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웅의 첫걸음

서울문화사 2022. 5. 2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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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웅은 국내에서 초동 1백만 장 이상이 가능한 유일한 솔로 가수다. 그의 정규 앨범 를 비평한다. 12곡의 트랙 중 인상적인 곡을 뽑았다. 이 평론은 음반에 대한 거창한 의미 부여가 아니다. 임영웅이 어떤 종류의 가수인지 알아가는 탐색전이다.

이건 임영웅의 탐색전이다. 열두 곡을, 그것도 각기 다른 장르와 리듬으로 빼곡히 채운 <IM HERO>를 한 바퀴 돌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몇 번을 다시 들어도 그 느낌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음악적인 욕심일까? 아니면 이것저것 찔러보고픈 예술가적 호기심일까? 아니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오만이나 자신감일까? 그 모두일지도, 혹은 그 무엇도 아닐지 모르겠다. 확실한 건 <IM HERO>는 결코 어디서도 쉬이 듣기 어려운 종류의 앨범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앨범의 가장 인상적이고 결정적 순간들을 좀 더 면밀히 관찰해보기로 했다.

‘다시 만날 수 있을까’는 결정적 승부다. 이적의 글과 곡. 양시온의 편곡. 정재일의 현편곡.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액면가다. 첫 곡이자 의심할 바 없이 이 앨범에서 가장 힘이 들어간 곡이자 사실상의 승부수다. 과장 조금 보태면 이 곡의 성패가 바로 이 앨범의 성패로 기억될 것 같다. 처음 몇 번을 돌려 들었는데, 아름다운 곡인 것은 분명하나 임영웅의 목소리나 창법에 완전히 맞춤형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으나 이 같은 큰 규모의 곡보다는 조금은 작고 콤팩트한 구성에서 그가 더 빛난다고 믿는 쪽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곡을 반복해 듣다 보니 이 역시 편견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영웅은 극단적으로 감정의 낙폭을 활용하지 않고도 곡의 웅장함에 적절히 대응하고 있다. 처음보다는 들을수록 감동의 깊이가 더해지는 건 좋은 신호다. 이 앨범의 가장 완벽한 곡은 아닐지 모르지만 분명 가장 힘을 준 승부수다.

‘A bientot’는 유쾌한 반전이다. 필자가 진심으로 놀라는 일은 여간해 없다. 하지만 이 노래를 듣고는 좋은 의미로 놀라움에 웃음이 흘러나왔다. 레게? 오토튠? 임영웅이 정말? 임영웅이 부르지 않았으면 이 곡이 그 정도의 놀라움을 주었을까? 여전히 의심을 지울 수 없으나 이 곡이 앨범 중 가장 인상적이며 유쾌한 순간을 선사해준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조금은 허스키한 톤으로 속사포같이 싱잉랩을 쏟아내는 부분에서는 그의 노력과 함께 이 앨범에서 임영웅이 취하는 자세가 그대로 드러난다. 그는 다른 것을 시도하고 싶었고 대개 그런 시도에는 ‘무리’가 따르는 법이다. ‘굳이 왜?’라는 의문에 대답해야 하는 음악은 보통 실패하기 쉽다. 하지만 다행히 이 곡은 결국 근사한 마무리를 보게 되었다. 그만큼의 노력과 고민이 보이는 음악, 그래서 밝은 음악임에도 불구하고 호소력이 느껴지는 걸까.

‘보금자리’는 검증된 공식이다. 예상된이라는 표현을 썼다가 검증된이라는 단어로 바꾸었다. 하지만 어느 쪽도 상관없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트로트 킹에게 트로트는 고작해야 본전치기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자 심혈을 기울인 솔로 앨범에서 임영웅이 트로트를 잘하는 게 뭐 대수란 말인가? 그런 삐딱한 의구심은 첫 번째 후렴이 끝나갈 때쯤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영어로 ‘effortless’라는 표현이 있다. 노력을 들이지 않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자연스럽다는 뜻이다. 이 곡이 그렇다. 달려 나가는 리듬 사이로 임영웅의 뽕짝 ‘스웨그’는 어느 때처럼 굳건하다. 다른 누구도 아닌 ‘당신’만이면 모든 것이 완성된다는 확신에 찬 가사를 임영웅의 강약 조절 밀고 당기기가 자신 있게 갖고 논다. ‘사랑역’도 좋지만 이쪽이 한결 더 자연스럽다. 어지간히 마음이 삐뚤어지지 않고는 이 곡을 싫어할 수 없을 것이다.

‘아버지’는 기분 좋은 트릭이다. 장르 불문하고 엄마아빠 이야기는 반칙이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그런 곡들은 높게 평가하지 않는다. 노래로 울려야지 소재로 울리면 되나? 억울한 마음이 들어서다. 처음에 이 곡을 그다지 눈여겨보지 않은 이유도 그렇다. 혹시나 내가 뭔가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어 가사를 펴놓고 한 글자씩 따라가본다. 생각 외로 곡이 울지 않는다. 휘몰아치는 대신 담담하게 털어놓는다. 내가 뭔가를 해주지 못해서,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를 하지 못해서 통탄하며 한스러워하는 자식의 모습이 아니다. ‘힘이 드냐며 나를 위로하시다 잠이 드신’ 아버지라니. 더 울 수 있지만 그저 묵묵히 진심을 전하는 노래는 그래서 더 슬프다. 내가 아버지를 지키고, 아버지도 나를 지킨다. 그렇게 그냥 오래 함께만 해달라는, 이제는 ‘어린아이로 돌아가버린’ 아버지를 노래하는 임영웅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깊은 울림을 머금는다. 반칙이지만 또 한 번 기분 좋게 속기로 한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더 있지만 일단 이렇게 첫 감상을 마무리 짓고자 한다. 글을 마무리하며 드는 생각은 임영웅의 <IM HERO>는 제법 시간이 지나서야 정당하게 재평가될 작품이라는 것이다. 남자 솔로 가수로서는 전례 없는 하이프와 그에 상응하는 첨예한 반작용 속에서 그의 음악이 오로지 음악만으로 평가되기란 참 어려운 일일 듯싶다. 그는 어떤 종류의 가수일까? 그가 잘하는 음악은 정확히 어떤 장르일까? 아직은 또렷한 답이 떠오르진 않는다. 그래서 난 여전히 이 음반에 어떤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기보다는 탐색전 혹은 모색의 첫걸음으로 간주하길 원한다. 모르긴 해도 아마 그 스스로도 이 앨범이 그렇게 기억되기를 바랄 것이다. 임영웅은 이 앨범에서 현존하는 그 어떤 메인스트림 남자 가수 못지않은 다양한 스펙트럼의 소리를 건드리고자 했다. 그 안에는 조금 더 그의 목소리를 빛내주는 음악도, 상대적으로 어색하게 들리는 음악도 있을 수 있지만 탐색 과정에서 그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그 의도다. 욕심이나 포부로도 읽히는, 동시에 조심스럽지만 자신만만한 쇼케이스는 아닐까. 아직 성급히 그가 어떤 가수인지 결론 내리진 않을 생각이다. 적어도 <IM HERO>에서 확인된 지금의 임영웅은 어느 방향으로도 가능성이 열린 가수이기에.

Editor : 조진혁 | Words : 김영대(음악평론가) | Illustrator : 송철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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