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中에 기운 외교 시대의 종말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23일 미·일 회담 기자회견에서 중국의 대만 침공 시 ‘미국 군사 개입’을 또 한번 언급했다. 미국이 유지해왔던 ‘전략적 모호성’과 배치되는 발언에 백악관은 비상이 걸렸다. 바이든 대통령이 대만과 관련해 돌발 발언을 하고, 참모들이 이를 주워 담는 일이 세 번째 반복되고 있다. 일각에선 그가 또 말실수한 것이라고 치부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은 ‘진심’이라고 본다. 미 정부의 속내를 슬쩍 비추는 ‘의도된 실수’일 가능성이 있다.
20여 년 전 똑같은 논란이 있었다. 2001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중국의 대만 침공 시) 미국이 군사적으로 방어할 의무가 있나’란 질문에 “물론이다. 미국은 무엇이라도 할 것”이라고 했다. 몇 시간 뒤 부시 대통령은 “미국은 ‘하나의 중국’ 정책을 계속 유지할 것”이라며 물러섰다. 한 민주당 상원의원이 며칠 뒤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에서 “외교에서 ‘말(words)’은 중요하다. 부시 대통령의 발언 실수는 미국의 신뢰를 손상시켰다”고 비판했다. 당시 상원 외교위 중진이었던 바이든이었다.
31세 나이에 상원의원에 당선됐던 그는 닉슨 대통령이 마오쩌둥과 회동한 뒤인 1979년 ‘하나의 중국’이라는 원칙 하에 미국이 대만과 단교하는 과정을 생생히 지켜봤다. 무력 분쟁 시 미국이 대만에 군사적 자위 수단을 제공한다는 내용을 담은 ‘대만관계법’을 제정하는 과정에도 관여했다. 이 때문에 워싱턴 정가에선 “대만 문제의 민감성을 모를 리 없는 바이든이 미국의 ‘모호함’을 폐기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미·중 패권 다툼이 고조되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까지 겹치자 미 외교가에서도 “중국의 군사 야욕을 막을 수 있는 건 미국의 명료한 입장”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민주·공화당도 이 문제를 두고는 “미 대통령이 동맹국인 대만을 방어해 줄 것이라고 확실히 선언해야 한다”며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런 미국 내 상황은 미·중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를 하겠다는 한국의 과거 외교 전략이 얼마나 비현실적인지 보여준다. 트럼프 행정부 마지막 국방장관이었던 마크 에스퍼는 최근 기자와 가진 인터뷰에서 “한국의 안미경중(안보 미국, 경제 중국) 노선은 양립 불가능하다. 중국이 경제 의존도를 이용해 한미 안보까지 영향을 미치게 해선 안 된다”고 했다. 한국 전임 정부가 중국을 의식해 방치했던 사드 기지, 중국에 약속한 ‘3불(不)’ 등에 대한 비판이었다.
대만 정부는 바이든의 ‘군사 개입’ 발언이 나오자마자 급히 환영 성명을 냈다. 대만 외교 소식통은 이렇게 말했다. “한국은 (미국의 방어를) 당연하게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대만은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받는 수준의 안보 보장을 받아본 적이 없다. 우린 미국의 방어 공약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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