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칼럼] 정치와 평화

국제신문 2022. 5. 26.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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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서 압승은 없었지만 평화로운 정권교체 이뤄
성숙해진 민주사회 증명..정치권도 국민 본받아야

세월이 지나면 계절이 바뀌는 것처럼 한 정권이 무대에서 물러나고 다른 정권이 새 막을 열었다. 인류 문명사를 돌아보면 이렇게 서로 합의한 방법으로 잡았던 권력을 내려놓고 경쟁자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문화는 그렇게 오래되지 않은 전통이다. 그리고 평화롭게 새 정권의 출발을 축복할 수 있는 우리나라 국민은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할 만하다.

고대 서아시아에서 정치권력이 발생했을 때 수메르(umer) 도시국가의 구성원들은 자기들이 섬기던 신의 사제를 주인(en)이라고 부르며 모시거나 외적의 침입이 있을 때 군사 지도자를 선출해 전쟁터에 나가곤 했다. 도시마다 이런 지도자들을 부르는 호칭이 서로 달랐고 권력을 세습하지도 않았으니, 역사보다 전설에 가까운 시대이기도 하고 학자들이 붙인 별명으로 원시 민주주의라고 부를 수도 있다.

그러나 인구가 증가하고 도시의 생활영역이 넓어지면서 점점 더 많은 재화를 생산하게 되었고, 이런 경제적인 생산물을 모으고 배분하는 과정에서 더 큰 권력이 탄생하게 된다. 학자들마다 정의가 달라질 수 있겠지만, 악카드(Akkad) 왕국은 도시국가들을 여럿 거느린 확대된 영역을 다스리는 정치공동체였다. 이 시대가 되면 ‘큰 사람(lugal)’이라는 호칭이 ‘왕’이라는 뜻으로 굳어지면서, 왕이 권력을 자기 아들에게 물려주는 왕조를 일으켰고, 더 넓은 영역을 지배하기 위해서 정복전쟁에 나서기도 했다.

처음에는 작은 도시국가 몇 개를 지배하던 왕국이 점점 몸집을 불리면서 넓은 영토를 직접 관리하는 강력한 조직이 되었고, 더 나아가 언어와 문화가 생경한 지역까지 쳐들어가서 군사적으로 그 지역을 복속시키고, 대륙을 넘어서 지배권을 행사하는 제국을 건설하는 왕들도 등장했다. 여기에 이르면 왕은 일반인들과 다른 존재로 추앙을 받기도 했고, 신은 아닐지 몰라도 신들이 직접 선택하고 길러낸 신의 대리자라고 간주했다.

그러나 왕 한 사람에게 권력이 집중되자 왕은 항상 선망과 질투의 대상이 되었고, 평화롭게 왕위를 교체하는 일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왕가의 일원 중 누군가가 야욕을 품고 반란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었고, 후계자를 지지하는 세력이 그리 탄탄치 않은 경우에는 고위 관직자가 쿠데타를 일으키기도 했다. 이런 상황이 되면 권좌를 지키려는 측과 이를 쟁탈하려는 측은 실력을 동원해 실세를 장악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논리와 문학적인 표현을 통해 자신의 집권을 정당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고대 서아시아 역사에서 ‘평화로운’ 정권교체를 선포하고 선전했던 왕도 있었다. 현대 국가 이라크 남부에 자리를 잡았던 밥일리(Bbili) 제국(영어식 표기는 Babylonia)은 기원전 6세기에 멸망했는데, 남아있는 사료를 보면 이 제국의 고위층과 사제들이 자진하여 페르시아의 쿠라쉬(Kura, 영어식 표기는 Cyrus)를 왕위에 모셨고, 쿠라쉬는 수도 밥일리를 공격하거나 파괴하지 않고 평화롭게 집권했다고 한다. 또 밥일리 제국의 마지막 왕이었던 나부나이드(Nabu-na’id, 영어식 표기는 Nobonidus)는 온전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 아니어서 수도를 버리고 아라비아 사막 한 가운데 있는 타이마(Tayma)에서 10년 동안 거주했으며, 전통적으로 수도 밥일리의 수호신이었던 마르둑(Marduk) 신을 버리고 다른 지역에서 섬기던 달의 신 씬(Sin)을 섬겼다고 기록돼 있다. 그러므로 밥일리 백성은 정당한 이유로 나부나이드를 폐위하고 쿠라쉬를 왕으로 모셨으며, 정권교체가 ‘평화롭게’ 이루어졌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발굴을 통해 얻은 이런 사료들은 흙으로 빚은 토판이나 원기둥 위에 기록했고, 저자나 출판사나 출판시기를 밝히는 일이 없기 때문에 신빙성을 의심할 여지가 있다. 그 내용을 분석해 기록의도를 추정하자면, 위의 사료는 정권이 이미 교체된 이후에 페르시아 왕궁에서 제작한 사료일 가능성이 높다. 나부나이드의 입장을 대변하는 글은 거의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당시 상황을 승리자인 쿠라쉬의 글을 통해서 듣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쿠라쉬가 표방하는 ‘평화’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판단에 이른다.


이번 대통령 선거의 결과를 보면 투표에 참여한 국민의 의견이 완전히 반으로 나뉘어 있어서 어느 측도 국민 대다수의 지지를 주장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화롭게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이 민주사회의 시민으로 그만큼 성숙해졌음을 증명한다. 선거는 누구에게도 압승을 선사하지 않았지만 우리 국민은 세계 어디에 내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승자의 태도를 보여준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도자들에게 요구한다. 정치적인 의도를 가지고 ‘평화’를 선전할 필요가 없는 자리를 마련해주었으니, 실질적인 평화를 성취하고 유지하는 능력을 보여 달라고.

윤성덕 연세대 기독교문화연구소 전문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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