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플라자] 의사가 치료할 수 없는, 病보다 아픈 삶

남궁인 이대 목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작가 2022. 5. 26.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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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원하겠다” 고집하던 할머니, 알고 보니 청소 일 잘릴까 걱정 때문
의사는 치료에 전념하는 환자 바라지만… 그렇지 못한 분 더 많더라
그림=이철원

인턴 시절 병원은 내게 직장이자 삶의 공간이었다. 항상 수술복에 의사 명찰을 걸고 의사의 자아로 살았다. 병원은 대체로 의사 중심으로 돌아간다. 의사가 오더를 내면 다른 직종이 수행하고, 환자는 의사 스케줄에 맞추어 진료를 받거나 수술대에 오른다. 효율적 시스템이지만 의사는 병원의 많은 일을 자기 위주로 생각하기 쉽다.

당시는 외과 인턴이었다. 새벽에 일어나 회진과 브리핑에 참석한 뒤 수술방에 들어가거나 병동 일을 했다. 의사의 일은 끝없어 보였다. 피검사를 하고 심전도를 찍고 소변 줄을 넣고 간단한 동의서를 받는 것이 모두 인턴의 업무였다. 하루 두 번 병동을 돌면서 환부를 드레싱하는 고된 업무도 있었다.

그중 한 할머니가 있었다. 나이는 지긋했지만 외양은 요란한 할머니였다. 외모가 문제는 아니었지만 할머니는 유독 말을 듣지 않았다. 얼른 드레싱을 마치고 다른 일을 하러 가야 했지만 할머니는 제대로 자리에 있을 때가 없었다. 찾으면 병동 구석에서 통화 중이었다. 입원했는데 개인적 용무가 그토록 시급한가 싶었다.

할머니는 담낭염으로 수술받은 환자였다. 보통 담낭 제거 수술은 이틀 뒤 퇴원하지만, 할머니는 염증을 오래도록 방치했다가 응급실로 왔다. 염증이 복강까지 번져 배액관도 유지해야 했고 주사로 항생제도 써야 했다. 입원해도 공사다망할 정도니 병원에도 늦게 찾아왔으리라 짐작했다. 덕분에 나의 드레싱 업무도 연장되었다.

입원 기간이 길어질수록 할머니는 의료진을 더욱 무시하는 것 같았다. 하루는 교수님과 회진을 돌다가 통화하는 할머니를 발견했다. 담당 교수를 봤음에도 할머니는 본체 만체 통화에 열중하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환자를 잡아끌었다. “빨리 전화 끊어주세요. 교수님 회진이잖아요.” 한참 통화하던 할머니는 병석에 눕자마자 교수님께 말했다. “교수님, 퇴원하면 안 될까요?” 교수님은 열이 심하고 배액관을 뺄 수 없어 어렵다고 환자를 타일렀다. 퇴원은 절대로 무리였다. 할머니에게 얼마나 중요한 약속이 있는지 의아했다.

마침내 그날 저녁 드레싱 때 이유를 알게 되었다. 때마침 할머니가 병실에 있었고 거즈를 풀자 전화가 걸려왔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전화를 받자 커다란 통화음이 새 나왔다. 걸걸한 남성 목소리는 상대에게 모욕을 주고자 소리 지르고 있었다. 통화 내용을 요악하자면, 할머니가 일을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초조한 할머니가 죄송하다고 답하자 목소리는 으름장을 놓았다. “직장 보험이고 일자리고 다 잘라버릴 줄 알아. 당장 나오란 말이야.”

드레싱을 하던 손이 잠시 느려지는 것 같았다. 사람 마음을 긁는 통화였다. 할머니는 눈가가 빨개져 하소연하기 시작했다. “선생님, 이렇게 아파서 입원했는데도 일자리를 잃을 수가 있나요? 7년이나 쉬지 않고 출근한 청소 일이에요. 아파서 며칠 입원했다고 보험까지 자른다고 하면 어떻게 살아요. 열나고 아프고 퇴원은 안 시켜주고 매일 전화는 오고, 일자리 잃으면 어떻게 살지 막막하고 진짜 죽고 싶어요. 선생님, 이건 말도 안 되는 거 맞죠? 그렇죠?”

나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간신히 답했다. 안심하고 치료를 잘 받고 돌아가면 좋겠다며 다음 환자에게 돌아섰다. 부끄러웠다. 아무리 봐도 안심하고 치료를 잘 받을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외부와 단절된 채 치료에 전념하는 환자는 병원의 질서와 맹목이 만들어낸 환상이다. 실제 사람들은 죽기 전까지 병을 참아야 간신히 먹고산다. 우리는 병을 치료하지만 정말 그들을 지켜줄 능력은 없다. 오해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은 고작 오해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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