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자들은 왼손·오른손을 구별 못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 책의 목표는 왼쪽과 오른쪽을 구별하는 것이다.”
최강신 이화여대 스크리튼학부 교수의 신간 <왼손잡이 우주>의 첫 문장이다. 오른쪽과 왼쪽은 당연히 다른 것 아닌가? 책은 “놀랍게도 1956년까지만 해도 모든 물리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은 왼쪽과 오른쪽을 구별할 수 없다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좀 더 와닿는 가정으로 바꿔 이야기해보자. 우리와 공통적으로 알고 있는 비대칭 물체가 없는 외계인에게 ‘왼쪽’이라는 뜻을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1964년 <양손잡이 자연세계>를 쓴 물리학자 마틴 가드너가 제시한 이 ‘오즈마 문제’는 당연하게만 여겨온 왼손과 오른손의 구별이 현대 물리학에서도 쉽게 해결하기 힘든 명백한 ‘난제’임을 보여준다.
“물리학계에서 널리 알려진 난제인 동시에, 일반 독자에게도 물리학에 대한 이해와 흥미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교육적으로도 가치가 있는 문제죠. 물리학이란 자신이 기존에 갖고 있던 생각을 엄격하게 되묻고 따지는 고된 훈련이라는 사실과, 이 문제를 푸는 과정에 쓰이는 과학의 개념들을 알려줄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입니다.”
‘거울 대칭’이 깨지면서 충격
처음엔 “자연은 못 생겼다”
나중엔 “오히려 더 아름답다”
지난 16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연구실에서 만난 최 교수는 인터뷰 내내 “저도 이해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부끄러워하지 않아요”라는 표현을 여러번 썼다. 이 우주가 ‘모르는 것’으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매번 혼란과 마주하며 앎에 다가가는 일이 누구에게나 쉽지 않음을 강조한 것이다. 심지어 평생을 물리학에 바쳐온 석학에게도 마찬가지라며, 최 교수는 독자들에게 용기를 준다.
그래서 왼쪽과 오른쪽을 어떻게 구별하냐고? 물론 이 책을 끝까지 읽어나가면 답에 도달한다. 살짝 지름길을 안내하자면 1956년 물리학자들이 발견한 작은 입자 ‘중성미자’가 중요한 힌트다. 물리학자들은 중성미자가 오직 왼쪽으로만 돌아간다는 사실을 알아낸 뒤 충격에 빠졌다. 당시까지 물리학의 기본 토대를 이룬 ‘왼쪽에서 일어나는 일이 오른쪽에서도 일어난다’는 ‘거울 대칭’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자연이란 (비대칭적이기에) 상당히 못생겼다”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새 전제를 수용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은 ‘중성미자의 발견’이라는 답을 알려주는 데 초점이 있지 않다. 전기와 자기의 상대적인 관계를 통해 오른쪽과 왼쪽이 구분된다는 사실을 밝히는 데 책의 많은 부분이 할애돼 있다. 중·고교 교과 과정에서 그저 ‘외우기’를 강요받았던 ‘오른손 법칙’이 발견되고 증명되는 과정이 자세하게 설명된다.
최 교수는 “사실 과학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가깝다”면서 설명을 이어갔다. “우리는 초등학교 때부터 전류란 +극에서 나와 -극으로 흐른다고 배우지만, 그것은 임의적인 약속이죠. 전류가 흐르는 방향, 또는 ‘자석의 N극은 어떻게 결정하는가’라는 질문 앞에서 우리는 이것이 단순한 ‘약속’인지 아니면 이를 구분해주는 특정한 현상이 있는지를 먼저 배워야 합니다.”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 혹은 -라고 붙인 전하의 이름, N과 S라 붙인 자기의 극 이름은 서로 바꿔 불러도 상관없는 ‘임의적’인 약속이었지만, 전기와 자기의 방향이 이루는 관계성만큼은 항상 특정 방향으로만 기울어지는 ‘비대칭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전류가 흐르는 방향과 자기장이 흐르는 방향의 관계는 항상 ‘엄지척’을 한 ‘오른손’의 모양과 결부돼 있는데, 이는 왼손과 오른손에서 같은 일이 일어난다는 ‘거울 대칭’을 위반하는 놀라운 발견이 된다.
“우리가 자연에서 보는 모든 것들이 다 양쪽 방향으로 대칭인데, 왜 전기와 자기의 관계성은 이렇게 비대칭적인가. 중성미자는 오른쪽으로 돌 수도 있었는데 왜 왼쪽으로만 도는가. 당연하게 여겨질 수 있겠지만, 대칭을 통해 보이지 않는 세계를 가늠해왔던 물리학자들에겐 반드시 규명해야 할 문제가 되는 것이죠.”
중성미자의 발견 이후 세계를 설명하는 입자물리학의 표준모형은 홀짝성(거울 반사)이 깨진 비대칭이야말로 입자물리학의 중요한 특징임을 가장 기본적인 전제로 삼고 있다. 최 교수는 “처음 깨진 비대칭을 발견한 물리학자들은 자연이 못생겼다고 생각하고 좌절했지만, 이후 비대칭 구조가 더 아름답다는 것을 깨달았다”면서 “기술적인 차원에서는 물리학이 지금까지 제대로 측정하지 못했던 입자의 무게를 실제와 가깝게 설명할 수 있는 논리적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그렇고, 좀 더 넓은 차원에서는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던 ‘못생긴’ 자연을 통해서만 더 많은 것들을 배우고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얇은 분량, 복잡한 수식은 일절 배제한 짧고 간명한 질문들, 외계인과 인간의 대화 등 흥미로운 서술 방법까지 얼핏 보기에는 물리학 초심자들에게도 거부감 없이 다가오는 책이지만 결코 만만한 내용은 아니다. 전기와 자기의 관계, 전자와 양성자, 힉스 입자까지 물리학 기본과 심화를 오가는 다양한 개념들을 소개하는 책을 읽다보면 어느새 내가 알고 있던 세계가 진실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씨름한다.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다 하더라도, 앎의 ‘고된 훈련’로서의 물리학의 재미를 느끼기에는 충분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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