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누구나 '약자'일 수 있다.. 정신과 의사가 들려주는 '사람들'의 이야기

채민석 기자 2022. 5. 26.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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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에는 사람 도서관(Human Library)이 있다.

이 책을 읽은 뒤 일상에서 나와 다른 누군가를 만났을 때, 또는 내 가치관으로 누군가를 이해하기 힘들 때 그 사람을 판단하기에 앞서 잠시 멈추고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 있다면, 그렇게 한다면 아마 이 책을 먼저 읽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과 권준수 교수의 말처럼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정말로 그만큼 나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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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정신과 의사의 사람 도서관ㅣ나종호 지음ㅣ아몬드ㅣ204쪽ㅣ1만7000원

덴마크에는 사람 도서관(Human Library)이 있다. 여느 도서관처럼 이곳에서는 일정 기간 동안 무료로 책을 대여해준다. 차이가 있다면 책이 아닌 ‘사람’을 대여 해준다는 점이다. 대여 기간도 좀 다르다. 1-2주가 아닌 30분 동안 내가 빌린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뉴욕 정신과 의사의 사람 도서관' 표지./도서출판 아몬드 제공

소수 인종부터 에이즈 환자, 이민자, 조현병 환자, 노숙자, 트랜스젠더, 실직자 등 다양한 사람이 그들의 값진 시간을 자원한 덕에 이 도서관은 유지된다. 타인을 향한 낙인과 편견, 혐오를 완화하고 이해와 존중, 공존의 의미를 되새기고자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이제 전 세계 80여개 나라에서 운영되고 있다.

이른바 사회적 약자 또는 소수자라 불리는 사람은 나와는 전혀 다른 세상에 사 는 사람일까. 내가 그 용어로 호명될 일은 단 한 번도 없을까. 그게 꼭 그렇지 않다. 저자는 때에 따라, 장소에 따라, 상황에 따라, 누구나 약자의 위치에 설 수 있다고 말한다. 뉴욕 정신과 의사이자 사람 도서관 사서인 저자의 안내를 따라 더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삶에 공감하며, 마침내 그들과 연결되는 일은 다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닌 바로 나 자신을 위한 일이다.

삶은 멀리서 보면 비극으로 점철된 단막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희극과 비극이 엇갈리는 연속극이다. 책의 1장 ‘뉴욕에서 만난 사람들’을 읽으면 확실히 그렇다. 1장에는 저자가 레지던트 시절 만난 환자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한순간에 노숙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맨해튼의 잘 나가는 변호사, 약물 중독인 줄 알았으나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지속적 애도장애’를 겪는 중이던 할아버지, 유일한 혈육을 믿고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가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떠안게 된 청년까지. 저자는 노숙자’, ‘약물 중독’, ‘이민자’와 같은 단어에 미처 담기지 못한 어떤 이들의 삶을 들여다본다.

2장에서는 ‘공감’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꼭 같은 경험을 하지 않아도 상대에게 공감하는 것이 가능할까? 이 질문에 회의적인 답을 내놓던 저자의 생각을 바꿔준 일을 언급한다. 저자는 공감 능력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학습과 의지, 노력에 의해 발달시킬 수 있는 영역이라고 말한다. 공감의 가능성을 일깨우는 이 책을 읽는 일이, 어쩌면 공감 능력 회복을 위한 가장 첫 걸음일 수 있다.

3장에서는 낙인의 세 가지 형태를 알아보고 조현병, 조울증, 중독 그리고 자살을 둘러싼 흔한 낙인과 오해가 어떤 모습으로 당사자들을 습격하는지,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다룬다. 정신과 의사로서 저자는 정신 질환을 향한 낙인과 혐오를 해소하기 위해 책의 상당 부분을 할애한다.

이 책을 읽은 뒤 일상에서 나와 다른 누군가를 만났을 때, 또는 내 가치관으로 누군가를 이해하기 힘들 때 그 사람을 판단하기에 앞서 잠시 멈추고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 있다면, 그렇게 한다면 아마 이 책을 먼저 읽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과 권준수 교수의 말처럼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정말로 그만큼 나아질” 것이다.

저자 나종호는 서울대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자살 예방에 기여하는 정신과 의사가 되고 싶어 메이요 클리닉과 뉴욕대학교에서 정신과 레지던트, 예일대학교에서 중독 정신과 전임의(펠로우) 과정을 마쳤다. 현재 예일대학교 의과대학 정신의학과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는 OECD 국가 중 자살률은 1위이지만 항우울제 처방률은 최하위인 한국의 정신 질환과 치료에 대한 낙인을 완화하고 정신과 진료의 문턱을 낮추기 위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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