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계절에 이 꽃..형용불가 양귀비

2022. 5. 26.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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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양귀비가 피는 시기는 5월부터 7월이다. 양귀비를 보는 마음은 ‘예쁘다’ 한마디로 끝이다. 빨강이라도 다 똑같은 빨강이 아니다. 이렇게 깊고 진한 빨강은 양귀비 아니면 볼 수도, 색칠할 수도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레드(RED)’를 표현하는 한국어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붉은색, 벌건색, 빨간색, 새빨간색, 불그죽죽한, 불그스름 등등. 그런데 양귀비의 붉음은 표현할 길이 없다. 애써 갖다 붙이자면 검붉음 정도? 꽃잎은 깊은 빨강이지만 꽃술이 검은색, 그것도 광채 하나 나지 않는 검은색으로 그 범위가 꽃 아래쪽까지 번져 있어서다. 마치 벼루에 먹을 곱게 갈아 붓에 묻힌 후 한지에 꾹 눌러주었을 때의 색깔이다. 그런 양귀비가 지천에 깔린 양귀비 축제 현장에 가거나 화분을 들여 놓았다면 그 꽃을 5분 이상 집중해서 바라보지 않길 바란다. 5분까지는 꽃멍, 붉멍 등 명상의 시간이 될 수 있겠으나 그 시간이 넘어가면 정신이 사나워지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운동 경기를 할 때 붉은 유니폼을 입은 것이 상대편의 투지를 높여주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그래서 양귀비 꽃밭을 거닐 때는 그저 인생샷 하나 건지겠다는 마음으로 넓은 꽃밭을 즐기고, 강렬한 색깔은 잠시 감상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게 좋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관상 양귀비가 아닌 아편 양귀비의 앞에 서게 된다면 발길을 돌리는 게 좋다. 마약 성분 때문이 아니라, 조금 과장해서, 그 형용할 수 없는 강렬한 색깔에 정신이 어질어질, 쓰러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양귀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진짜 양귀비의 학명은 ‘Papaver somniferum’. 줄기에 솜털 하나 없이 매끈하고 꽃 색깔도 정말 강렬하다. 양귀비는 마약 성분인 모르핀과 코데인을 담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키우는 것 자체로도 처벌을 받을 수 있다. 모르핀이나 코데인은 모두 진통 효과가 있어서 의약용으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의약학에서 규정한 방식대로 제조하지 않을 경우 마약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재배 자체를 금지하고 있다. 한강공원, 꽃집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양귀비는 ‘꽃양귀비’, ‘개양귀비’라고 불리며 학명은 ‘Papaver rhoeas L’이다.

양귀비의 역사는 인류의 삶보다 훨씬 길다. 인간이 그것을 재배했다는 흔적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발견되었다. 기원전 3400년 전의 일이다. 그 뒤에도 이란 등 주로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에서 재배되었다. 관상용이기도 했겠지만 아마도 의약용으로 재배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꽃양귀비는 양귀비과, 양귀비속의 2년살이 식물이다. 줄기에 고운 솜털이 있다는 점으로 마약 양귀비와 쉽게 구별이 된다. 물론 꽃잎의 색깔도 상대적으로 부드러운 편이다.

중국 당나라 현종의 후궁이었던 양옥환은 당시 중국 4대 미녀 중 한 사람으로 손꼽혔다.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그녀를 양귀비라 불렀을까. 양귀비꽃이 시대를 뛰어넘는 예쁜 꽃으로 사랑받고 있다는 이야기다. 중국 역사상 최고의 시인으로 추앙받는 백거이는 당 현종과 양귀비와의 로맨스를 서사시로 창작했는데, 마지막 구절이 ‘하늘에선 날개를 짝지어 날아가는 비익조가 되게 해주소서 / 땅에선 두 뿌리 한 나무로 엉긴 연리지가 되자고 언약했지요’이다. 지금 읽어 보아도 그들의 애절하고 애잔한 사랑과 이별 이야기가 가슴을 뒤흔들기에 충분하다. 이게 모두 양옥환의 미색에서 시작했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 양귀비에서 비롯된 비유이다.

꽃양귀비는 품종에 따라 붉은색, 자주색, 노란색, 흰색, 주홍색 등이 있는데, 역시 주종은 붉은색이다. 꽃말도 여러가지 있으나 몽상, 환상, 덧없는 사랑 정도로 정리해 본다. 온통 붉은빛으로 가득한 양귀비 꽃밭은 황홀과 유혹의 상념이 넘쳐 흐르는 장소다. 세상에 아름답지 않은 꽃은 없다. 그러나 이 5월, 꽃양귀비의 강렬한 색상은 가히 압도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글 아트만 사진 픽사베이]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831호 (22.05.31)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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