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명의 사는 게 뭐길래] 공인이 되는 훈련

장강명 소설가 2022. 5. 26. 03: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글쓰기는 독자 염두에 둔 행위
글 쓰는 사람은 모두 공인
인터넷선 반짝거리던 사람
정작 그가 쓴 글은 허점투성이
공인 되는 훈련 안 받았기 때문

“요즘 젊은 학생들이 글을 너무 못 씁니다. 첨삭 지도를 해주실 수 없을까요.” 자주 받는 요청이다. 대개 거절한다. 글쓰기 첨삭 지도라는 게 시간과 에너지가 굉장히 많이 든다. 나로서는 그 시간에 그 에너지로 다른 일을 하는 편이 훨씬 생산적이다. 엉터리 문장을 알아차리는 데에는 5초면 충분하다. 이때 뇌가 사용하는 에너지를 1이라고 치자. 그 문장을 어떻게 바꾸면 될지 궁리하는데 10 정도의 에너지가 든다.

한데 진짜 노동은 이제부터다. 그 문장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글쓴이에게 쉽고 차분하게 설명하는 데에는 대략 100 이상 에너지가 드는 것 같다. 문장이 아니라 글 전체의 주장과 논리 전개를 고치고 다듬는 과정은 한층 더 힘들다. 대개 글에 모순이 있는 이유는 생각에 모순이 있기 때문이며, 글이 흐리멍덩한 이유는 생각이 흐리멍덩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적절한 문답으로 생각을 함께 다듬어야 하는데, 글쓰기 첨삭이라기보다는 소크라테스식 산파술에 가깝다. 물론 시간이 한참 걸린다.

그런데 그렇게 첨삭 지도를 받으면 글쓰기가 나아질까? 글쓰기 훈련의 왕도는 첨삭 지도일까? 나는 글을 잘 쓰는 데 있어서 논리력이나 어휘력보다 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요소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쓴 글을 나를 모르는 많은 사람 앞에, 사회에, 내보일 수 있다’는 각오다. 글을 쓰려면 결연해져야 한다. 애초에 말과 글의 속성이 다르다. 축음기, 라디오, 확성기, 전화가 발명되기 전을 떠올려보자. 말은 내 앞에 있는 소수의 사람들을 상대로 하는 것이었다. 듣는 이가 수백 명을 넘기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말하기 대부분은 한 방향 웅변이 아니라 실시간으로 이뤄지는 쌍방향 대화였다.

반면 인쇄술이 나오기 전에도 글쓰기는 자기 앞에 있지 않은 독자를 염두에 두고 하는 행위였다. 읽는 이는 한 명일 수도 있지만 수만 명일 수도 있었다. 내가 만날 일이 없는 먼 나라 사람, 동시대인이 아닌 후세인들도 내 글은 읽을 수 있다. 그래서 글 쓰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공인이 된다. ‘보편 독자’를 상상하게 되기 때문이다.

왜 글쓰기가 말하기보다 더 부담스러울까? 왜 말을 할 때에는 정리되지 않은 생각, 정확하지 않은 수치도 쉽게 내뱉는 반면 글을 쓸 때는 조심스럽게 논리와 인용을 확인하고 오류를 점검하게 될까? 애초에 글쓰기가 공적인 활동이라 그렇다.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은 말하기도 잘해야 하지만 글쓰기를 더 잘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언론사에서 근무할 때 후배 기자, 인턴 기자들의 기사를 더러 봐줬다. 어려운 시험을 통과해서 뽑힌 인재들이니 다들 기본 실력은 있다. 하지만 글이 뭉툭하다. 수백만 명의 독자를 상상하고 겁을 집어먹은 나머지 자기 검열에 빠져서다. 그걸 뾰족하게 깎아주는 작업은 한 젊은이를 공인으로 변화시키는 일이기도 했다.

“학생들이 말을 시켜보면 다 잘하고 자기 생각도 있는데, 그걸 글로 써보라고 하면 참 못 써요.” 그런 푸념도 종종 듣는다. 나도 인터넷에 반짝거리는 게시물을 올리는 필자를 발굴했다고 여겼는데 막상 원고를 받아보니 시시해서 실망한 적이 몇 번 있다. 원인은 그들이 논리나 어휘가 모자라서가 아니라, 공인이 되는 훈련을 받지 못해서라고 생각한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새로운 의사소통 방법들이 등장했다. 휴대폰 메신저로 ‘뭐해? 어디야?’ 하고 묻는 것은 말하기일까, 글쓰기일까. 소셜미디어에 140자 단상을 올리는 일은 글쓰기일까? 또래들이 모이는 인터넷 익명 게시판에 ‘이거 나만 이상한가?’ 하고 그날 겪었던 일을 구어체로 몇 줄 적어 공감을 구하는 것은? 물론 그렇게 올린 게시물이 확산되어 여론을 형성하고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 그것도 좋은 현상이다. 글 쓰는 사람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그 또한 오만일 터. 공적인 이야기를 담는 사이버 공간도 많이 생겼다.

우리는 요즘 정부와 기업에 인터넷 여론을 파악하라고 요구한다.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고객 관리가 민주주의를 대신할 수는 없다. 인터넷 커뮤니티가 격문과 대자보를 대체할 수도 없다고 본다. 민주 사회에서는 시민 모두가 공인이 되는 훈련을 받아야 한다. 그게 글쓰기 교육의 목표 중 하나이기도 할 것 같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