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의사에 예술가까지.. 썩어 문드러진 우리네 풍경('그린마더스클럽')

정덕현 칼럼니스트 2022. 5. 26.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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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마더스클럽'이 담은 엇나간 사회, 병드는 아이들 앞에 엄마들은

[엔터미디어=정덕현] 썩지 않은 곳이 없다? 이은표(이요원)는 교수 험담 좀 했다고 임용을 앞두고 물먹은 인물이다. 하지만 그 교수가 다시 전화를 걸어온다. 임용을 미끼로 또 하녀처럼 부려먹으려는 심산이다. 이은표라는 인물을 따라가면 거기 썩은 교수 사회가 보인다. 실력과 노력이 아니라 밀어주고 당겨주는 계파로 누군가는 임용되고 누군가는 배제되는 시스템이다. 이런 시스템에서 제대로 된 학문의 탐구가 될까 싶다. 심지 곧은 이는 밀려날 테고 그런 이가 학생들을 가르칠 기회는 박탈될 테니. 그렇게 배운 학생들은 또 그 시스템 안에서 얼마나 좌절을 겪을까.

임용이 좌절되고 아이에게 올인하는 이은표는 아들 동석이 영재라는 사실을 알고는 그에게 스트레스를 주기 시작하고, 그를 통해 무너진 자존감을 이 초등맘클럽에서 되찾으려 한다. 하지만 결국 그건 부메랑처럼 이은표에게 또 다른 비극으로 돌아온다. 동석이 입을 다물어버리는 '함구증'에 빠져버린 것. 부모의 욕망이 아이의 비극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은 이은표는 자신을 되돌아보고 후회하며 아이 교육에 대한 집착을 버린다.

이제 종영을 앞두고 있는 JTBC 수목드라마 <그린마더스클럽>을 되돌아보면,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가 결국은 곳곳에 썩은 내가 나는 사회의 시스템에 대한 고발이고 그로 인해 파괴되는 건 그들만이 아니라 애먼 아이들까지라는 것이다. 그나마 드라마가 희망으로 꺼내놓은 건 엄마라는 위치다. 썩은 시스템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본인들도 그 흐름에 뛰어들었지만 막상 그것이 아이들을 병들게 만들고 있다는 걸 발견한 엄마들. 그들이 무언가 새로운 선택을 하는 것이 <그린마더스클럽>이 하려던 이야기였다.

이은표가 교수 사회의 시스템을 고발하는 인물이라면, 변춘희(추자현)는 그저 장밋빛 인생이 펼쳐질 것 같은 의사 남편에 대한 막연한 로망을 품은 사회의 어두운 민낯을 드러내는 인물이다. 처음에는 상위동 최고의 핵인싸로 딸 교육도 누구나 부러워할 정도로 잘하고 있는 엄마처럼 보였지만, 차츰 그 초라한 실체가 드러난다. 남편은 의사지만 도박에 빠졌고, 그 집안은 변춘희를 며느리로도 대하지 않는다. 가산을 모두 탕진해 아이 교육비도 없게 되자 변춘희는 과거 간호사였던 경험을 가져와 프로포폴 같은 불법 시술에도 손을 댄다.

게다가 범법행위까지 하면서 아이 교육에 스트레스를 줬던 변춘희는 딸 유빈이 자꾸만 거짓말을 하는 정신적인 문제를 드러내자 좌절하고, 아이 교육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도박에만 빠진 남편에 절망한다. 결국 남편에게 이혼장을 내밀지만, 불법 의료행위가 적발되어 형사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자 그는 해외로 도주하려다 결국 붙잡힌다. 의사 남편에 대한 로망? 그딴 건 변춘희에게는 없다.

한편 '바른 교육'에 대한 소신을 드러내며 깨어있는 엄마처럼 보였던 김영미(장혜진) 역시 그것이 일종의 허영이었다는 걸 그가 재혼한 영화감독 남편 오건우(임수형)의 범죄행위를 알게 되면서 깨닫는다. 예술가인 척 했지만 서진하(김규리)의 누드사진을 찍고 불법 유출한 오건우는 심지어 김영미가 없는 사이 아이들을 학대하는 끔찍한 일까지 저지른다.

교수, 의사, 예술가. 어쩌면 우리 사회에서 교육의 목표가 될 정도로 꿈꾸는 이러한 직종을 가져와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그들의 실체를 꺼내놓은 건 우연이 아닐 게다. 그것이 <그린마더스클럽>이 지목하고 있는 우리네 교육이 처한 문제의 중요한 원인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학문이나 사람을 살리는 인술, 나아가 우리네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예술이 거기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그런 막연한 로망이 투영된 직종에 대한 욕망만 꿈틀댈 뿐이다.

그래서 이런 엇나간 시스템이 만들어내는 비뚤어진 교육열로 아이들은 하나둘 병들어간다. 입을 다물고, 거짓말을 일삼고, 학대받는다. 이런 아이들이 커서 제대로 된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을 지를 의심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결국 아이들이 무너지는 걸 보며 엄마들이 나서지만 이들 역시 함께 무너져간다. 결국 그건 가정이 무너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린마더스클럽> 같은 폼 나고 있어 보이는 엄마들의 커뮤니티란 환상에 가깝다. 그건 어떻게든 이 이상한 시스템 속에서 살아남으려 발버둥치지만 결코 그게 이뤄지지 않아 쏟아져 나오는 절규들만 가득하기 때문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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