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법사위원장이 뭐길래

신지홍 입력 2022. 5. 26.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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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취임식 초청된 시민들 속속 입장 (서울=연합뉴스) 이정훈 기자 =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이 열리는 10일 오전 행사장이 마련된 국회의사당으로 시민들이 입장하고 있다. 2022.5.10 uwg806@yna.co.kr

(서울=연합뉴스) 신지홍 논설실장 = 박근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 당시 검사 역할인 탄핵소추 위원장은 각각 현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맡았다. 이들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위원장이었기 때문이다. 탄핵소추는 법사위 소관 업무다. 단원제 국회 법사위원장의 막강한 파워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 법사위는 흔히 '상임위의 상임위'로 불린다. 법무부와 법제처, 감사원, 공수처 등 부처의 소관 사항은 물론, 다른 상임위를 거친 법률안의 체계ㆍ형식ㆍ자구를 심사하는 위원회여서다. 법적 권한을 넘어 입법 취지를 훼손할 정도로 법안 내용을 건드리거나, 장기간 붙잡아 좌초시키는 경우도 흔하다. 법사위가 상ㆍ하 양원제에서 하원의 의결안을 거부할 수 있는 '상원(上院)'에 종종 비견되는 까닭이다. 입법의 최종관문인 국회 본회의에 버금가는 파워다.

입법의 양대 관문인 국회의장과 법사위원장을 여야가 나눠 갖는 관행은 노무현 정부 당시인 17대 국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열린우리당이 노 전 대통령 탄핵 심판 여파에 과반 의석인 152석을 확보해놓고도 법사위원장은 야당인 한나라당에 내줬다. 집권당이나 다수당의 '입법 폭주'를 막고 협치를 보장할 최소한의 장치를 만들자는 취지에서였다. 이후 국회의장과 법사위원장은 원내 1, 2당이 나누는 관행이 만들어졌다. 이명박 정부 출범 후인 18, 19대 국회에서는 야당이 법사위원장을 가져갔다. 2016년 20대 국회 전반기에는 원내 1당이자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국회의장을, 여당이자 2당인 새누리당이 법사위원장을 각각 차지했다. 법사위원장이 반드시 '야당 몫'은 아니었던 셈이다. 요체는 특정 정당이 국회의장과 법사위원장을 독차지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관행은 2020년 4월 총선에서 민주당이 176석의 절대다수를 차지한 뒤 21대 국회의장과 법사위원장을 비롯한 18개 상임위원장을 독식하며 금 갔다. 원 구성 협상 당시 박병석 국회의장은 전반기는 민주당에, 후반기는 대선에서 승리하는 여당에 법사위원장 우선 선택권을 주자는 중재안을 냈지만 수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해 4ㆍ7 재ㆍ보궐 선거에서의 민주당 참패가 판을 바꿨다. 민심 수습이 시급해진 민주당은 상임위원장을 의석수에 따라 11대7로 배분하고, 국민의힘에 후반기 법사위원장 자리를 내주기로 양보한 것이다. 민주당은 설사 대선에서 지더라도 다수의석을 지렛대로 본회의와 상임위를 장악하면 대여(對與) 견제가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야당이 된 민주당이 이 양보를 거둬들이며 원 구성 협상이 또다시 진통을 겪기 시작했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법사위원장을 국민의힘에 넘긴다는 당초 합의에 대해 "원점에서 논의하는 것이 맞다"고 번복했다. 합의를 깨고 법사위원장을 계속 차지하겠다는 예고인 셈이다. 21대 후반기 국회의장은 이미 다수당인 민주당 몫으로 내정된 터다. 따라서 법사위원장까지 민주당이 가져가면 결국 입법 양대 관문은 민주당 일당의 손아귀로 들어간다. 민주당이 합의 파기까지 불사하려는 것은 왜일까. 정치권에서는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박탈)' 후속 조치인 중대범죄수사청 입법 때문으로 본다. 법사위원장을 국민의힘에 내주면 '검수완박'을 매듭짓는 중수청 입법이 차질 빚을 수 있음을 우려한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사법개혁특별위원회 구성을 서둘러, 1년 6개월 내 '한국형 연방수사국(FBI)'으로 불리는 중수청 설립을 마무리 짓고 검찰개혁을 완성하겠다는 구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법사위원장은 '입법 폭주'를 저지할 수 있는 자리다. 민주적 국회 운영의 원리인 견제와 균형을 위해 국회의장과 법사위원장을 1, 2당이 나누는 것은 그래서 상식과 공정에 부합한다. 여소야대 지형에서 협치는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됐다. 행정부든, 국회든 독주하는 쪽은 성난 민심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이번 대선에서 드러난 민의는 견제하되, 타협하라는 것이다.

sh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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