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에 지갑 닫았다.. 악순환에 빠진 경제

소비 침체로 번진 물가 상승
4월 휘발유·경유 소비량 20% ↓
1분기 식료품 등 필수 소비
실질 지출액 3.1% 줄어들어

연일 치솟는 물가로 소비마저 줄어드는 경기침체 터널 국면에 진입하고 있다. 큰 폭으로 뛰는 유가 탓에 지난달 휘발유와 경유 소비량이 20% 내외의 큰 폭으로 떨어졌다. 소비자의 실질지출은 지난해보다 3%나 떨어졌다. 소비위축 조짐은 급기야 제조업 업황부진이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경기침체(Stagnation)와 고물가(Inflation)가 결합한 스태그플레이션 진입 가능성을 제시해온 신중론을 넘어 이미 진입했다는 비관론이 우세한 형국이다.

25일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지난 4월 국내 휘발유 소비량은 563만9000배럴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4월(714만1000배럴) 대비 21% 감소한 수준으로, 2018년 10월(559만4000배럴) 이후 3년6개월 만의 최저치다.

경유 소비도 위축됐다. 4월 경유 소비량은 전년동기(1410만6000배럴) 대비 17% 감소한 1171만5000배럴로 집계됐는데, 2019년 9월(1085만7000배럴) 이후 2년7개월 만의 최저치다. 이는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2021년보다 휘발유·경유 소비량이 줄어든 것이다. 최근 국제유가가 출렁이면서 원자재와 소비재 등 너나 할 것 없이 치솟는 물가에 소비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소비자의 지갑이 닫히고 있다는 증거는 물가상승률분을 제거하고 본 실질지출 감소에서도 드러난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지난 1·4분기 전국 1인 이상 가구는 식료품·비주류 음료 등 필수소비에 월평균 38만8000원을 지출했다. 전년동기 대비 0.9% 증가한 금액이지만 물가를 고려한 실질지출 금액은 3.1% 줄어들었다. 지출금액만 늘었을 뿐 실제 소비 규모는 오히려 줄어들었다는 의미인데, 씀씀이 자체는 커졌을지 몰라도 실제 지출한 금액만큼 소비의 질은 좋아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실제로 1·4분기 가계소득이 늘어난 만큼 지출은 늘어나지 않았다. 가계의 처분가능소득에서 소비지출이 차지하는 평균소비성향은 전년동기 대비 3.3%p 줄어든 65.6%로 재차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문제는 경기상황도 좋지 않다는 데 있다. 한국은행이 이날 발표한 '2022년 5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 및 경제심리지수(ESI)'에 따르면 제조업의 업황 BSI는 전월 대비 1p 하락한 86으로 나타났다. BSI는 기업의 체감경기를 알 수 있는 지표인데, 비제조업은 1p 올라간 데 반해 제조업의 업황 경기가 다소 부진하다고 본 것이다. 이 역시 원자재 가격 상승 등 물가상승이 원인이라고 한은은 봤다. 김대진 한은 경제통계국 기업통계팀장은 "중국 내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주요 도시 봉쇄조치, 원자재 가격과 물류비 부담 가중 등의 영향으로 제조업 업황이 전월에 비해 둔화됐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이미 우리나라가 스태그플레이션에 진입했다고 진단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이날 개최한 '스태그플레이션 진입 가능성 진단과 정책방향' 세미나에서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전형적인 공급비용 상승충격이 유발한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이라며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은 더욱 악화될 수 있고, 그 요인으로 노동시장 경직성, 금리인상·유동성 회수 등 긴축적 통화정책, 추경 등 재정지출 확대 등을 꼽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