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갖고 싶은 초능력

방호정·작가 2022. 5. 26.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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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힙스터연맹의 본부장이자 인기 웹툰 작가인 배민기와 맥락 없는 수다를 열심히 떨던 중에, 그가 최근 재미있게 본 영화 한 편을 추천해줬다. 그러고선 “아, 별로일 수도 있어요. 사실 저는 웬만하면 다 재밌게 보거든요”라고 덧붙였다. 사실 배민기의 그런 성향을 이미 파악하고 있기에 그의 추천작을 100% 신뢰하는 편은 아니었다.

인터넷에 떠도는 별 웃기지도 않는 유머 게시물을 살피다 보면 ‘가지고 싶은 초능력은?’ 같은 질문을 만날 때가 종종 있다. 대답을 하는 코너에는 투명인간, 순간 이동, 비행 능력 같은 비현실적 재능이 나열되어 있다. 그런 질문을 만날 때마다 부질없이 한참씩 고민을 반복하다가 ‘이게 과연 고민씩이나 할 일인가’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하나 그 순간, ‘웬만하면 뭐든 다 재밌게 받아들이는 능력이라면 이건 뭐, 거의 초능력이라 불러도 무방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 참 유용하고 부러운 능력이다. 예를 들어 배민기와 함께 영화관에 가서 같은 영화를 보는 동안 내가 대한민국에 산재한 정치적 문제와 인류의 미래, 지나간 옛사랑의 기억, ‘그땐 왜 그랬을까?’, ‘나중에 뭐 먹지?’ 등등의 잡다한 생각에 시달리는 동안 배민기는 끝까지 영화에 흠뻑 빠져 몰입하는 것이다. 뭔가 몹시 분하고 손해 보는 기분이었다.

그런 이유로 그날 술값은 가공할 초능력을 지닌 배민기가 계산하는데, 어쩌면 나도 노력하면 그런 초능력 정도는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희망이 생겼다. 일단 투명인간이나 순간 이동보다 훨씬 실현 가능성이 높다. 사람들은 대부분 서른 살 이전에 듣던 음악을 반복해 듣는다고 한다. 동년배 아재들은 생소하거나 잘 모르는 음악을 싫어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는 것이 수년간 LP바에서 DJ 겸 바텐더로 활동하며 관찰해온 내 결론이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분명 손해다. 그깟 취향이 뭐라고. 어차피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훨씬 더 많을, 보잘것없는 취향을 핑계로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새롭고 빛나는 재능을 너무 쉽게 외면해왔던 게 아닐까? 심지어 평균 수명도 길어져 살아온 곱절을 더 살아야 할 수도 있으니, 이제부터라도 손해 보지 않도록 그런 초능력을 가져야겠다.

방호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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