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식 제한' 갈등 확산.."중대재해 우려 vs 생존권"
도롯가를 따라 하늘로 길게 뻗은 크레인 기계들. 하나 같이 '연식 제한 철폐'라는 현수막을 내걸었습니다. 모두 건설 현장에 투입되는 중장비들로 무거운 건설 자재를 들어 올리는 '하이드로 크레인'과 작업자가 올라타 고층 외벽 작업을 할 수 있는 ' 고소작업차'들입니다.
이른 아침부터 공사 현장에 있어야 할 이 중장비들이 도롯가에 멈춰 서, 자재 대신 현수막을 든 이유는 뭘까요?
■ "안전 검사 '합격'했지만…연식 10년 넘은 장비는 'No'"
건설 현장에서 '스카이차'라고도 불리는 '고소작업차'를 운전하는 김대중 씨는 현장을 찾은 KBS 취재진에게 '안전검사결과서'부터 보여줍니다.
고소작업차는 사람을 태운 직사각형 모양의 작업대와 연결된 크레인을 45미터 높이까지 늘릴 수 있어 고층 외벽 작업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건설 장비입니다.
대부분의 건설 장비들이 그렇겠지만, 고소작업차 또한 위험한 작업에 투입되다 보니 안전 검사할 항목이 많습니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2년마다 한 번씩 안전보건공단이 검사한 결과서에는 '합격'이 표시돼 있습니다. 하지만, 차량등록증을 확인해 보니 연식은 2012년, 10년이 넘은 장비입니다.
운전기사 김 씨는 "안전이 검증된 장비임에도 10년이 넘었다는 이유로 건설 현장을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고 하소연합니다. "인근 건설 현장에서 10년이 넘은 건설 장비는 출입이 제한된다는 통보를 받고 며칠째 작업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일당은 고사하고 최근 국제 유가 인상에 따른 경윳값 급등 부담까지 더해 생계가 힘들어졌다는 김 씨는 도롯가에 자신의 고소작업차를 세워두고 머리에 빨간 띠를 두른 채 9일째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일감이 끊긴 건 기중기의 일종인 '하이드로 크레인' 운전기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장비도 같은 건설 현장에서 15년의 연식 제한에 걸렸습니다. 민간 인증 검사 업체가 발행한 안전 검사 보고서에도 역시 '합격'이라고 적혀있었습니다.
■ 건설사 "중대 재해 우려…노후 장비는 사고 가능성 커"
건설 현장의 연식 제한에 걸린 장비 기사들은 "건설사 측에서 오래된 장비는 사고가 잦다는 이유로 공사장 출입을 금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시공을 맡은 건설사도 취재진에게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따라 안전 사고에 따른 처벌이 우려되는 건 사실이다, 그동안 사고 통계를 확인했고, 사고가 잦았던 일부 건설 장비에 최대 15년의 연식 제한을 하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안전 검사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평소 중대 재해나 안전 사고가 잦았던 건설 장비의 경우 연식이 오래되면 그만큼 사고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는 입장으로 해석됩니다.
하지만 장비 기사들은 연식이 10년이 지난 장비는 150여만 원의 검사비를 들여 수십여 개의 볼트를 교체하고 있는 만큼 안전상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일방적인 연식 제한은 근거가 빈약하다는 겁니다.
■ "자제해달라" 중재 나선 국토교통부…갈등 확산 예고
이러한 건설 현장의 '연식 제한' 갈등은 평소에도 계속된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3월, 국토교통부는 대한건설협회와 대한건설기계협회 등에 「 건설기계 연식 제한 자제 및 지도·감독 요청」공문을 발송합니다.
"안전 사고 예방을 명분으로 건설사에서 연식을 제한함에 따라 하도급사나 건설기계대여업자가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며, " 건설기계관리법에 따라 법정 정기 검사에 합격한 장비에 대한 연식 제한 자제를 요청하니 건설사에서는 적극 협조해 주시기 바란다"는 내용입니다.
심지어 "국토부 소속 또는 산하 기관에서 소관 건설현장에서 연식 제한으로 인한 갈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지도·감독해달라"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사각 지대도 발견됩니다. 건설기계관리법 상의 건설기계는 '하이드로 크레인'을 포함해 모두 27종입니다. 화물차와 크레인을 결합해 만든 '고소작업차'는 건설 현장에 주로 투입되지만, 화물차로 분류돼 건설기계 종에서는 빠져있습니다.
국토부 조사에 따르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1분기인 3월까지 전국 건설 현장에서 안전 사고 등으로 55명이 숨졌습니다. 이 가운데 100대 건설사 현장에서 14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에 따라 사업주의 형사 처벌을 우려한 건설 현장의 모습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노동계는 전국 곳곳의 연식 제한 사례를 확인하겠다고 밝힌 만큼, 연식 제한 조치를 둘러싼 건설 노동 현장의 갈등이 확산하는 모양새입니다.
[연관 기사]“중대재해 우려 vs 생존권”…건설장비 ‘연식 제한’ 갈등 (2022.05.24/ KBS 7시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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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국회 기자 (skh0927@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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