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무새 죽이기' 영화 속 화자 아역배우, 60년 만에 무대 복귀
세상과 삶에 대한 통찰과 온정이 담긴 미국 소설 ‘앵무새 죽이기’(To Kill A Mockingbird·1960)를 원작으로 한 동명 영화(1962)에서 이야기를 전하는 화자 스카우트 배역으로 출연한 메리 배덤이 60여 년 만에 관객들 앞에 섰다.
24일(현지시간) 시카고 ABC방송에 따르면 배덤은 현재 전국 순회 일정으로 시카고에서 공연 중인 브로드웨이 연극 ‘앵무새 죽이기’에 스카우트 이웃인 고약한 성격의 막말쟁이 할머니 헨리 듀보스로 변신해 열연하고 있다.
배덤은 10살 때인 1962년, 당대 최고의 스타 그레고리 펙이 주인공 애티커스 핀치 변호사 역을 맡은 영화 버전의 ‘앵무새 죽이기’에서 애칭 스카우트로 불리는 핀치의 딸, 진 루이스 핀치로 분해 스타덤에 올랐다.
배덤은 최연소 나이로 아카데미상 여우조연상 후보에까지 올랐으나 중학교에 진학하며 활동을 접었다.
배덤은 뉴욕타임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스스로를 “정원 가꾸기가 취미이고 손주들과 놀기 좋아하는 은퇴한 노인”이라며 “얼떨결에, 상상도 못 해본 역할을 맡아 다시 무대에 서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프로덕션 측에서 갑자기 전화를 해 오디션에 초청했다”고 밝혔다.
연출가 바틀렛 셔는 “순회공연을 앞두고 아이디어 회의를 하던 중 갑자기 배덤이 떠올랐다”며 “캐스팅 팀을 시켜 그를 찾아냈다”고 설명했다.
그는 “첫 워크숍에서 배덤의 연기를 보고 ‘할 수 있겠다’는 판단을 했다. 오래 무대에 서지 않았지만 훌륭한 배우 자질이 있어 멋지게 해낼 것이라 믿었다”며 “작품에 배덤이 참여하게 된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기쁘다”고 말했다.
배덤은 연극 무대에 서게 된 데 대해 “놀라운 일이다. 너무나 재미있다”며 “하지만 편협하고 인종차별적인 약물 중독자 듀보스 역할이 쉽지만은 않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60년 전에도 우연한 계기로 영화 ‘앵무새 죽이기’에 출연하게 됐었다”고 회상했다.
소설 ‘앵무새 죽이기’를 쓴 하퍼 리가 1961년 퓰리처상을 받고 영화 제작 준비를 할 당시 캐스팅 팀은 이야기의 배경인 앨러배마주 버밍햄에서 연기 경험이 전혀 없는 배덤을 주인공으로 발탁했다.
배덤은 “어머니가 지역 극단에서 활동한 것이 인연이 돼 스크린 테스트를 받았는데 덜컥 통과가 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의 배우 경력은 오래 가지 않았다. 1966년 5번째 작품을 끝으로 활동을 접었고 1998년 ‘앵무새 죽이기’ 다큐멘터리에 출연할 때까지 대중에 얼굴을 내보이지 않았다.
23세 때 결혼해 두 자녀를 낳았고, 수의사가 되고 싶었던 어릴 적 꿈을 대신해 버지니아 농장에서 동물들을 키우며 살고 있다고 그는 밝혔다. 배덤은 “‘앵무새 죽이기’ 영화를 다시 보는 건 힘든 일”이라며 “함께 출연한 이들 대다수가 이미 세상을 떠났고 남아있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따금 대학 또는 사교클럽으로부터 초대를 받아 작품에 관한 강연을 하곤 한다”며 “‘앵무새 죽이기’는 내 인생 그 자체”라고 덧붙였다.
시나리오 작가 애런 소킨이 각본을 쓰고 에미상 수상 배우 리처드 토머스가 핀치 변호사 역을 맡은 연극 ‘앵무새 죽이기’ 전국 순회공연은 지난 3월 뉴욕주 버펄로에서 시작돼 보스턴을 거쳐 시카고애서 공연중이다.
손봉석 기자 paulsoh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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