되고 있다.

이달 말 내한 공연이 잡힌 오스트리아 빈심포니 지휘자 필리프 조르당이 코로나19 확진자가 되면서 첼리스트 출신 지휘자 장한나가 26일 급하게 대타로 투입됐다. 연주회를 불과 사흘 앞두고 지휘자가 교체된 것이다. 노르웨이 트론헤임 심포니 상임지휘자인 장한나는 최근 유서 깊은 독일 함부르크심포니의 수석 객원지휘자로도 위촉되면서 ‘주가’가 더 올랐다. 한국-오스트리아 수교 130돌을 기념하는 이번 공연은 원래 빈심포니 상임지휘자 안드레스 오로스코에스트라다가 지휘대에 설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가 갑자기 사임하면서 현재 빈 슈타츠오퍼 음악감독이자, 과거에 빈심포니 상임지휘자로 오래 활동했던 필리프 조르당으로 변경되었다. 지휘자가 두 차례나 교체된 이번 공연에 협연자마저 ‘펑크’를 내면서 주최 측을 난감하게 했다. 원래 러시아 태생의 미국 피아니스트 예핌 브론프만이 협연자로 나서기로 했으나 건강 악화를 이유로 내한이 어렵다는 뜻을 전해온 것이다. 결국 미국의 저명한 바이올리니스트 길 샤함이 대타로 나서게 됐다. 대타 지휘자에 대타 연주자의 공연이 되었지만 길 샤함의 ‘이름값’이 높아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이 공연은 인천아트센터(29일)와 부산시민회관(31일), 서울예술의전당(6월1일)에서 열린다.

국립심포니도 협연자가 코로나19 확진자가 되면서 부랴부랴 대타를 섭외해야 했다. 오는 29일 서울 예술의전당 협연 무대에 오르기로 했던 러시아의 신예 피아니스트 알렉산드로 말로페예프가 코로나19에 감염됐기 때문이다. 젊은 연주자 말로페예프의 세계적인 명성 때문에 좌석은 이미 거의 매진된 상태였다. 국립심포니는 서둘러 대타 물색에 나섰다. 말로페예프에 버금가는 연주자를 찾아야 했다. 백방으로 수소문한 끝에 2016년 퀸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루카스 본드라첵이 함께할 수 있게 됐다.

서울시향의 지난 4월 공연에서 대타로 투입돼 호평받은 지휘자 바실리 페트렌코. 러시아 태생으로 영국 로열 리버풀 필하모닉을 이끌었다. 서울시향 제공

갑작스럽게 투입된 대타가 본래 연주자보다 더 환호를 받는 경우도 있다. 서울시향은 지난달 안톤 브루크너의 교향곡 2번을 지휘하려던 덴마크 출생 지휘자 토마스 다우스고르가 한국의 코로나 상황을 우려해 내한을 취소하는 바람에 대신 연주할 이를 찾아 나섰다. 어렵게 일정을 맞춰 롯데콘서트홀 무대에 선 지휘자는 영국 로열 리버풀 필하모닉을 이끌었던 바실리 페트렌코였다. 공연이 끝난 뒤 만족감을 드러낸 관객들이 많았다. 이런 이유로 러시아 태생인 바실리 페트렌코는 이후 서울시향 차기 지휘자 후보군 가운데 한 명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케이비에스(KBS)교향악단의 지난달 제777회 정기연주회도 대타 연주자가 더 빛났던 공연이었다. 원래 캐나다 토론토 심포니를 이끌던 피터 운지안이 지휘봉을 잡을 예정이었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내한을 취소했다. 교향악단 공연기획팀은 해외 대형 기획사 쪽을 접촉해 공연 날짜 전후로 아시아 공연이 잡힌 지휘자를 수소문했다. 마침 독일 베를린 콘체르토하우스 음악감독인 거장 크리스토프 에센바흐가 엔에치케이(NHK) 교향악단을 지휘하기 위해 일본을 방문할 예정이었다. 이미 지난해 11월 케이비에스교향악단과 호흡을 맞춘 바 있는 에센바흐는 갑작스러운 연주 요청에도 흔쾌히 수락했다.

섭외만 되면 다 해결될 듯 보이는 대타 투입 공연엔 몇 가지 더 고려해야 할 점이 있다. 손유리 케이비에스교향악단 공연기획팀장은 “일정을 간신히 맞췄더라도 원래 예정된 연주곡을 크게 변경하지 않는 선에서 연주가 가능한지, 항공 스케줄까지 점검해야 하는 등 체크할 게 한둘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공연 주최 측 입장에선 피가 마르는 일이다. 간혹 대타 연주자가 곡목 변경을 요구하기도 하는데, 이럴 경우 짧은 시간 안에 악보를 준비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지난달 케이베이스(KBS) 교향악단 정기연주회에서 대타로 지휘봉을 잡은 피아니스트 출신 거장 크리스토프 에센바흐.

올해 통영국제음악제(3월25~4월3일)에서는 ‘대타의 대타’가 투입되기도 했다. 피아니스트 데죄 란키가 당시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던 국내 상황을 우려해 공연을 취소하자 주최 쪽은 음악제 다른 프로그램으로 출연한 소프라노 율리야 레즈네바를 출연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갑자기 몸 상태가 안 좋아진 레즈네바가 대타로 설 수 없게 되자 결국 음악제 다른 무대에 섰던 소프라노 박혜상이 '대타의 대타'로 나서야 했다. 이번 음악제에선 쾰른 체임버 오케스트라에 대한 해외 입국 단체 격리 면제가 이뤄지지 않는 바람에 케이아트(K’ARTS)신포니에타로 바뀌는 등 ‘대타 오케스트라’가 등장하기도 했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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