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의 남성 뉴스앵커들이 마스크 쓰고 얼굴 가린 까닭은

김수경 기자 2022. 5. 25.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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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의 여성 인권 탄압에 저항

24일 오후 6시(현지 시각) 아프가니스탄 뉴스 전문 채널 톨로뉴스의 메인 뉴스가 시작되자 남성 앵커가 검은색 마스크로 코와 입을 가린 채 화면에 등장했다. 톨로뉴스에 앞서 1TV 등 다른 방송 뉴스의 남성 앵커들도 지난 22일부터 일제히 검은색 마스크를 쓴 채 뉴스를 진행하고 있다. 작년 8월 아프간을 완전 장악한 탈레반이 모든 여성 뉴스 진행자들에게 눈을 제외한 전체 신체 부위를 가리고 출연하라고 명령한 데 대한 항의의 표시다.

아프가니스탄 최초의 24시간 뉴스 네트워크 TOLOnews의 남성 앵커가 24일(현지 시간) 마스크를 쓰고 뉴스를 진행하고 있다./TOLOnews

탈레반은 이달 초 ‘모든 여성은 공공 장소에서 얼굴을 가려야 하고 어길 경우 벌금형이나 징역형에 처한다’는 내용의 법안을 발표했다. 지난 18일엔 ‘언론 매체에 등장하는 여성도 얼굴을 가려야 한다’고 했다. 이후 톨로뉴스를 비롯한 각 방송사에 탈레반 행동대원들이 들이닥쳐 복장 규제에 대한 경고를 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은 보도했다.

여성 앵커들은 뉴스 진행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한 여성 앵커는 “입을 가리고 몇 시간 동안 말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며 “단어를 정확하게 발음해야 하는데 이런 상태로 뉴스를 전달하기는 매우 힘들다”고 미 워싱턴포스트에(WP) 말했다.

남성 진행자들도 탈레반 정책에 조용한 반기를 들고 나섰다. 카불에 본부를 둔 1TV 뉴스의 앵커 레마 스페살리는 “탈레반의 명령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지만 남성들도 마스크를 쓰고 여성 동료들 옆에 서기로 했다”며 마스크 착용의 취지를 밝혔다. 외신들은 “남성 앵커들의 마스크 착용은 단순한 행동이지만 탈레반 치하에서 엄청난 대가를 치를 수 있는 행동”이라고 우려했다.

소셜미디어에서는 아프간 기자들이 시작한 ‘#프리허페이스(#freeherface·그녀의 얼굴에 자유를)’ 운동도 퍼지고 있다. 트위터에는 프리허페이스 해시태그가 붙은 게시물이 한 시간에 수백 개씩 올라오고 있다. 국제 인권 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탈레반의 규정은 표현의 자유와 개인의 자율성, 종교적 신념에 대한 여성의 권리를 노골적으로 침해한다”는 성명을 발표했고, 유엔 아프간 대표부도 “탈레반 대표가 국제사회에 약속한 인권 존중과 모순된다”고 비판했다. 국제언론단체 국경없는기자회에 따르면 탈레반이 아프간을 점령한 후 약 230개의 아프간 현지 언론사가 문을 닫았고 여기자 수는 700명에서 100명 미만으로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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