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발유·경유 2000원 시대..美 주유소선 일반 휘발유 안판다

시카고=고재원 기자 2022. 5. 26.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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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탄소중립 실현 '다크호스' 바이오에탄올 판매 주유소 현지 르포
미국 일리노이주 채나혼에 위치한 한 주유소. 왼쪽이 바이오에탄올 함량이 가장 높은 E85다. 다음으로 E15, 나머지 3개는 모두 E10 연료다. 옥탄가에 따라 가격의 차이가 존재한다. 시카고=고재원 기자 jawon1212@donga.com

25일(현지시간)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인근 소도시 채나혼의 한 주유소. 미국 자동차회사 쉐보레의 준대형휘발유 차량 '임팔라'가 주유를 위해 주유 기계로 다가왔다. 차에서 내린 운전자가 주유 기계 앞에 선다. 주유 기계에는 다섯 종류의 연료 선택지가 있다. 고유가 시대, 가장 저렴한 ‘E85’란 연료를 선택한다. 1갤런 당 4.72달러, 우리 돈으로 약 5972원이다. 리터로 따지면 1리터당 약 1579원 정도의 금액이다. 선택지 중 가장 비싼 ’옥탄가 92 무연휘발유(Super Unleaded 92)’의 가격인 1갤런 당 5.82달러(약 7366원)와 비교해 약 1달러(약 1265원)나 차이가 난다. 

E85는 옥수수나 사탕수수 등 식물체를 수확해 세포벽을 이루는 셀룰로스를 당으로 분해한 뒤 효모로 발효시켜 만든 바이오에탄올을 기반으로 한 연료다. 휘발유 15%에 바이오에탄올을 85% 섞어 제조한다. 바이오에탄올 함량 비율이 15%면 E15, 10%면 E10으로 불린다.

가격 경쟁력은 바이오에탄올의 가장 큰 장점이다. E85 연료를 '임팔라'에 가득 주유한 주유기 모니터에는 39.99달러(약 5만 579원)라는 금액이 표시됐다. E10에 해당하는 옥탄가 92 무연휘발유를 주유할 경우 가격은 49.31달러(약 6만2549원)다. E10 연료 중 가장 소비량이 많은 옥탄가 87 무연휘발유의 가격은 1갤런 당 5.12달러(약6493원)로 같은 양을 주유할 경우 43.38달러(약 5만5010원)다. 

미국 주유소체인 ‘쏜톤’의 빌리 얀센 지역매니저는 “바이오에탄올의 함량이 높을수록 연료의 가격이 떨어진다”며 “약 15만개에 달하는 미국 내 주유소 중 98%가 의무적으로 바이오에탄올을 휘발유에 섞은 연료를 판매하고 있을 정도로 바이오에탄올은 유가 관리를 위한 핵심 연료 첨가제”라고 말했다. 

E85 연료를 차량에 주입하고 있다. 고재원 기자 jawon1212@donga.com

 

미국은 지난 2005년 바이오에탄올을 의무적으로 연료에 혼합하는 ‘에너지정책법’을 도입했다. 1, 2차 석유파동에서 드러난 석유자원 공급의 취약성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이었다. 17년이 지난 현재 미국 주유소에서 바이오에탄올이 첨가되지 않은 연료를 찾을 수 없다. 

특히 미국은 국제 고유가와 자국 내 인플레이션에 대응하는 수단으로 여전히 바이오에탄올을 활용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4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유가 급등에 대응하기 위해 올 여름 바이오에탄올이 15%인 E15 연료에 대한 판매 허용방침을 밝혔다. E15는 여름철에 사용할 경우 스모그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있어 그동안 판매가 금지돼왔다. 백악관은 이번 조치로 1갤런 당 10센트 가량의 유가 상승 억제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미국도 고유가 시기를 맞고 있다. 지난 3월 6일 미국자동차협회에 따르면 이날 미국 전역 주유소의 휘발유 평균 가격은 갤런당 4.009달러로 국제 유가가 최고 기록을 쓴 2008년 7월 이후 가장 높은 금액을 기록했다. 시카고=고재원 기자 jawon1212@donga.com

바이오에탄올의 또 다른 장점은 친환경성이다. 화석연료보다 대기오염 물질이 적어 환경보호에도 도움이 된다. 산소 함량이 적어 불완전 연소에 따른 일산화탄소 배출이 많은 휘발유와 달리 바이오에탄올은 산소를 포함하고 있어 불완전연소가 거의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또 바이오에탄올의 원료가 되는 곡물을 재배하는 과정에서 이산화탄소 흡수가 이뤄지고 휘발유 엔진 연소과정에서 이상 폭발을 일으키지 않는 한계 수치인 옥탄가가 높아 엔진의 열 효율이 높다는 점도 친환경 연료의 근거로 제시된다.

미국은 이런 점들을 고려해 인류가 맞닥뜨린 기후변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탄소중립 실현의 첨병으로 바이오에탄올을 내세우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기후 공약의 핵심으로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내세웠다. 탄소중립은 온실가스 배출량과 흡수량이 같아 순배출량이 ‘제로(0)’가 되는 것을 뜻한다. 

목표 실현을 위해 내연기관차들의 전기차 전환이 필요하나 2019년 기준 미국 내 2억 7600만대에 달하는 차량들을 단 시간 내 모두 전기차로 전환하는 것은 쉽지 않다. 전기차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바이오에탄올이 내연기관차들의 탄소배출을 줄이는 디딤돌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 에너지부 산하 아르곤국립연구소 분석에 따르면 바이오에탄올은 일반 휘발유 연료에 비해 탄소배출을 약 44~46% 감소시킬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26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연설 중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 제공

바이오에탄올은 사탕수수, 옥수수, 감자 등으로 만드는 만큼 화석연료인 석유자원처럼 고갈될 우려도 없다. 기존 자동차 엔진구조를 바꾸지 않아도 된다. 미국 기준 300달러(약38만610원)의 비용이 드는 부품만 추가로 설치하면 된다. 기존 주유소를 충전소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폐 건강 관련 단체인 미국폐협회도 바이오에탄올을 대기오염과 같은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주시하고 있다. 안젤라 틴 미국폐협회 부회장은 “바이오에탄올은 내연기관 자동차의 옥탄가를 높이는데 사용되는 방향족 등 유해물질을 줄여 대기환경과 국민 건강 개선, 의료비 절감에 기여할 수 있다”며 “바이오에탄올의 함량비율이 높아지면 환경도 더 좋아진다”고 말했다. 스테펜 뮬러 미국 시카고 일리노이대 교수 연구팀은 한국에서 유통되는 연료 샘플을 분석한 결과 한국이 E10 연료를 사용하면 연간 온실가스 150만t을 감축하고 E20 연료를 사용하면 연간 270만t까지 배출량을 줄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2019년 내놓기도 했다. 

바이오에탄올의 단점은 있다. 바이오에탄올을 휘발유에 10% 혼합할 경우 단위연료당 주행거리를 의미하는 연비가 1~2% 나빠질 수 있다. 권용주 국민대 자동차운송디자인학과 교수는 “이 정도의 연비 감소는 운전자의 주행습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정도”라며 “운전자도 감소를 거의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고유가시대 바이오에탄올은 미국의 2050 탄소중립 목표 실현의 다크호스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을 포함해 바이오에탄올을 도입 중인 57개국의 소비자들의 선택도 받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마켓리서치퓨처’에 따르면 전 세계 바이오에탄올 연료 시장은 2018년 기준 약 786억달러(약99조7198억원)로 분석된다. 2027년에는 2020년과 비교해 5.8% 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아직까지 한국 소비자들은 바이오에탄올 선택권이 없다. 바이오에탄올 도입 검토가 2000년대 중반 집중적으로 이뤄졌지만 원료를 대부분 수입해야 하고 정유업계의 휘발유 수요 감소 우려 등 국내 산업 생태계 보호를 위해 바이오디젤 혼합을 먼저 선택했다. 김학수 미국곡물협회 한국사무소 대표는 “한국도 2050년 탄소중립을 위해 바이오에탄올 혼합의무 제도를 검토해야 할 시점”이라고 밝혔다.

이달 25일(현지시간) 미국 일리노이주 채나혼에 위치한 쏜톤 주유소. 바이오에탄올이 혼합된 휘발유만 판매한다. 시카고=고재원 기자 jawon1212@donga.com

[시카고=고재원 기자 jawon121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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