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1000권을 읽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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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다섯살이다.
주말에는 도서관에서 아이, 아내, 그리고 못난 아빠 몫으로 각각 5권의 책을 빌렸다.
그런데 아이와 그림책을 읽으면서 어느 순간 40대 아빠가 그림책의 매력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떨 때는 아이보다 그림책에 빠진 아빠의 모습을 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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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백수웅 | 변호사
아이는 다섯살이다. 엄마, 아빠는 맞벌이다. 일도 많고 대학원 공부도 하다 보니 아이와 놀아줄 시간이 많지 않다. 그래서 아빠는 자기와의 약속을 만들었다. 집에 돌아오면 아이에게 꾸준히 그림책을 읽어주는 것이다. 주말에는 도서관에서 아이, 아내, 그리고 못난 아빠 몫으로 각각 5권의 책을 빌렸다. 그리고 일주일 동안 그 15권을 읽었다. 아직 아이의 문해력이 그리 높지 않아 한권당 두세번씩 읽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렇게 어느덧 1000권 가까운 책을 읽었다.
내가 좋은 아빠라고 자랑하는 것은 아니다. 할 수 있는 것이 그것밖에 없었다는 항변이다. 또 1000권을 읽었다고 우리 아이가 특별히 똑똑하지도 않다. 꽉 찬 다섯살인데 아직 한글도 못 읽고 열까지 셀 때 여덟을 빼먹는다. 그런데 아이와 그림책을 읽으면서 어느 순간 40대 아빠가 그림책의 매력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떨 때는 아이보다 그림책에 빠진 아빠의 모습을 보곤 한다.
책이라는 게 그렇다. 쉽게 만든 것처럼 보여도 그냥 만들어진 것이 없다. 재작년 우연히 책 집필을 의뢰받았다. 퇴고를 반복하면서 지치기도 했다. 편집자의 지적을 들을 때면 자괴감이 들었다. 학창 시절에 나름 글 좀 쓴다 생각했건만,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다. 한편의 글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들의 노력이 필요한지 알게 됐다.
그림책도 마찬가지이다. 얼핏 보면 “엄마·아빠 말 잘 들어라” “유치원 생활 잘해라” “착하게 살아라” 같은 뻔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사소한 단어 하나에도 작가와 편집자의 생각과 노력이 묻어 있다. 게다가 그림책은 텍스트를 통해 메시지를 주고받는 일반 책들과도 다르다.
간혹 평소처럼 텍스트에만 집중해 글만 또박또박 읽어가는 아빠에게 아이가 묻는다. “얘는 왜 치마를 입었어요?” “아빠 왜 얘는 핑크색이에요?” 등등. 아빠는 뒤늦게야 깨닫는다. 아이의 별거 아닌 것 같은 질문이 사실은 작가가 심어놓은 상징이자 장치였다는 걸. 그런 것들이 그림책에서는 작지만 중요한 부분이라는 걸 말이다. 회독이나 문해력 강화가 필요한 것은 아이가 아니라 아빠였다.
맘카페에서 ‘그림책 1000권을 읽고 나면 아이가 달라진다’는 말이 오간다고 한다. 하지만 그 1000권을 읽는 사이 아빠도 조금씩 달라진다. 사소한 것을 사소하게 다루지 않고 있다고나 할까.
사회생활도 마찬가지 아닐까. 사회적으로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것들이 사실 중요하지 않은 경우도 많다는. 그래서 그림책은 아이들을 위한 책이라지만 사실은 어른들을 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제는 1000권을 넘어 1500권을 목표로 달려가기로 했다. 아이뿐만 아니라 아빠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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