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보험에 가입하지 않는 게 이득이라는 그들 [6411의 목소리]

한겨레 2022. 5. 25.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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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1의 목소리]수습사원이라며 4대 보험 가입을 미루더니, 다음엔 차감될 보험료를 현금으로 주겠다며 4대 보험에 가입하지 않는 게 이득인 것처럼 말하지. 4대 보험에 가입하지 않으면 금융거래 때 편의 제공이나 건강검진, 연차, 실업급여 등 혜택이 없어진다는 건 경험하기 전까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더라고. 입사할 때 이렇게 첫 단추를 잘못 끼우니..
2018년 9월28일 찾은 서울 종로구의 한 귀금속 세공수리업소 책상 위에 각종 작업 도구가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유미(필명) | 금속노조 주얼리분회 주얼리회사 노조원

현아! 잘 지냈어?

내 걱정 많이 했지? 처음부터 노조까지 할 생각은 아니었어. 현장 점거해서 밤새 회사를 지킨다고 하니 많이 놀랐지? 정말 이런 방법밖에 없냐고? 뉴스에나 나올 법한 집회에, 이제는 현장 점거까지…. 사실 나도 실감이 안 나.

코로나19로 회사가 힘들다며 지난해(2021년) 3월 갑자기 무급휴직 하라고 할 땐 한달만 쉬는 줄 알았지. 그래서 무급휴직동의서에 사인한 건데, 회사에선 4월부터 고용유지보조금 신청을 위해서라며 몇몇에게 4~5월 월급의 70%를 받는 유급휴직을 하게 했고, 내 의사와 무관하게 나도 그 대상이 됐어. 6월에야 회사에서 연락이 왔고 다시 출근했지만, 일이 없어서 휴직한 게 아니니 유급휴직 기간에도 회사는 수시로 부르더라. 대신 고용유지보조금 신청 요건에 맞게 출퇴근 기록을 남기지 말라더라고. 줄어든 수입을 메꾸려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고 싶어도 대기 상태에 있어야 했으니 구할 수가 없었지.

고용유지보조금 지원기간 연장으로 회사는 거짓 휴직을 강요하고, 갑자기 줄어든 수입으로 힘들었던 난 너도 알다시피 사직서를 들고 출근했어.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19로 정부는 회사에 고용유지지원금을 줬는데, 그 지원금이 내 의사와는 무관하게 휴직과 고용 불안으로 이어진 거지.

이런 상태로 일할 수 없어서 그만두려는데 회사는 조금만 참아달라고, 실업급여도 받게 해주겠다고, 나라에서 주는 급여를 자기들이 주는 것처럼 말하더라. 베트남에서 엄청난 피해를 보고 돌아온 사장은 그동안 부서별로 몇몇에게만 폭탄 돌리기 식으로 건넸던 동의서를 모든 직원에게 건네고 유급휴직동의서와 단축근무동의서를 쓰도록 했어. 휴직과 임금 삭감이 우리 모두의문제가 된 거지.

노조를 만들기 전 직원들과 한 면담에서 사장은 그동안 베트남에 머무느라 부사장이 무·유급 휴직으로 임금을 삭감한 것을 몰랐다며 ‘회사를 살리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니 이해를 바란다’고, 제발 노조는 만들지 말라고 하는 거야. 그런데 직원 과반수가 가입한 노조가 생기니, 유급휴직 임금삭감률이 30%에서 10%로 쉽게 바뀌더라고.

노조가 만들어지고 단체협약을 맺는 과정은 지금 생각해도 참 어려웠어. 점심시간을 40분에서 60분으로 바꾸는 데만 5개월이나 걸렸단다. 처음 노동조합에 관해 들었을 땐 이렇게 힘든 과정을 겪을 것으로 생각지 못했어.

같은 일을 하는 지인이 코로나19로 피해를 많이 본 종로 주얼리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려고 한다고 말했어. 혼자서 회사와 싸우는 것보다 노동조합에 가입해 하는 건 어떠냐며 종로 귀금속 거리에서 받은 노조가입안내서를 내게 줬지. 거기에 빼곡하게 적힌 종로 주얼리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가슴을 먹먹하게 하더라.

환기구도 없는 좁고 밀폐된 공간에서 청산가리, 질산, 황산 등 이름만 들어도 무서운 화공약품을 사용해 귀금속을 세공하는 수작업은 힘들었어. 하지만 기계를 조작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사고와 관련해 그 어떤 보호장비 지급도 없었고, 사전 안전교육도 없이 위험하고 미숙하게 현장에 적응해나가야 했지. 위험한 환경에서 매일 작업하는데 건강검진조차 받은 적 없을뿐더러, 독한 화공약품들로 인해 호흡기에 문제가 생겨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했어. 또 수작업과 기계작업을 하다 자칫 손가락이라도 잃게 돼도 산재로 인정받기 어렵다는 거야. 회사 사정이 안 좋아 감원이라도 하면 누구든 속수무책으로 회사를 나가야 해. 한창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오직 노동자들에게만 희생을 감수하라고 요구하던 1970~80년대 노동 현장 모습 같지 않아?

종로 주얼리 사용주는 근로기준법 적용에 예외가 많은 작은 사업장을 운영해. 그래야 4대 보험에 가입하지 않아도 되거든. 처음에는 수습사원이라며 4대 보험 가입을 미루고, 차감될 보험료를 현금으로 주겠다며 4대 보험에 가입하지 않는 게 이득인 것처럼 말하지. 4대 보험에 가입하지 않으면 금융거래 때 편의 제공이나 건강검진, 연차, 실업급여 등 혜택이 없어진다는 건 경험하기 전까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더라고. 입사할 때 첫 단추를 잘못 끼우니 잘못된 관행이 계속 유지되는 곳이 이 주얼리 업계란다. 누구는 “청년통장, 청년우대형 주택청약통장에 가입하고 싶었는데 4대 보험이 없어서 불가능”했다고 한숨을 쉬더라고.

누구는 유급휴직 하며 쉬면 좋은 것 아니냐고 하겠지. 그런데 원래 적은 월급으로 한달 살기도 빠듯한 사람들이 월급 30%가 삭감됐는데, 아르바이트도 할 수 없는 대기 상태가 되니 정말 힘들더라. 아직 할 말이 많은데 일단 이만 줄일게.

네게 다음 안부를 전할 땐 모든 일이 해결되어 있기를 바라며, 너의 친구가.

서울 종로 ‘귀금속 거리’ 등에서 일하는 세공노동자들이 2018년 9월4일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전국금속노동조합 제공
노회찬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4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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