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가 울리자 '두두두두' 총소리..42년 전 5월 '그날' 재현

이수민 기자 2022. 5. 26.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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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기념재단-한국방송공사 '그날의 애국가' 영상물 제작
26일 오후 광주 동구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 5·18기념재단과 한국방송공사의 공동프로젝트인 '그날의 애국가' 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2022.5.26/뉴스1 © News1 이승현 수습기자

(광주=뉴스1) 이수민 기자 =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1980년 5월21일 오후 12시50분. 광주 금남로에 '계엄철폐'와 '전두환 타도'를 외치는 수백명의 시민들이 모여 있다.

맞은편 전남도청 앞에는 장갑차 여러 대와 무장한 군인들이 서있다. 시위대와 군인들은 대치 중이었고 시위대는 돌과 화염병을 던지고 군인들은 이에 맞서 최루탄을 쏜다.

잠시 뒤 애국가가 울러 퍼진다. 시위대와 군인 모두 행동을 멈춘다. 도청건물 위에 걸린 태극기를 향해 서서 가슴 위에 손을 올린다. 애국가를 따라 부른다. 눈물을 흘리는 한 여성도 있다.

2절이 끝나갈 무렵, 갑자기 '탕' 소리가 난다. 시민 한명이 픽 쓰러진다. 노래를 부르던 청년은 "악!" 비명을 지른다.

"두두두두, 두두두두" 콩 볶는 듯한 총소리가 계속해서 이어진다.

26일 오후 광주 동구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 5·18기념재단과 한국방송공사의 공동프로젝트인 '그날의 애국가' 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그날의 애국가'는 집단발포가 시작된 80년 5월 21일 오후 1시 이후 사라진 4시간을 영상으로 재현하는 프로젝트이다. 2022.5.26/뉴스1 © News1 이승현 수습기자

5·18기념재단과 한국방송공사(KBS)가 5·18민주화운동 42주년을 기념해 제작한 '그날의 애국가' 영상 상영회가 26일 오후 광주 동구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 열렸다.

'그날의 애국가'는 집단발포가 시작된 80년 5월 21일 오후 1시 이후 사라진 4시간을 영상으로 재현하는 프로젝트이다. 80년 당시 상황을 재현한 작품으로 재단이 갖고있던 사진과 영상 등 아카이브 자료가 활용됐다.

영상은 도청 앞 첫 집단발포 장면을 뒤로하고 금남로 거리에서 살아남아 42년 전의 기억을 생생하게 안고 사는 이들로 이어진다.

시민방송반 소속 차명숙씨(당시 19세·여)와 전남매일신문 사진기자 나경택씨(당시 32세), 11공수여단 63대대 중사였던 이모 중사(당시 27세)가 그 주인공이다.

영상 속 세 사람은 각자 애국가가 울리기 직전과 발포 중, 발포 후의 기억을 떠올리며 기억의 조각을 맞춰간다. 역사 속 '사라진 4시간'이 영상과 목소리로 42년 만에 수면 위로 떠오르는 순간이다.

이 중사는 42년 전 그날 장갑차 오른쪽 첫번째 열에서 시민들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다가 돌진하는 버스를 조준했다.

그는 "시민들이 던진 화염병이 장갑차 아래에 떨어졌다. 차를 빨리 빼라고 군인들끼리 이야기하고 있는데, 돌에 맞기도 했다. 분노가 쌓였고 곧장 발포했다"고 증언했다.

시민방송반 차명숙은 "애국가가 2절까지 나온 상황이었는데 갑자기 발포가 이뤄졌다"며 "갑작스러운 상황에 모두가 쓰러지고 죽어가는데 시민방송반 오빠 중 하나가 내 손목을 잡아 끌면서 골목으로 숨게 됐다"고 기억을 꺼냈다.

26일 오후 광주 동구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 5·18기념재단과 한국방송공사의 공동프로젝트인 '그날의 애국가' 영상 상영회가 개최되고 있는 가운데 제작자 이조훈 감독이 소감을 밝히고 있다. 2022.5.26/뉴스1 © News1 이승현 수습기자

나경택씨는 발포 직후의 상황을 회상했다. 그는 총을 피해 인근 여관 건물 5층으로 올라갔고, 쓰러진 사람들을 봤다고 기억해냈다.

영상 말미, 세 사람은 각각 저격했던 버스의 운전사와 자신을 살려준 방송반 오빠,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은 발포 장면의 사진과 영상을 찾는다. '목격자를 찾습니다' 문구와 함께 작품은 끝이 난다.

1980년 5월21일 집단발포는 오후 1시부터 5시 사이 약 4시간동안 이어졌다. 애국가가 울리고 잠시 뒤 군인들이 시민들을 향해 조준사격 했지만 이날에 대한 현장 사진과 영상 기록은 42년이 지난 현재까지 단 1건도 발견되지 않은 상황이다.

조진태 5·18기념재단 상임이사는 26일 열린 상영회에서 "5·18 당시 청년들은 '아따 우리 애국 한번 해봅시다'하고 거리에 나왔다. 그 '애국' 정신이 담긴 것이 '애국가'다"며 "이 영상기록을 통해 대한민국을 향한 애국정신, 그 주인공을 다시금 조명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어 "영상 기록의 중요성을 다시금 느꼈다. 남아있지 않은 그 현장을 생생하게 재현했으니 그날에 안계셨던 분들이 함께 감상해주셨으면 하고, 그날의 기억을 갖고 계신 목격자 분들도 나타나주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제작자인 이조훈 감독은 "세 사람의 증언을 토대로 영상화 작업을 하면서 서로의 시선에서 부족한 증언을 채웠고, 얽히고 설킨 기억을 통해 발포 순간의 진실에 한발짝 다가갔다고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수많은 증언이 있을테니 이후의 작업에도 증언을 보태주시면 발포의 시작과 끝, 사라진 4시간을 계속해서 조명하겠다"고 말했다.

'그날의 애국가'는 오는 6월30일까지 광주 동구 5·18민주화운동기록관 3층 영상실에서 시민 누구나 관람할 수 있다.

breath@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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