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차이나] 마윈 꼴 보고도 텐센트 총수가 참지 못한 한마디
1년 반 넘게 계속된 규제 압박과 극단적 ‘코로나 박멸’ 정책에 따른 경기 둔화로, 텐센트·알리바바 등 중국 빅테크(Big Tech) 기업에서 대규모 감원이 이어지고 있다. ‘모든 기업을 국유화하려는 것이냐’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중국 정부는 빅테크를 과격하게 통제했다. 도시 봉쇄로 대표되는 엄격한 방역 조치로 기업 이익은 급감했다. 규제 불확실성 지속과 경제 악화로 빅테크 업계에서 해고 태풍이 몰아친 것이다. 하반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3연임 확정을 앞두고 대량 실직으로 인한 고용 불안이 커지자, 중국 정부는 부랴부랴 빅테크 다독이기에 나섰다.
◇ 실적 악화에 대량 해고 태풍
중국 최대 게임·소셜미디어 기업 텐센트는 올해 1분기(1~3월) 실적 악화 후 게임·핀테크 부문 직원 다수를 해고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해 중국 관영 매체가 비디오 게임을 ‘정신적 아편’이라 부르며 텐센트를 콕 집어 비판한 후, 텐센트 게임 사업은 크게 위축됐다. 중국 정부는 올해 4월 게임 45개 출시를 허가하면서 텐센트의 게임 신작은 포함시키지 않았다. 모바일 결제와 클라우드 컴퓨팅이 속한 핀테크 사업부도 코로나 통제 조치 영향으로 부진했다.
18일 공개된 텐센트 실적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순이익은 234억 위안(약 4조4300억 원)으로, 2021년 1분기 대비 51% 급감했다. 1분기 매출(1355억 위안)은 지난해 1분기(1353억 위안) 대비 제자리걸음했다. 특히 3월부터 부분적으로 시작된 상하이 봉쇄 영향으로 1분기 광고 매출은 1년 전 대비 18% 감소했다. 텐센트의 전체 직원 수는 3월 말 기준 11만6000여 명이다. 이미 3월부터 상당수 직원을 내보냈는데, 예상보다 실적이 더 나빠지자 인력 구조조정 폭을 확대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는 화상 회의 서비스 딩톡, 클라우드 서비스 알리바바 클라우드, 온라인 쇼핑몰 타오바오 등 주요 사업부에서 인력을 줄이고 있다. 중국 최대 지식 공유 플랫폼 즈후도 최근 정직원 2600여 명 중 20~30%를 해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국의 온라인 검열 강화 속에 지난해 이 회사 연간 순손실 규모는 13억 위안(약 2500억 원)으로 두 배 넘게 불어났다.
중국판 인스타그램으로 불리는 소셜 커머스 플랫폼 샤오훙슈는 지난달 실적 부진을 이유로 직원 9%를 정리한다고 발표했다. 알리바바의 경쟁사인 징둥은 올해 3월 공동구매 사업부 직원 중 10~15%인 약 4000명을 해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쟁에서 밀려 적자가 커지자 인력 줄이기에 나선 것이다. 올해 1분기 징둥은 코로나 30억 위안(약 5600억 원) 손실을 내면서, 지난해 1분기 대비 적자 전환했다.
◇ “찍히면 끝장” 몸 낮췄던 빅테크
텐센트 최고경영자 마화텅은 지난 주말 중국 온라인에서 화제의 중심에 섰다. 그동안 공개 행보를 하지 않고 침묵을 유지하던 그가 21일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이 경제를 어떻게 망가뜨렸는지에 관해 쓴 글 하나를 공유했기 때문이다. 그가 텐센트의 소셜미디어인 위챗에 공유한 게시물은 서로 계정을 인증한 친구들만 볼 수 있으나, 그가 게시물을 공유하면서 남긴 코멘트를 캡처한 사진이 웨이보 등 다른 소셜미디어로 급속히 퍼졌다.
장밍양이란 경제 평론가가 쓴 이 글은 중국의 강력한 방역 조치가 기업과 경제를 짓누른다는 내용이 담겼다. 특히 마화텅은 해당 글에서 반(反)자본주의자들의 이중성을 꼬집은 부분을 인용했다. 그는 “일부 네티즌은 기업이 파산할 수는 있지만 직원을 해고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고, 기업이 망할 순 있지만 초과 근무를 요구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중국 경제를 말할 때 반도체와 핵심 기술만 말할 뿐, 의식주와 교통은 하찮은 것으로 여긴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주문한 음식 배달이 10분이라도 늦으면, 배달원에게 욕을 퍼붓는 데 거리낌이 없다”는 내용의 단락을 인용하며, “이 단락에 서술된 내용은 매우 사실적이다”라는 코멘트를 남겼다.
중국의 엄격한 방역 조치로 경제가 곤두박질치고 있지만, 검열 사회인 중국에서 이를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금기시된다. 특히나 ‘마윈 사태’ 이후로 빅테크 창업자와 기업인들은 당국에 찍힐 것을 염려해 민감한 주제에 관해선 공개 언급을 삼갔다. 마화텅이 평소와 달리 현재 중국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에 관해 자신의 견해를 밝힌 것을 두고 이례적이란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앞서 마화텅은 1분기 이익이 반토막 난 후 비핵심 사업부를 조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2020년 10월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은 중국의 빅테크 생태계를 완전히 바꿔놨다. 그가 공개 연설에서 중국 금융 감독 당국을 비판한 후, 중국공산당의 빅테크 때리기가 본격화했다. 그해 11월 초 예정됐던 알리바바 핀테크 계열사 앤트그룹의 홍콩·상하이 증시 상장은 무산됐고, 알리바바는 이듬해 4월 반독점법 위반 벌금 182억 위안(약 3조3700억 원)을 부과 받았다. 규제 칼날은 데이터·교육·게임·배달·모빌리티 등 거의 모든 분야의 디지털 플랫폼으로 향했다.
중국 최대 음식 배달 플랫폼 메이퇀 창업자인 왕싱은 마윈 사태로 분위기가 뒤숭숭하던 지난해 5월 소셜미디어에 진시황의 분서갱유(서적을 불태우고 유학자를 생매장한 사건)를 비판하는 내용의 당나라 시를 올렸다가 공산당의 눈 밖에 났다. 시 주석과 당을 겨냥했다는 얘기가 퍼지며, 주가가 폭락했다. 메이퇀은 그해 10월 반독점법 위반을 이유로 연매출의 3%에 해당하는 34억4000만 위안(약 6400억 원)의 과징금을 맞았다.
당의 무릎 꿇리기에 빅테크는 납작 엎드렸다. 시 주석은 기업에 분배를 압박하는 ‘공동부유(다 함께 잘 살기)’를 주창한 후, 2021년 8월 빅테크의 야만적 성장을 지적하며 당의 지도에 복종할 것을 명령했다. 당이 기업 경영에 깊숙이 개입하자, 빅테크 총수들은 30~40대 젊은 나이에 경영에서 손을 뗐다. 핀둬둬(전자상거래) 창업자 황정, 바이트댄스(영상·뉴스 플랫폼) 창업자 장이밍, 징둥 창업자 류창둥, 콰이서우(영상 플랫폼) 창업자 쑤화 등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이들 기업은 우리돈 수십조 원에 달하는 기부금도 내놨다.
◇ 고용 불안 부메랑에 통제 완화 신호
중국 정부는 최근 테크 산업 규제 완화 메시지를 잇따라 내놨다. 시 주석의 최측근 경제 참모인 류허 국무원 부총리는 17일 중국 최고 정치 자문 기구인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CPPCC) 주최 회의에서 “플랫폼 경제의 건전한 발전과 국내외 상장을 지원하겠다”고 했다. “정부와 시장 사이 관계를 적절히 관리돼야 한다”며 민간 경제 지원도 시사했다. 이날 회의는 디지털 경제 발전 촉진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로, 중국 최대 인터넷 포털 바이두 창업자 리옌훙, 스트리밍 서비스 회사 넷이즈(왕이) 창업자 윌리엄 딩, 보안 소프트웨어 기업 치후360 창업자 저우훙이 등 약 100명이 참석했다.
류 부총리가 빅테크를 달래는 발언을 내놓은 것은 3월에 이어 두 번째다. 앞서 3월 16일 국무원 금융안정발전위원회 회의를 열어 플랫폼 기업 ‘교정’ 작업을 조속히 마무리하겠다고 밝혔다. 투자자 사이엔 중국 정부가 빅테크 숨통을 틔워줄 것이란 기대가 커졌다.
중국 정부가 빅테크 누르기에서 살리기로 기조 전환 신호를 보인 것은 경기 위축과 그로 인한 경제·사회 불안을 의식한 움직임이란 해석이 나온다. 디지털 플랫폼은 온라인 상거래를 통한 소비의 핵심 축으로, 중국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테크 기업 해고 소식이 잇따라 전해지면서 중국 정부가 하반기 시 주석 3연임 확정을 앞두고 일자리 안정에 냉기류가 형성되는 것을 우려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또 상하이 등 도시 봉쇄를 강행한 후 시민 불만이 폭발하자, 물류와 배송에서 빅테크 기업의 활약이 컸던 것도 당국이 압박 기조를 누그러뜨린 한 이유였다는 관측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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