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한·미·일 밀착 행보에 다시 뭉친 북·중·러

김지성 기자 입력 2022. 5. 26.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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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며칠 새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가 급변하고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의 출범과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한국·일본 순방을 계기로, 그동안 다소 거리감이 느껴졌던 북한과 중국, 러시아가 다시 똘똘 뭉치는 모양새입니다. 어느 정도 예견되긴 했지만 과거 '한·미·일' 대 '북·중·러'의 대립 구도로 급선회하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감도 고조되고 있습니다.
 

소원해졌던 중·러 다시 결속…동해상에 4개국 군용기 집결

 
두드러지는 게 중국과 러시아의 관계입니다. 중·러는 미국에 맞서 '한 배를 탄 운명'임을 강조하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관계가 소원해졌던 게 사실입니다. 우크라이나에서의 대규모 민간인 희생 등으로 러시아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중국은 슬그머니 공동 전선에서 한발 비켜섰습니다. 전쟁이 발발했을 때만 해도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의 확장을 반대하며 러시아를 두둔했다가 이내 '중립적인' 자세로 변했습니다.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에 반대하면서도 '티가 나는' 러시아 지원이나 대러시아 제재에 반하는 행동은 하지 않아 왔습니다.
 
러시아 전투기가 중국 폭격기를 호위하는 모습. 2018년 훈련 사진 (출처=글로벌타임스)
 
두 나라의 관계는 이제 다시 가까워졌습니다. 지난 24일 실시된 '중·러 공군 연합 훈련'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중국 H-6 폭격기 2대와 러시아 TU-95 폭격기 2대가 러시아 수호이-30 전투기 2대로부터 공동 호위를 받으며 우리 방공 식별 구역(카디즈·KADIZ)을 무단 진입했습니다. 한국 방문을 마친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일본에 머물고 있을 때였습니다. 방공 식별 구역은 국제법상 영공은 아니지만 진입 시 해당국에 통보하는 게 관례인데도, 중·러는 우리에게 알리지 않았습니다. 일본 방위성은 중국 H-6 폭격기 4대, 러시아 TU-95 폭격기 2대, 러시아 일류신-20 정찰기 1대를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여기에 우리 공군의 F-15, KF-16 전투기와 일본의 전투기까지 출격했으니, 한국·중국·러시아·일본의 군용기 10여 대가 동해상에 집결하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24일 동해상에는 한국·중국·러시아·일본의 폭격기와 전투기 10여 대가 집결했다.
 
앞서 23일에는 중국의 미사일 적재 구축함인 항저우함이 미야코 해협을 통과해 태평양에 진출했고, 유도 미사일 프리깃함인 쉬저우함과 한단함도 한국과 일본 사이 대한해협을 통과했습니다.
 

우크라 전쟁 와중인데…"중·러 훈련, 세계 평화에 기여"

 
중국은 이번 훈련이 통상적인 연례 훈련이며 바이든 대통령의 순방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중국 국방부 대변인은 25일 "이번 행동은 제3자를 겨냥한 것이 아닐 뿐더러, 현재 국제 정세와도 무관하다"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중·러의 이번 훈련은 분명 과거와는 다릅니다. 두 나라 공군 연합 훈련은 이번이 네 번째인데, 2019년에는 7월, 2020년과 2021년에는 각각 12월과 11월에 진행됐습니다. 최근 2년 간 연말에 실시하다 갑자기 5월로 시기를 앞당긴 것입니다. 더구나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치르고 있는 와중입니다. 러시아의 입장에서도, 중국의 입장에서도 통상적인 연례 훈련이라면 굳이 지금 할 필요가 없습니다. 가뜩이나 러시아에 대한 국제사회 여론이 좋지 않은데, 중국이 러시아와 군사적으로 손을 잡았다가는 중국도 피해를 감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러시아는 우리의 방공 식별 구역, 카디즈를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국제법상 근거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처럼 자체 방공 식별 구역을 설정하고 있는 중국은 과거에는 카디즈에 진입하기 전이나 진입한 이후 우리에게 통보했습니다. 2020년 12월에는 사전에 통보했고, 2021년 11월에는 진입 이후 우리에게 훈련 상황이라고 알렸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진입 이후에도 통보가 없었습니다. 중국 폭격기들이 카디즈로 다가오자 우리 공군 전투기들이 출격해 통신을 시도했지만 답신이 없었다는 게 군 당국의 설명입니다. 한국에 대한 중국의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시한 것입니다. 미국이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 쿼드 정상회의 등으로 한국·일본과 함께 반(反) 중국 경제·안보망을 구축하자, 중국이 먼저 러시아에 손을 내민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24일 카디즈에 진입한 러시아 군용기들. TU-95 폭격기(위)와 수호이-30 전투기 (출처=중국 CCTV 군사채널)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24일자 기사에서 분석가들을 인용해 "중·러 공군의 연합 훈련이 지역과 세계의 평화·안정에 기여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와의 훈련이 세계 평화에 기여한다니 그야말로 어불성설입니다. 분명한 것은 러시아에 대해 중국이 다시 공개적으로 우호적인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대중국 포위망을 그만큼 위협적으로 느끼고 있음이 읽혀집니다.
 

북한, ICBM '섞어 쏘기'로 긴장 국면 가세…한·미·일 동시 겨냥

 
중국과 러시아의 군용기들이 무더기로 카디즈에 무단 진입한 지 하루 만인 25일 북한도 전략적 도발에 나서면서 한반도 긴장 국면 조성에 가세했습니다. 북한은 이날 아침 세 차례에 걸쳐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1발과 단거리 탄도미사일 2발을 동해상으로 발사했습니다. 미국 본토를 겨냥한 ICBM과, 한국·일본을 사정권에 둔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이른바 '섞어 쏘기' 한 것인데, 북한의 섞어 쏘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한·미·일을 동시에 겨냥한 것입니다. 당시 바이든 대통령은 한·일 순방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가던 중이었습니다.
 
북한의 ICBM '화성-17형' 발사 장면
 
북한이 중국, 러시아와 사전 조율해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는지는 확인이 안 됩니다. 하지만 중·러가 동해상에서 훈련하고 있을 때를 피해 하루 늦게 미사일을 발사한 점, 세 나라가 바이든 대통령의 귀국에 앞서 잇따라 군사 행동에 나선 점 등을 고려할 때 그 개연성은 충분합니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 보도도 이런 정황을 뒷받침합니다. 이 매체는 25일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중·러의 연합 훈련을 함께 언급하며, "쿼드 정상회의가 아시아의 안정을 뒤흔들면서 한반도 정세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최근 한반도 긴장 고조의 책임이 미국에 있다는 것인데, "중국과 러시아, 북한은 미국의 '트러블 메이킹'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적었습니다. "미국이 동맹국들을 통해 도발하는 가운데, 중국, 러시아, 북한은 주권과 이익을 수호할 결의를 갖고 있다"고 했습니다. 북·중·러 세 나라를 같이 거론하며 공동 대응을 시사한 것입니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25일 '쿼드 정상회의가 아시아의 안정을 뒤흔들면서 한반도 정세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고 전했다.

 
북한과 중국은 오랜 우방이지만 중국이 표면적으로 유엔의 대북 제재에 동참하면서 일정 정도 거리를 유지했습니다. 최근에는 두 나라 모두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인적 왕래는 물론, 물적 교류마저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중국에 대한 견제 수위가 한층 높아진 데다, 윤석열 정부 출범으로 북한과 중국에 대한 강경 노선 선회가 예상되는 터라, 두 나라 관계는 더 돈독해질 수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고립됐던 러시아도 최근 북한과 빠르게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유엔은 추가 대북 제재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가 뻔히 예상됩니다. 북한이 핵 기폭 장치 작동 시험에 들어가는 등 북한의 7차 핵실험이 임박했다는 징후도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의 안보와 외교 태세가 본격적으로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김지성 기자jisu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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