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In] 호주 첫 중국계·성소수자 외교장관 페니 웡에 쏠린 시선

정열 2022. 5. 26.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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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최초 '커밍아웃' 여성 연방의원 출신..강경 일변 대중국 정책 변할지 관심

(서울=연합뉴스) 정열 기자 = 8년 9개월 만에 좌파 정부로 정권교체가 이뤄진 호주의 새 각료 중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외교부 장관인 페니 웡(53)이다.

페니 웡 호주 외교장관 [AFP=연합뉴스 자료사진]

중국계 말레이시아인인 부친과 호주인 모친 사이에서 태어난 웡은 앤서니 앨버니지 총리가 이끄는 새 노동당 정부의 유일한 아시아계 장관이자 성 소수자(LGBT)다.

전문가들은 진보적 성향이면서도 원칙을 중시하는 법률가 출신인 웡이 호주의 외교정책을 이끌게 되면 강경 일변도였던 대(對)중국 정책에 적잖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아시아계 이민자 출신 여성 정치인…호주 최초 타이틀 도맡아

지난 21일 치러진 호주 총선에서 야당인 노동당이 승리하면서 새 총리가 된 앨버니지는 사흘 뒤 열린 쿼드(Quad·미국·일본·호주·인도 협의체)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일본으로 향했다. 새 외교장관인 웡과 함께였다.

앨버니지 총리는 사실상의 국제무대 데뷔였던 쿼드 정상회의에서 "호주 정부는 교체됐지만 쿼드에 대한 호주의 약속은 변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강조했다.

앨버니지 총리와 동행한 호주 최초의 아시아계 외교장관 웡에게도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다.

일본 경제 일간 닛케이아시아는 24일 "말레이시아 태생이면서 공개적으로 동성애자란 사실을 밝힌 호주의 새 외교장관 페니 웡은 중국으로부터 시험을 받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악수 하는 미국·호주 정상 (도쿄 로이터=연합뉴스) 쿼드(Quad, 미국·일본·호주·인도 안보협의체) 정상회의 참석차 일본을 방문 중인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59·왼쪽)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79)이 24일 도쿄 총리 관저에서 미소를 지으며 악수하고 있다. 2022.5.24 alo95@yna.co.kr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에서 태어나 5살 때 호주로 이주한 웡은 애들레이드대 법학과 재학 시절부터 노동당원으로 활동하다가 변호사로 일하던 2001년 남호주주(州) 상원의원으로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백호주의 정서가 뿌리 깊은 호주에서 아시아계 정치인이 성장하기 쉽지 않았던 환경 탓에 웡이 걸어온 여정은 '최초 타이틀'의 연속이었다.

그는 2007년 1차 케빈 러드 내각에서 신설된 기후변화 장관으로 발탁되면서 호주 최초의 아시아계 장관이 됐다.

2010∼2013년에는 줄리아 길라드 내각과 2차 케빈 러드 내각에서 재무장관으로 재직하면서 노동당을 대표하는 중진 정치인으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지난 주말 치러진 총선에서 앨버니지 당수가 이끄는 노동당이 정권교체에 성공하면서 웡은 호주 최초의 아시아계 외교장관이라는 중책을 맡게 됐다.

그의 외교장관 임명이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미국, 영국 등 전통적인 앵글로색슨 동맹과의 안보협력 강화를 중시한 전임 스콧 모리슨 내각에서 최대 교역국인 중국과의 관계가 단교 직전까지 갈 정도로 악화했기 때문이다.

강경 보수파인 모리슨 전 총리는 중국이 호주의 최대 교역국이란 사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중국의 무역 보복에 맞대응하며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중국이 2020년 4월 코로나19 발원지에 대한 국제 조사를 요구한 모리슨 총리의 발언을 문제 삼아 전방위적인 무역 보복을 가하자 중국과 맺었던 '일대일로 협약'을 취소하고 미국과 연합 군사훈련을 강화하는 등 강공책으로 맞선 것이다.

피터 더튼 호주 국방장관은 한술 더 떠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경우 호주는 미국 등 동맹과 함께 군사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며 중국을 자극했다.

당시 야당의 '그림자 내각' 외교장관이던 웡은 모리슨 정부가 국내 정치적 목적으로 중국을 불필요하게 자극해 호주의 안보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대중국 정책에서 시각차를 드러냈다.

역사적으로 볼 때도 호주에서는 대표적 친중파 정치인으로 꼽혔던 케빈 러드 전 총리를 비롯한 노동당 정권에서 중국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중국도 호주 노동당 정부 출범에 기대를 드러냈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23일 정례 브리핑에서 "1970년대 호주 노동당 정부는 중국과 수교하는 올바른 선택을 함으로써, 중-호주 관계 발전에 역사적인 기여를 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중국에 강경 일변도였던 전임 자유당 정부와 달리 노동당 정부는 중국에 대해 한결 유화적인 태도를 견지할 수 있겠지만 호주의 핵심 이익이 걸린 외교정책에는 큰 변화가 나타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치분석가인 브라이스 웨이크필드 박사는 일간 데일리메일에 "노동당과 자유당은 중국 관련 이슈에 대해 매우 다른 톤(tone)을 견지해왔는데, 중국 정부를 다루는 데는 톤이 매우 중요하다"며 "적절한 톤은 관계 회복의 기회를 만들면서 상호 존중하는 느낌을 조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치 컨설팅업체 유라시아그룹 분석가인 닐 토머스는 닛케이아시아에 "웡은 외교장관의 역할에 새로운 활력을 가져다줄 것이며, 그의 진지함은 호주의 대중국 정책에서 외교의 역할을 신장시키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호주 최초 '커밍아웃' 여성 연방의원…동성 파트너와 두 자녀 양육

웡 신임 외교장관의 남다른 이력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커밍아웃한 동성애자란 사실이다.

대학 시절부터 사귀어온 동성 파트너 소피 알루아시와의 사이에 체외수정(IVF)을 통해 얻은 두 딸을 키우고 있다.

상원의원으로 재직하던 2017년에는 호주 연방의회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화되도록 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웡은 당시 61.6%의 찬성률로 동성결혼 합법화를 지지한다는 국민투표 결과가 발표되자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웡은 결과 발표 직후 트위터를 통해 "공정함과 평등을 지지해준 모든 호주인에게 감사하며, 이 위대한 결과를 위해 싸워준 나의 동료와 모든 이들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동성결혼 합법화 소식에 울음 터뜨리는 웡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닛케이아시아에 따르면 웡 장관은 1970년대에 호주에서 아시아계 이민자로 살면서 겪어야 했던 인종차별과 왕따 경험이 사회의 불평등과 부당함에 대해 눈을 뜨게 했고 학업에 열중하도록 만든 계기였다고 한다.

처음에는 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하려 했으나 브라질에서 1년간 연수한 뒤 죽음과 피를 다루는 일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법학으로 전공을 바꿨다.

대학 졸업하고 변호사 자격증을 딴 뒤 노동조합과 지방정부에서 일하다가 2001년 선거에서 상원의원으로 당선되면서 중앙 정계에 진출했다.

앨버니지 신임 총리와는 1차 케빈 러드 내각에서 앨버니지가 국토교통부 장관으로 재직했을 때 웡이 신설된 기후변화 장관으로 발탁되면서 교분을 쌓기 시작해 단순한 정치적 동지 이상의 관계를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passi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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