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김현미의 PPT, 원희룡의 유튜브
“투기 세력과의 전쟁” 선포한 金
생방송하며 즉석 질의 응답한 元
부동산 안정 위해 계속 소통해야
문재인 정부는 대통령이 지명한 국토교통부 장관이 취임하기도 전에 부동산 대책부터 발표했다. 서울 강남권을 중심으로 아파트 값이 들썩였기 때문이다. 2017년 6월 ‘6·19 대책’을 통해 서울 전역과 경기도·부산 일부 지역에서 대출 한도를 줄였다. 재건축 조합원이 분양받는 주택 수를 제한하고, 서울에서 전매(轉賣)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도 담겼다.
첫 부동산 대책 발표 나흘 뒤 정부세종청사 대강당에서 열린 김현미 국토부 장관 취임식은 여러모로 이례적이었다. 연단에 선 김 장관의 등 뒤로 대형 파워포인트(PPT) 슬라이드가 켜졌고, 통계와 그래프를 동원한 프레젠테이션이 시작됐다. 주택시장에 집이 부족한 게 아니라 다주택자의 투기 행위 때문에 집값이 오른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며칠 전 6·19 대책이 나온 배경을 설명하면서 “(집값) 과열의 원인을 공급 부족에서 찾는 분들이 있다”며 “이번 대책은 주택 시장을 어지럽히는 사람에게 보내는 1차 메시지”라고 말했다. 국토부 장관의 취임 일성이 다주택자를 상대로 적의(敵意)에 찬 전쟁 선포였다. 김 장관은 “부동산 정책은 투기를 조장하는 사람이 아니라 정부가 결정한다”고 했는데, 이는 ‘정부가 시장을 통제할 수 있다’는 오기(傲氣)처럼 보였다.
문재인 정부를 향해 많은 전문가가 “집을 사려는 수요를 규제로 억누르려 하지 말고, 더 많은 주택 공급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김 장관은 “집값 불안은 공급 부족 때문이 아니다”라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다주택자는 투기꾼’이라는 편견도 끝내 바뀌지 않았다. “영끌하는 30대 안타깝다” “서울 집값 14% 올랐다”처럼 현실과 동떨어진 발언으로 논란을 자초하기도 했다. 시장과 불통(不通)하는 국토부 장관이 지휘하는 부동산 대책은 ‘백전백패’였다.
윤석열 정부의 첫 국토부 장관 취임식도 독특했다. 원희룡 장관은 지난 16일 유튜브로 취임식을 생중계했다. 원 장관은 카메라 앞에서 다양한 자세를 잡으며 현란한 컴퓨터그래픽과 자막까지 동원해 취임 메시지를 전했다. 그는 “이념을 앞세운 정책으로는 주거 안정을 이룰 수 없다”며 “집이 없는 사람은 부담 가능한 집을 살 수 있고, 세를 살더라도 안심하고 거주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며 전 정부와의 차별성을 강조했다.
원 장관은 인터넷과 IT 기기에 익숙하고, 유튜브나 페이스북 같은 SNS를 가장 잘 활용하는 정치인 중 하나다. 자기 PR 욕심도 있겠지만, 다방면으로의 활발한 소통이 정치적 자산이자 경쟁력이 된다는 것을 안다. 취임 영상이 방송되는 동안 유튜브 댓글 창엔 실시간으로 응원 메시지와 질문이 올라왔고, 원 장관은 몇 가지 물음에 즉석으로 답변했다. 그는 ‘취임사에 집값을 잡겠다는 메시지가 없다’는 지적에 “집값 하향 안정화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지난 정부처럼 집값을 잡으려고 무리한 정책을 펴면 오히려 시장을 불안하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유튜브로 취임식을 진행한 이유에 대해서는 “부처의 변화와 혁신을 위해 국민과 소통하는 자리로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국토부 장관의 취임식이 어땠는지가 부동산 정책 성패(成敗)에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집값 불안은 투기꾼 때문인 것을 모르느냐’고 훈계하는 김현미 장관의 PPT보다 댓글 몇 개라도 직접 읽고 답하는 원희룡 장관의 유튜브 방송에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원 장관이 “국민, 언론, 그리고 현장의 전문가들과 활발히 소통하겠다”는 취임 첫날의 약속만 잘 지켜도 지금 맡은 자리가 세간의 우려처럼 ‘독이 든 성배’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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