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쪽짜리 고래고시 1년.. 밍크고래는 죽어갔다

고은경 2022. 5. 25.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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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고시 개정 1년.. 고래류 혼획, 위판 수 되레 증가 
혼획 고래 위판 금지하고 해양보호생물로 지정해야
지난달 29일 오전 강원 고성군 봉포항 동방 2.4㎞ 해상의 정치망에서 혼획된 밍크고래 한 마리를 해경이 확인하고 있다. 불법 포획 흔적이 없어 해경이 고래류 처리확인서를 발급한 해당 고래는 4,870만 원에 위판됐다. 속초해경 제공

지난달 3일 경북 포항시 영일만 포항항에서 불법 포획한 고래를 운반한 일당이 해양경찰에 적발됐다. 창고에는 밍크고래 네 마리로 추정되는 고래고기 339자루(해경 추산 시가 약 6억 원)가 실려 있었다. 단일 사건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였다.

지난해 5월 '고래자원의 보존과 관리에 관한 고시'(이하 고래고시)가 개정됐지만 여전히 밍크고래 불법 포획이 계속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고래고시 개정 1년 실효성과 개선 방안' 토론회에서 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정책적 결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밍크고래 보호종 지정과 고래 위탁판매 금지 필요성도 논의됐다. 토론회는 위성곤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시민환경연구소, 환경운동연합이 공동 주최했다.

경북 포항해양경찰서는 불법 포획한 고래고기 339자루가 실린 9.77톤급 어선을 적발했다. 포항해양경찰서 제공

고래고시 개정 1년, 혼획된 고래 위판 허용하는 한계

고래고시 개정 내용. 시민환경연구소 제공

전문가들은 고래고시의 허점으로 '혼획(허가 어업의 조업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어획된 것)된 고래류는 위판 가능 유지' 조항을 꼽았다. 좌초, 표류된 고래류의 위판과 불법 포획된 고래류의 공매는 '가능'에서 '불가'라고 못 박은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는 일종의 풍선효과를 불렀다. '의도적 혼획'이 오히려 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수천만 원에서 1억 원까지 팔려 '바다의 로또'라 불리는 밍크고래가 제물이 되고 있다. 박선화 시민환경연구소 연구원이 해양경찰청 자료를 인용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위판된 고래류는 195마리로 고시 개정 전인 지난해 같은 기간 160마리보다 늘었다.

고래류 혼획과 위판은 고래고시 전보다 오히려 더 늘었다. 시민환경연구소 제공

김솔 환경운동연합 활동가는 "혼획 고래의 위판 허용은 의도적 혼획을 유발한다"며 "혼획된 고래를 검사하는 과정에서 의도적 혼획과 우연한 혼획을 구분할 방법이 없다"고 지적했다.

발제자로 나선 김병엽 제주대 교수는 "전 세계에서 한국과 일본만 사용하는 정치망(물고기가 다니는 길목에 어망을 닻으로 고정시켜 잡는 그물)에 의한 국내 밍크고래 혼획률이 41.3%에 달한다"며 "정치망에 혼획된 개체는 어업인이 방류할 의지만 있다면 생존 확률이 90%"라고 추정했다. 그러면서 "혼획으로 사망한 개체는 유통 가능하기 때문에 소극적으로 방류함으로써 사망에 이르고 있다"며 "밍크고래 위판 금지와 손상된 어구 피해 보상을 통해 어민들의 방류 의지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밍크고래의 어획망별 혼획 상황. 김병엽 제주대 교수 제공

박선화 시민환경연구소 연구원도 "혼획된 개체의 위판, 유통 금지와 고래고기 유통의 핵심인 밍크고래 보호가 이뤄지지 않는 한 실질적인 고래류 보호는 어려울 것"이라며 "자체 조사 결과 '국내 해양포유류 보호가 잘되고 있다'고 답한 비율이 19%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보다 강력한 고래보호 정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해양보호생물 지정 나아가 혼획 저감 노력해야

2020년 5월 29일 오전 7시쯤 전남 여수시 거북선대교 아래 하멜등대 인근 해안가에서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상괭이 사체를 지나가던 시민이 발견해 해경에 신고해 수습된 모습이다. 여수=연합뉴스

밍크고래의 해양보호생물 지정이 대안으로 거론됐다. 그러나 전문가 심사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안이라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 실제 정부가 밍크고래의 해양보호생물 지정을 수년간 추진했지만 고래고기 식당 등 관련 상인들의 반대로 좌절됐다.

해양보호생물 지정의 한계도 언급됐다. 김혜린 시셰퍼드코리아 대표는 "2016년 해양보호생물로 지정된 상괭이는 경제적 가치는 없지만 신고하면 해경 조사를 받아야 하는 번거로움 탓에 어민들이 죽은 상괭이를 해상에 버리는 일이 빈번해져 상괭이 혼획 실태 파악을 어렵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보호종 지정 이후 혼획 저감 노력 등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방큰돌고래는 어망에 걸린 동료가 어망을 빠져나올 때까지 주변에서 기다린다. 김병엽 제주대 교수 제공

이에 육근형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실장은 "혼획 생물 위판 금액 전부가 아니라 조업에 손해가 발생한 부분을 복구할 수준의 금액만 어업인에게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며 "혼획 생물 위판이 '바다의 로또'로 여겨지지 않도록 위판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금액의 단계적 축소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18일 경북 영덕군 지경항 앞바다 3㎞ 해상에서 양식장 관리선 A호가 양식장 그물에 걸려 죽은 밍크고래를 발견, 해경에 신고했다. 이 밍크고래는 강구수협을 통해 4,700만 원에 위판됐다. 울진해경 제공

임태호 해수부 수산자원정책과장은 "당장 고래 유통을 금지할 수는 없지만 유통 금지 방안을 단계적으로 밟아 나가야 한다"며 "이 과정에서 시민사회와 소통하며 관련 정책을 도입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4월 발생한 밍크고래 불법 포획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백상권 포항 해양경찰서 계장은 "고래 불법 포획 단속을 강화하고 엄중히 수사해 고래 보호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고은경 애니로그랩장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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