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원라인'처럼 코로나 대출 가로챈 조직..前은행원도 꼈다

하준호 2022. 5. 25.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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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위 세금계산서·매출자료를 통해 시중 은행들로부터 코로나19 자영업자 대출금 수십억원을 받아 가로챈 일당이 검찰의 보완수사 끝에 구속기소됐다. 이들은 영화 ‘원라인’처럼 전직 은행원 출신 금융 브로커의 주도로 전문적으로,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행해주는 자료상까지 낀 조직적인 대출 사기 행각을 벌였다고 한다.

부산지검 형사2부(부장 박광현)는 25일 200억원대의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행해 이를 토대로 매출자료를 조작하는 방식으로 금융기관을 속여 자영업자 지원 사업자 대출금 32억여원을 편취한 대출 사기 조직원 10명을 재판에 넘겼다고 밝혔다. 이 사건을 최초 수사한 경찰은 지난 3월 17일 대출 의뢰인 중 1명인 A(46)씨에 대해 허위 세금계산서 발행 혐의(조세범처벌법 위반)만 적용해 불구속 송치했으나, 검찰이 사실상 재수사에 가까운 보완수사를 벌인 결과 조직적 사기 범죄 실태를 밝혀냈다.

이수권 부산지검장 등 부산지검 간부들이 지난달 21일 기자간담회에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에 대해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특히 이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피해를 본 자영업자를 지원하기 위해 마련된 사업자 대출제도의 허점을 노렸다. 대출 전 실사를 담당하는 은행 등 금융기관의 면접이 형식적으로만 이뤄지고, 불시에 사업장을 방문해 확인하거나 세금계산서를 발급한 상대업체에 대해 제대로 확인하지 않는 현실을 교묘히 파고들었다. 부산과 서울 등에서 유사 인터넷 매체를 운영하는 전문자료상 이모(39)씨가 대출 의뢰인 모집책들이 모아 온 사업자 명의로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급하고, 이를 바탕으로 발급책들이 매출자료 서류를 조작해 금융 브로커가 알선한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을 받는 식이었다.

앞서 경찰은 대출 의뢰인 A씨가 2017년 10월부터 2019년 7월까지 ‘○○유통’이란 사업자 명의로 총 23억원 상당의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급·수취한 혐의에 대해서만 수사를 벌였다.

사건을 송치받은 부산지검 형사2부는 수사기록을 검토하던 중 거래 상대 업체 70여곳에 대해 전수조사를 벌이는 한편, 전자세금계산서를 발급한 IP를 추적하는 등 직접 보완수사에 착수해 A씨의 배후로 전문자료상 이씨를 특정했다. 검찰은 이씨가 유사 인터넷 매체를 운영하며 자신의 신분을 가장하고 있는 점을 고려해 도주 우려가 있다고 판단,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잠복 끝에 체포했다. 이후 이씨 주거지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통해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행하는 목적이 대출 사기인 점을 포착해 검사 4명이 팀을 꾸려 수사 폭을 넓혔다.

부산지검 형사2부(부장 박광현)가 25일 구속기소한 코로나19 자영업자 지원 사업자대출 사기 조직원 조직도. 자료 부산지검

그 과정에서 이들과 금융기관을 연결해준 전직 은행원 금융 브로커 B(55)씨, A씨와 같은 대출 의뢰인을 모집하는 모집책 C(44)씨 등을 특정해 지난 12일 구속하고, 또 다른 모집책 D(50)씨와 E(45)씨까지 지난 19일 구속하는 등 범행 가담 기간이 길고, 역할 비중과 범죄수익 귀속 비중이 큰 주요 피의자 5명을 구속했다. 이후 이들에 대한 보강수사를 통해 매출자료 발급책 3명과 금융 브로커 B씨의 지시를 받아 실무를 챙긴 직원 F(54)씨까지 공범 4명을 불구속기소하는 등 핵심 조직원 총 10명을 재판에 넘겼다. 검찰 관계자는 “A씨와 같은 대출의뢰인 25명에 대해서도 사기 혐의 공범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추가로 수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건은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이 통과한 뒤에 나온 경찰 송치사건에 대한 검찰 직접 보완수사의 대표적인 성과로 인정받아 대검찰청이 형사부 우수 업무사례로 선정했다. 우수 업무사례 선정 이후에도 모집책 2명을 추가로 구속하기도 했다.

단순 조세범처벌법 위반 사건으로 종결될 뻔한 사건의 실체가 조직적 대출 사기 범죄라는 걸 밝혀낸 데 대해 대검은 “진범과 공범, 추가 범죄 발견을 위한 검찰 수사의 필요성을 증명했다”고 평가했다. ‘검수완박’ 법 중 하나인 개정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경찰이 기소의견으로 송치한 사건은 검찰이 지금처럼 보완수사를 할 수 있지만, 무혐의로 보고 불송치한 사건 중 고소인이나 피해자의 이의신청으로 검찰에 송치된 사건의 경우 보완수사가 ‘동일성’ 범위로 제한된다. 이 때문에 개정법은 불송치 사건에 대한 재수사, 보완수사의 길을 원천 차단하고 있단 비판을 받고 있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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