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끊임없는 총기 참사 뒤엔 막강한 '로비'·공화당의 '뒷짐'

김혜리 기자 2022. 5. 25. 22:1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텍사스 초등학교 참사에 '총기법 개정' 목소리 다시 커지지만
총기협, 한 해 2억5000만달러 뿌려..오히려 규제 완화 가능성
얼마나 더 울어야 미국 텍사스주 유밸디에서 초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한 24일(현지시간) 피해 아동의 가족들이 애통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유밸디 |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말고 다른 나라에선 아이들이 ‘오늘 내가 총에 맞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안고 학교에 가지 않는다.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은 우리가 선택한 일이다.” 크리스 머피 미국 민주당 상원의원은 24일(현지시간) 텍사스주 초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 발생 이후 “우리는 뭘 하고 있는가”라며 동료 의원들에게 격한 감정을 드러냈다. 머피 의원은 2012년 자신의 지역구인 코네티컷주 샌디훅 초등학교에서 어린이 20명과 교사 등 성인 6명이 사망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한 후 총기구매 자격을 강화하는 법안을 발의한 인물이다.

어린이 19명을 포함해 최소 21명이 숨진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하면서 미국 사회에서는 또다시 총기규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도 총기규제가 이뤄질 것이란 기대는 높지 않다. 미국 비영리단체 총기폭력아카이브(GVA)에 따르면 올해 들어 4명 이상 죽거나 다친 대규모 총격 사건은 최소 215건이다.지난해에는 4명 이상 죽거나 다친 대규모 총격 사건은 총 693건이었다. 이처럼 사고가 빈발하고 있지만 총기규제는 지금까지도 현실화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텍사스는 총기 난사 사건이 자주 발생하는 지역이다. AP통신에 따르면 2018년 텍사스주 휴스턴 지역의 산타페 고등학교에서 총격 사건으로 10명이 숨졌다. 2017년에는 주일 예배가 진행되던 서덜랜드 스프링스라는 작은 마을의 교회에서 24명이 넘는 사람들이 총기 난사로 살해됐다. 2019년에는 앨패소의 대형마트 월마트에서 총기 난사로 23명이 숨졌다.

하루에 평균 한 건 이상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하고 있지만 총기규제가 이뤄지기 어려운 이유는 뭘까. 우선 미국은 수정헌법 2조를 통해 개인의 총기 소유 및 휴대 권리를 보장하는 나라다. 총기 소지 권리는 정부도 침해할 수 없는 기본 권리라는 인식이 강하다.

총기 소유 권리를 주장하는 이익단체인 미국총기협회(NRA)의 막강한 로비도 무시할 수 없다. 500만명이 넘는 회원을 보유한 NRA는 워싱턴 정가에 대규모 정치자금을 후원하며 연방 및 주 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해온 것으로 유명하다. 한 해 2억5000만달러 이상의 예산을 쓰는 이 조직은 총기 소유권 옹호를 위해 막대한 로비 자금을 뿌리고 있다. 또 NRA는 선거철이 되면 총기 소유권을 얼마나 옹호하는지에 따라 후보자에게 A부터 F까지 등급을 매기는데, 이 같은 분류는 선거 결과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총기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애도’만 하고 ‘행동’은 하지 않는 공화당 의원들 때문에 총기규제 법안들이 의회 문턱을 넘지 못하는 것도 현실적인 난관이다.

지난해 민주당이 다수인 하원은 총기 구매자에 대한 신원조회를 강화하고 온라인 공간이나 사적 거래로 총기를 구매하는 것을 막는 법안을 통과시켰지만 공화당의 반대로 상원에서 막혔다. 샌디훅 초등학교 총기 사건 이후 2013년에도 상원에서는 총기 구매 시 신원조회를 강화하는 법안이 상당한 지지를 받을 것으로 보였지만 결국 의결 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통과되지 못했다.

공화당 소속인 그레그 애벗 텍사스 주지사도 텍사스주에서 총격 사건이 빈발함에도 과거 총기 소유를 장려하는 등 총기 소유를 적극 옹호해 왔다.

AP통신은 총기규제를 막으려는 NRA가 오는 27일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연례 총회를 개최한다면서 애벗 주지사는 물론이고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등 공화당 거물급 인사들의 연설이 예정돼 있다고 전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이날 총기 사건 후 성명을 통해 “미국은 두려움이 아니라 총기 로비와 비극을 방지하기 위한 행동에 나설 의지가 없는 정당 때문에 마비됐다”고 비판한 것은 이런 현실 때문이다.

총기규제가 강화되기는커녕 오히려 완화될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보수 성향이 우세한 미 연방대법원이 오는 6월 뉴욕주의 총기규제가 헌법에 어긋난다는 판결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뉴욕주는 1913년부터 가정 외 공공장소에서의 총기 휴대를 엄격하게 금지해 왔는데, NRA는 이 조치가 수정헌법 2조에 위배된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연방대법원의 결론은 뉴욕뿐 아니라 캘리포니아, 하와이, 뉴저지 등 유사한 총기규제가 있는 다른 주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김혜리 기자 harry@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