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새가 누렁이와 사랑에 빠지는 일..송미경 책에선 가능하다

전수진 2022. 5. 26.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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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미경 작가. 경기도 일산 작업실에서 신간을 들어 보이고 있다. 김현동 기자


개와 새가 사랑에 빠지는 일이, 송미경 작가의 그림책에선 가능하다. 참새와 누렁이가 사랑 싸움을 벌이다 뽀뽀하며 화해하는 게 이렇게까지 예쁠 일인가 싶을 정도로, 사랑스럽다. 어른을 위한 그림책 『오늘의 개, 새』(사계절) 이야기다. ‘다름’이 ‘틀림’이 아닌 사랑이 되는 세계를 그려낸 송 작가를 최근 경기도 일산 그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작업실엔 그가 아끼는 다양한 디자인의 의자들과, 그의 작업 도구인 만년필, 그가 기르는 식물들이 가득하다. 다른 존재들이 나름의 질서를 이루며 아늑함을 자아낸다. 이곳에서 송 작가는 최근엔 유아를 위한 그림책 『둥둥 북을 쳐요』(한림출판사)를 펴내는 등, 다채로운 다작을 해왔다. 개와 새의 사랑 이야기는 그가 재미를 위해 그리던 낙서의 일부였다고. 이를 『오늘의 개, 새』라는 책으로 세상 빛을 보게 한 공신인 사계절 출판사의 김진 편집자도 함께했다. 송 작가는 “마음이 복잡해서 괴롭고, 시간이 빨리 갔으면 싶을 때가 다들 있지 않느냐”며 “그럴 때 펼쳐보는, 친구같은 책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오늘의 개, 새』 중 일부. [사계절 출판사 제공]


개와 새가 어떻게 사랑을 하느냐는 생물학적 지적은 넣어두자. 송 작가는 “인생엔 농담이 필요하다”며 “살다보면 가치관보다도, 서로 농담이 통하는 사이가 더 소중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송미경 작가는 만년필로 작업한다. 김현동 기자
태생 초기의 캐릭터들. 김현동 기자

Q : 왜 하필 개와 새일까요?
A : “사춘기때부터 참새를 사인 옆에 같이 그리곤 했어요. 참새는 세상에서 왠지 가장 근심이 없는 존재일 것 같지 않나요? 개는 어린 시절 기르던 복실이라는 누렁이에서 떠올렸고요. 좀 특이한 강아지였어요. 개인데도 항상 골똘히 뭔가 생각에 잠겨있었죠. 새끼도 다섯마리나 낳았는데 뭔가 항상 자기만의 세계에서 사색하는 개였달까요. 두 캐릭터를 그냥, 낙서삼아 그렸는데 제 아이들도 재미있어 하더라고요. 저도 즐거웠고요. 그렇게 캐릭터를 만들어놓으니 둘이 서로 싸움도 하고 사랑도 하고 알아서 성장했죠.”

송미경 작가가 중앙일보 독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 전수진 기자


개와 새의 사랑은 어떻게 되나요? 설마 결혼에도 골인하나요?
A : “그건 상상에 맡길께요(웃음). 후속 책도 나중에 내겠지만 일단 지금 제 노트 안에선 개와 새가 각자 가족의 반대 때문에 가출을 해요. 새가 개에게 ‘우리 부모님이 나를 호적에서 파겠다고 하셨어’라고 하니까 개가 ‘어 그럼 우리 이제 자유의 몸이네’라고 오히려 좋아하는 스토리도 있답니다(웃음). 개는 곧 작가로 데뷔를 하는데 첫 책이 ‘미친 새 보고서’에요. 개는 새를 사랑해서, 자기가 가장 아끼는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파고든 건데 새는 상처를 받죠.”

Q : 개와 새라는 다른 존재들이 사랑한다는 게 사랑스럽습니다.
A : “모든 관계는 나와는 다른 타자와 이루는 거죠. 인간관계뿐 아니라 제 앞의 이 만년필과 저, 제 옆의 화분과 저, 다 다른 존재니까요. 그러다보니 독자분들도 여러 각도로 대입해서 읽어주시는 것 같아요. 서로를 받아들인다는 건 무수한 오해를 뚫고 하게 되는 일이니 더욱 대단한 것 같아요.”

송미경 작가 작업실은 각종 자료와 책, 의자들로 아늑하다. 김현동 기자

Q : 만년필로 작업을 하신다는 점이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A : “어린 시절 삼촌이 스탠드를 켜놓고 전기포트로 커피를 끓인 뒤 만년필로 시를 적곤 하셨어요. 곁에서 제가 보고 있으면 설탕과 프림만 타서 주시던 것도, 만년필 쓰는 법 알려주시던 것들이 어린 시절 소중한 추억이죠. 저에게 만년필은 나만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마법을 가진 재미있는 도구였어요. 만년필이라는 존재 자체가 편하진 않지만 흥미롭죠. 너무 힘을 줘도 안 되고, 관리도 자주 해줘야 하지만 그만큼 흥미로워요. 서로가 서로에게 길을 들여야 쓸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죠. 만년필로 쓰다보면 가만히 있으면 번지니까 계속 뭔가를 쓰거나 그리고 있어야 한다는 것도 재미있고요.”
상상력의 원천이 궁금합니다.
“몸이 강한 편은 아니어서 병치레를 자주 했어요. 열이 자주 났어요. 나중엔 엄마의 정성 덕에 우량아가 되긴 했지만(웃음). 이불 덮고 누워있으면서 공상하는 걸 좋아했어요. 벽지에 있는 동물 무늬 보면서 상상하고, 낙서 그리는 걸 좋아했어요. 상상을 많이 하다보니 마음이 가득해질 때, 낙서로 덜어내요.”

Q : 작업실에 아끼는 물건들이 가득한 느낌이에요.
A : “소중한 물건일수록 소중히 다뤄주고 자주 써주는 게 좋아요. 만년필은 관계에 대해서 생각하게 해주기도 하죠. 자주 쓰지 않으면 흐름이 막혀버리는 게 관계하고도 닮았어요. 만년필에 대한 에세이집도 따로 준비할 정도로 좋아해요. 만년필만큼 또 좋아하는 게 의자에요. 요즘 유행하는 ‘반려’를 저는 의자에 붙이고 싶어요(웃음). 의자라는 가구는 특별하지 않나요? 의자는 누군가 한 명이 앉기 위해 디자인 되는 거라서 그런지, 가장 사람이 떠오르는 가구인 것 같아요. 부자여도 가난해도 누구나 자기 의자 하나는 가질 수 있고요. 빈 의자를 보면 주인을 기다리는 듯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참 쉽게 버리는 가구이기도 하고요.”

Q : 독자분들에게 전하고픈 메시지 들려주세요.
A : “모두들 많이 웃었으면 좋겠어요. 우리 모두가요. 즐겁게 재미있게 농담도 많이 하면서 많이 웃는 삶을 사시길 바래요.”

위트있는 장면이 가득한,『오늘의 개, 새』. [사계절 출판사 제공]
[사계절 출판사 제공]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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