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2막이자 도전..후회 없는 무대로"

2022. 5. 26.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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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돌아온다' 전격 캐스팅 박정철·홍은희
그리움 안고사는 사람들의 담담한 이야기
그냥 지나가면 후회할 작품, 고민없이 선택
박 "더 단단해져 오래연기하는 준비 과정"
홍 "연기 더 잘 하고 싶어 연극 하고 있죠"
24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배우 박정철, 홍은희가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상섭 기자

공연 시작 10분 전. 주인 없는 식당의 문을 누군가 두드린다. 이 동네의 유명한 ‘욕쟁이 할머니’. 소리가 제법 신경질적이다. 두드려도 기척이 없자 발길을 돌린다. 여전히 어수선한 객석. 관객들이 입장해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사이, 식당의 불이 켜졌다. 여러 해의 고단함이 뒤섞인 얼굴을 한 주인 남자가 영업 준비를 한다. 수저통을 옮기는 그의 손이 무겁다. 삶의 무게와 그리움이 그 손에 내려 앉았다. 첫 손님은 군대 간 아들을 기다리는 50대의 여선생. 오늘도 여선생은 한 구석에 앉아 아들에게 편지를 쓴다. 연극 ‘돌아온다’(6월 5일까지·예술의전당 토월극장)의 첫 장면이다.

연극의 제작도 하고 출연도 한 배우 김수로는 두 후배에게 작품을 권했다. 캐스팅은 성사됐다. 박정철(46)은 주인남자를, 홍은희(42)는 여선생 역할을 맡았다.

최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두 사람은 “이 작품은 그냥 지나가면 후회할 것 같았다”고 말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다 보니 자연스럽게 삶과 무관하지 않은 휴머니즘을 다룬 이야기에 끌리더라고요.” (박정철) 어느덧 40대 중반의 박정철은 세월의 길이를 떠올린다. “저 정도의 나이가 되면, 아이들은 자라고, 부모님은 연로하고… 나도 언젠가는 이별을 맞을 수 있고, 관계 속에서 뜻하지 않은 난관이 있을 수 있다는 마음의 준비를 하게 돼요. 이 연극처럼요. 제가 처한 관계 속에서 제 자신에 대한 고민도 해볼 수 있고요. 그런 것이 분명히 관객에게도 전달될 거라 생각해요.” (박정철)

홍은희는 “다음 페이지가 궁금한 작품, 굉장히 빨리 읽었다고 생각하는 작품에 호감도가 높다”며 “ ‘돌아온다’는 적절한 잔잔함과 적절한 극적인 요소가 버무려져 작품을 선택하는 데에 어렵지 않았다”고 했다.

실제로 그렇다. ‘돌아온다’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 가슴 한켠 빈 공간에 그리움을 채우고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들이 시골 마을의 한 식당에 모인다. 누군가 돌아오기를, 어떤 시절로 되돌리기를 바라는 그 마음이 공통분모가 돼 연극의 정서를 만든다.

박정철은 “자극적이거나 흥미 위주의 볼거리가 풍부하진 않지만, 캐릭터마다 사연이 있고 주조연의 구분이 없다”며 “배우들이 표현하는 그들의 인생과 사는 이야기가 관객에게 스며 여운으로 남을 작품”이라고 했다.

무대보다 TV가 익숙한 배우들이지만, 이들 역시 작품의 제목처럼 무대로 ‘돌아왔다’. 두 사람에게 무대는 도전이기도 했고, 새로운 시작이기도 했으며, 돌파구이기도 했다.

2016년 김수로의 제안으로 연극 무대에 첫발을 디딘 박정철은 지난해부터 출연은 물론 제작도 시작했다. 인기 드라마마다 늘 첫 번째로 이름이 오른 주연배우였고 청춘스타였다. 그의 선택은 배우로서 ‘인생 2막’과도 같았다.

“어릴 때 데뷔해 주요 배역을 맡아왔지만, 나이를 먹으며 자연스럽게 배우로서 어떤 작품을 할 수 있을지,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질문을 던지게 되더라고요. 사실 20~30대는 너무 정신없이 지나가 기억에 남는게 별로 없어요. 연기자로의 꿈에 대해 물어도 딱히 할 말이 없었고요. 동기부여가 된 건 무대였어요.”

2016년 ‘헤비메탈 걸스’로 무대를 처음 만났다. TV에선 재벌 2세, 금수저 캐릭터를 단골로 맡았던 박정철은 영세한 자영업자 캐릭터를 만나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줬다. 그는 “이곳에 서면서 연기가 내 천직이라는 걸 뒤늦게 느꼈고, 이 직업이 사랑스러워졌다”고 했다.

“이제야 70, 80세까지 연기하고 싶은 욕심이 생겨요. 제겐 그것을 펼칠 곳이 무대인 거예요. 배우로 보내온 지난 시간을 거울 삼아 내 인생을 주도적으로 가꾸고 선택하고 싶더라고요. 고민하고 괴로웠던 때도 있었지만, 더 단단해져 오래 연기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과정이에요.”

홍은희는 이번이 세 번째 연극이다. 공교롭게도 “20대에 한 번, 30대에 한 번 했고, 40대에 다시 서게 됐다”. 열아홉 살에 데뷔해 TV 드라마, 영화, 예능에 얼굴을 비췄다. 이른 결혼으로 엄마이자 아내의 삶도 오래 살았다. 배우 홍은희는 물론 평범한 개인으로의 삶을 성실히 살았다.

“전 20~30대에 활발한 활동을 하진 않았어요. 주요 배역을 맡는 배우도 아니었고요. 하지만 젊은 시절만 배우에게 황금기이고, 노른자는 아니잖아요. 그 시절 저의 능력치에 맞지 않게 많은 업무량을 담아냈다면 실패했을 수도 있어요. 이제 조금씩 담아내는 때고 됐고, 지금부터 저의 쓰임이 더 많을 거라는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무대는 그에게 도전이고, 훈련이다. “전 연기를 더 잘 하고 싶어 연극을 하고 있어요.” 홍은희는 ‘공백의 시간’을 들키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 마음은 부단한 자기 검열로 이어진다. “패턴화된 연기, 공식이 된 연기에 갇히고 쉽지 않아 스스로 매순간 점검”한다. “40대가 된 지금 40대의 배우로 할 수 있는 최대치를 찍어보고 싶어요. 50대엔 지금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감정도 알고 싶고요. 그 마음으로 연극도, 드라마도 하고 있어요.”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박정철은 제작자의 스위치를 켰다. “연기에 대한 욕심과 갈망이 느껴진다”며 다음 작품은 ‘나와 하자’고 제안한다. “앞으로도 제작은 계속 할 거예요. 원대한 꿈을 가진 건 아니지만, 저를 위한 길이기도 무대가 필요한 선후배를 위한 작업이기도 해요.”(박정철)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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