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편하게 살자고 목숨 걸어야 할까

이왕구 2022. 5. 2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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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 출범 맞춰 안전·환경 규제 완화 잇따라
2년  준비한 '일회용 컵 보증금제'도 전격 유예 
 '소비자 편의 만능주의' 방치는 더 큰 비용 유발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지난 6일 서울 중구 한 커피전문점에서 진행된 일회용 컵 보증금제 시연회. 6월 10일 시행 예정이었으나 새 정부는 중소상인들의 어려움을 고려해야 한다며 시행을 6개월 유보했다. 뉴시스

서울 서남권에 사는 나는 시내로 나갈 때는 주로 마포대교를 이용한다. 지난 일요일 오랜만에 마포대교를 건너는데 ‘질주 본색’을 과시하는 차량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었다. 서울시가 지난달 중순부터 한강 20개 교량을 ‘안전속도 5030’(도시부 일반도로는 시속 50㎞, 이면도로는 30㎞로 속도 제한) 탄력운영 구간으로 지정해 최고 속도를 10㎞ 높였기 때문이다. 성능 좋은 차들이 도로에 넘쳐나는 시대에 고작 시속 60㎞로 달리는 차들을 보고 질주 본색이라고 한다면 허풍 아니냐는 지청구를 들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처럼 제한 속도 50㎞가 주는 안정감을 시속 60㎞의 해방감보다 선호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시속 60㎞인 차와 사람이 부딪히면 10명 중 9명이 사망하지만 50㎞인 차와 부딪히면 5명이 사망한다.

서울시가 안전속도 5030을 전면 시행(2021년 4월)한 지 1년도 안 돼 탄력운용 카드를 꺼낸 명분은 ‘운전자들의 불편함 호소’였다. 제도 안착 전 규제 완화는 시기상조라는 목소리도 제법 나왔지만 서울시는 외면했다.

서울시뿐 아니다. 경찰도 윤석열 정부와 잰걸음으로 보조를 맞추고 있다. 새 정부는 인수위 시절부터 안전속도 5030 탄력운영을 주장했는데 경찰청은 최근 도시지역 일반도로의 제한속도 상향조건을 추가한 새로운 매뉴얼을 전국 경찰에 전파했다. 한 번 물꼬가 트이면 규제를 완화해달라는 압력은 높아지고 어지간해선 되돌리기 어렵다. 서울시도 벌써 제한속도를 상향할 만한 구간을 추가로 조사한 뒤 경찰에 검토를 요청했다.

‘소비자 편의’ ‘이용자 편의’라는 명분은 이처럼 규제 무력화를 위한 만능키처럼 쓰인다. 무려 2년이나 준비됐던 ‘일회용 컵 보증금 제도’가 시행 예정일(6월 10일)을 불과 3주일 앞두고 유예된 경위도 비슷하다. 환경부는 이미 지난 2월 컵 보증금 관련 고시와 공고를 행정예고했고, 지난 6일에는 현장 시연회까지 열었다. 그랬던 환경부가 지난 20일 “코로나19로 중소 상공인에게 회복기간이 필요해 12월 1일까지 제도 시행을 유예한다”고 갑자기 입장을 바꿨다.

며칠 사이에 바뀐 건 윤석열 정부가 들어섰다는 점뿐이다. 환경부는 프랜차이즈 가맹점주들이 처리비용 부담(컵당 11원)과 업무량 증가, 그리고 일회용 컵을 선호하는 손님과의 마찰 등을 호소해 유예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비용 증가분은 미반환 보증금 등을 활용하면 어느 정도 상쇄된다는 게 환경단체들의 분석이다. 결국 ‘손님들의 불편 호소→ 업주들의 불안 → 여당의 압박’이 연쇄적으로 작동해 오랫동안 준비됐던 플라스틱 재활용 정책이 하루아침에 뒤집힌 셈이다.

그뿐 아니다. 코로나 사태로 2년간 유보됐던 매장 내 일회용품 사용금지를 재개(4월 1일)할 때도 사정은 비슷했다. 당초 과태료를 물리려던 계획은 인수위가 자영업자들의 반발을 이유로 보류를 주문하면서 결국 자율규제로 바뀌었다. 환경부 관계자는 “‘손님이 일회용품을 사용하고 싶다고 하는데 어떻게 막을 것인가’라는 자영업자들의 우려가 거셌다”고 털어놓았다.

생산성 혁신의 발목을 잡거나 이익집단의 지대를 보호하는 과잉 규제는 어떤 정부가 들어서건 폐지되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안전이나 환경과 같은 우리 사회가 합의한 공공적 규제마저 ‘소비자 편의’라는 명목으로 무력화하는 것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공익을 위한 규제라 해도 이를 불편해하는 목소리는 나올 수밖에 없다. 정치인들이 이들에게 귀를 기울이면 잠깐의 이득을 챙길 수 있을진 모른다. 그러나 ‘내 불편은 조금도 못 참겠다’는 이기주의 윤리를 방치하면 언젠가는 더 큰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한다.

이왕구 논설위원 fab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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