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염투혼 승부사' 변준형 "제가 농구를 좀 좋아하는 거 같아요"

박강수 2022. 5. 26.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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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스타] 안양 KGC인삼공사 가드 변준형
4월 PO 4차전 결승슛 등 하이라이트 연발
운동능력, 균형감각 뛰어난 '완성형 가드'
비시즌 때도 동호회 농구 찾아 '즐겜'
안양 케이지시(KGC) 인삼공사의 가드 변준형이 23일 경기 안양체육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안양/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플루(Flu·독감) 게임’. 마이클 조던이 뛰었던 1997년 미국프로농구(NBA) 결승 시카고 불스와 유타 재즈의 5차전 경기를 이렇게도 부른다. 밤새 극심한 몸살에 시달린 조던은 기진맥진한 몸으로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코트를 밟았다. 그리고 44분을 뛰면서 38점을 올렸다. 4쿼터 막판 85-85 동점 상황에서는 결정적 3점을 꽂아 승리에 발판을 놨다. 훗날 밝혀진 진상은 전날 피자를 먹고 탈이 난 ‘식중독 게임’이었지만 세상은 ‘독감 게임’으로 이날의 기적을 기억한다.

지난달 27일 프로농구(KBL) 플레이오프 4강 안양 케이지시(KGC)인삼공사와 수원 케이티(kt)의 4차전, 인삼공사가 시리즈 전적 2-1로 앞선 4쿼터 막판 20초를 남긴 79-79 동점 상황. 단 한 번의 공격으로 결승행이 판가름나는 승부처에서 인삼공사의 가드 변준형(26)이 종료 0.8초를 남기고 홀로 골밑을 파고들어 레이업을 성공시켰다. 이날 변준형은 장염을 비롯해 몸살이 심해 경기 전 링거를 맞고 뛰었는데, 결승슛 포함 16득점 3리바운드 4도움 1스틸을 기록했다. ‘장염 게임’을 펼친 셈이다.

인삼공사의 변준형이 김승기 감독(오른쪽)과 경기 중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KBL 제공

지난 23일 경기 안양체육관에서 만난 변준형은 “한국판 ‘플루 게임’ 같았다”는 기자의 호들갑에 “그 정도까지는 아닌 거 같은데”라며 난처한 듯 웃었다. 본인의 설명에 따르면 경기 내내 그저 “멍한 상태”였다고 한다. “(동점 타임아웃 때) 김승기 감독님이 공 잡고 있다가 (전)성현이 형 주라고 했잖아요. 근데 저는 아무 생각이 없었던 거 같아요. 멍했고, 귀에 안 들어오고. 수비가 뺏으려고 나오니까 그냥 들어갔죠. 감독님이 끝나고 진짜 대단하다고 했어요. 몸도 안 좋은데 어떻게 했냐고.”

프로농구 4번째 시즌에 2번째 플레이오프를 밟은 변준형은 올봄 ‘하이라이트 제조기’였다. 4강 4차전 위닝슛 네이버 영상클립은 챔피언결정전 영상들보다 조회 수가 높다. 여기에 상대의 중심을 무너뜨린 뒤 꽂아넣은 스텝백 3점(2차전), 속공을 내달리는 케이티 양홍석을 측면에서 추격해 내려친 호쾌한 블록(3차전)까지, 타고난 운동능력과 균형감각에서 연발하는 묘기로 팬들에게 굵은 인상을 남겼다. 추승균 <스포티비> 해설위원은 “힘과 스피드가 워낙 좋고 균형이 잡힌 선수다. 가드 다섯 손가락에 들어갈 것”이라고 평했다. 실제 변준형은 이번 정규시즌 공헌도에서 가드 부문 전체 5위(1204.6점)에 올랐다.

지난달 27일 프로농구 플레이오프 4차전 인삼공사와 수원 케이티(kt) 경기가 열린 안양체육관에 팬들이 유니폼을 걸어놨다. KBL 제공

고등학교 전국대회 최우수선수(MVP·2013년), 대학농구 신인왕(2015년), 프로농구 신인왕(18∼19시즌), 역사상 첫 플레이오프 전승우승(20∼21시즌). 플레이만큼 성취도 탁월하지만 기복이 심한 편이기도 했다. 올해 플레이오프 6강 1차전에서는 발목이 돌아가는 부상을 당해 그대로 시리즈를 마칠 뻔했다. 기적처럼 회복해 돌아온 4강 이후 서울 에스케이(SK)와 챔프전에서는 몸살 후유증 탓인지 3차전까지 한 자릿수 득점에 그치며 부진했다. 팀은 우승 문턱을 넘지 못했다.

“그때 몸이 안 좋긴 했지만 핑계 같다. 체력, 에너지에서 밀렸다”며 변준형은 담담하게 패인을 짚었다. 준우승 이후 입대를 1년 미루고 다음 시즌을 준비 중인 그의 어깨는 더 무거워질 전망이다. ‘프로 초짜’ 변준형에 수비와 리딩을 입혀 완성형 듀얼가드로 만들어준 은사 김승기 감독과 정규시즌 ‘베스트5’ 전성현이 팀을 떠나면서 생긴 공백이 오롯이 그 앞에 남겨졌다. 매 시즌 한 단계 도약하는 모습을 보여준 그이기에 한편으로는 기대도 크다.

인삼공사의 가드 변준형이 23일 경기 안양체육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안양/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목표를 묻는 말에 그는 담백한 표정으로 “더 나은 농구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압박감을 의식하는 기색은 없었다. 비시즌 기간 동호회 농구에 익명으로 참가해 모처럼 ‘이기는 농구’가 아닌 ‘즐기는 농구’의 맛을 만끽하는 중이라는 그는 명쾌한 이유를 보탰다.

“제가 농구를 잘하면 (우승·최우수선수 등) 영광은 다 따라온다고 생각해요. 제가 스스로 잘한다고 느끼고, 농구를 더 즐겁게 하고 싶어요. 제가 농구를 좀 좋아하는 거 같아요(웃음).”

안양/박강수 기자 turn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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