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 "판결 환영" 했지만..대법, 임금피크제 부정 안했다

김기찬 입력 2022. 5. 26. 13:06 수정 2022. 5. 26.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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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조합원들이 지난해 6월 25일 오후 서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공기관의 일방적 임금체계 개편 중단과 임금피크제 지침 폐기를 촉구하고 있다. 뉴스1


대법원의 26일 임금피크제와 관련된 판결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일각에서는 임금피크제가 연령차별에 해당하는 것으로 법적 효력을 상실했다는 해석까지 한다. 하지만 이는 대법원의 판단과 다르다. 대법원은 임금피크제를 부정하지 않았다. 따라서 대부분의 기업에서 시행 중인 임금피크제는 정당한 임금체계로 효력이 인정된다. 차별적 조치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대법원은 이날 한국전자기술연구원 근로자가 제기한 임금피크제 무효 소송에서 합리적인 이유 없이 연령만을 이유로 직원의 임금을 깎는 임금피크제는 현행 고령자고용법을 위반한 것이므로 무효라고 판단했다. 예전 고령자고용법 제4조의 4 제1항은 연령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이 법은 강행규정으로 무조건 지켜야 한다. 대법원은 한국전자기술연구원의 임금피크제가 이를 어겼다고 봤다.

노동계는 즉각 환영의 뜻을 표했다. 한국노총은 이날 논평을 내고 "임금피크제가 도입된 지 만 5년을 넘겼지만, 청년 일자리가 느는 효과는 미미했고, 결과적으로 노동자의 임금만 삭감됐다"며 "대법원 판결은 당연한 결과로 적극 환영한다"고 밝혔다. 한국노총은 "임금피크제 폐지에 나설 것"이라고도 했다. 노동계는 나이를 이유로 임금을 깎는 임금피크제는 무조건 연령차별에 해당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이날 대법원이 내린 판결은 노동계의 해석과는 동떨어져 있다. 대법원은 "사업주가 근로자의 정년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임금을 정년 전까지 일정 기간 삭감하는 임금피크제는 차별"이라고 했다. 즉 정년을 연장하지도 않고 예전과 똑같이 유지하면서 일정 연령이 되면 임금피크제를 적용하는 것은 연령을 기준으로 한 임금 삭감, 즉 차별이라는 것이다.

한국전자기술연구원은 원래 정년이 61세였다. 법으로 정년을 60세로 의무화한 2016년 이전부터 이 정년을 적용해왔다. 한데 산업현장에서 임금피크제가 확산하자 덩달아 만 55세부터 임금을 깎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시류에 편승한 임금삭감 조치를 한 셈이다. 원래 61세까지 일하던 한국전자기술연구원의 55세 이상 근로자들은 영문도 모른 채 임금이 깎이는 불이익을 당한 것이다. 대법원이 명백히 연령을 기준으로 차별했다고 본 이유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대부분의 기업은 정년을 60세로 늘리면서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따라서 이번 대법원 판결에 따른 차별 논란과 거리가 멀다. 합리적 이유(정년연장)에 따른 임금체계로서 임금피크제를 시행했기 때문이다. "임금피크제가 연령 차별이 아닌 연령 상생을 위한 임금체계"라는 정부·경영계의 입장과 대법원의 판결이 다르지 않다. 오히려 대법원 판결은 정년을 연장하면서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것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연령차별을 금지한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법'도 '특정 연령 집단의 고용유지와 촉진을 위한 조치'는 연령 차별로 보지 않는다. 이에 따라 이번 대법원 판결이 산업현장에 미치는 파장은 크지 않을 전망이다.

다만 임금피크제를 둘러싼 차별 논란은 지속할 수 있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임금피크제는 정년 연장이라는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사유에 따라 도입된 임금체계의 한 형태로 존중되어야 한다"라면서도 "그러나 연령에 따른 차별 논란도 있는 것이 사실인 만큼 산업현장의 소모적인 논쟁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임금체계의 선진화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성과나 역할과 관계없이 시간만 흐르면 임금이 자동으로 오르는 호봉제가 임금을 둘러싼 모든 갈등의 진원"이라는 해석을 덧붙여서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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