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어로즈식 '키수분' 야구, 이게 현실적 강팀의 맛이다
히어로즈 프랜차이즈는 늘상 ‘언더독’이었다. 더 솔직히 말하면 ‘헝그리’한 이미지가 강한 팀이다. 선수를 자원 삼아 구단을 운영하는 모습에 많은 지탄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이 보여주는 히어로즈식 ‘키수분’ 야구는 강팀을 지향하지만 한계를 가진 KBO리그 구단들이 할 수 있는 현실적인 ‘리빌딩’의 정석이기도 하다.
키움은 25일 경기 전 현재 2위 LG 트윈스를 1경기 차로 쫓고 있다. 시즌 내내 상위권을 지키다 한 차례 미끄러졌던 흐름을 다시 반전시켰다. 시즌 전 예상에서 ‘5위 후보’에도 들지 못하고 하위권으로 지목당했던 푸대접을 보란 듯이 깨고 있다.
이런 상황에 4월 7연승 직후 팀 중심타자이자 핵심인 이정후도 “항상 전문가들은 우리가 하위권이라고 평가하는데 왜 그런지 모르겠다. 지난 9년간 우리만큼 가을야구에 나간 팀이 없다”며 작심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정후는 “밖에서 보면 우리가 약해 보일 수 있지만 지난해 경험으로 성장한 선수들도 있고 모든 선수가 겨울 동안 준비를 많이 했다”며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이정후의 이 말에 키움식 화수분 야구의 정답이 일부 나마 들어 있다.
실제 올해 키움의 투-타 주요 전력들은 1군에서 수년째 경험을 했던 선수들이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지금은 2군으로 내려간 ‘히트상품’ 박찬혁도 ‘키움이니까 등장할 수 있는 선수’다. 22년 신인야수인 박찬혁은 개막전부터 포함해서 1군에서 뛴 38경기 동안 137타석에서 무려 54삼진을 당했다. 특히 지난달에는 6연속 삼진을 기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찬혁은 한동안 개막전부터 1경기도 빠지지 않고 꿋꿋히 선발 라인업에서 이름을 지켰다.
홍원기 키움 히어로즈 감독은 “6연속 삼진 당하고도 풀스윙 하는 것 보라”며 “자신감과 배짱이 남다른 선수”라며 오히려 그런 박찬혁의 자신감을 칭찬하기도 했다.
그걸 떠나 당장 다음 경기 선발 자리나 1군 엔트리 한 자리도 보장 받을 수 없을 공산이 크다. 하지만 박찬혁은 이후에도 계속 경기에 나섰고, 이런 믿음 덕분에 한때 홈런 부문 리그 공동 2위까지 올라서기도 했다.
현재는 타격 밸런스를 조정하기 위해 퓨처스리그로 내려갔지만, 이미 돈으로도 절대 살 수 없는 귀중한 경험을 했다. 이제 겨우 19세 루키 야수가 디테일마저 채우고 돌아온다면 분명 또 하나의 ‘뉴 스타’가 탄생할 것은 자명하다.
그리고 추가로 키움엔 ‘제2의 김혜성’과 ‘제2의 이정후’ 또는 센세이셔널 했던 박찬혁 처럼 주목 받을 수 있을 선수들이 속속 등장 중이다. 21 키움 2차 1라운드 9순위로 지명된 내야수 김휘집은 조금씩 선발 기회를 늘려가며 15경기서 타율 0.345/ 출루율 0.424 / 장타율 0.448을 기록 중이다.
먼저 기회를 받았던 김주형에 이어 최근 유격수로 출전 중이다. 지난해 이미 34경기 89타석을 치러 신인왕 자격 기준은 이미 넘어 올해 수상을 노릴 순 없다. 하지만 이대로 좋은 활약을 이어간다면 메이저리그로 진출한 김하성의 이름마저 소환할 만한 재능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이외에 아직 가진 재능을 모두 만개하지 못했지만 점차 역할을 늘려가며 성장 중인 젊은 선수들이 1군 라인업에 이름을 채우고 있다는 게 키움만의 특징이자 강점이다.
키수분 야구의 성공 사례는 마운드에서 더 두드러진다. 올해 키움은 외국인 선발 투수 요키시와 애플러가 든든히 활약 중인 가운데 안우진이 KBO리그 토종 최고 선수 반열에 올라섰다. 거기다 최원태도 올해 다소 기복을 겪고 있지만 8경기 3승 2패 평균자책 2.54로 든든히 로테이션 한 축을 지키고 있다. 게다가 외부에선 온 정찬헌도 8경기서 3승 3패 평균자책 4.50을 기록 중이다.
이 선수 중에 한 명이 빠지거나 부진하더라도 걱정이 적다. 1군에선 최근 구원승을 올린 김선기 등과 같은 롱릴리프 자원이 활약 중이며 퓨처스리그에서 이들을 대체할 많은 젊은 투수들을 계속 육성 중이다.
불펜 변화도 젊은 투수들이 이끌고 있는 걸 넘어 이미 리그 정상을 찍었다. 17년 전체 지명 좌완투수 김재웅은 21경기에서 리그 1위인 13홀드와 평균자책 1.29를 기록하며 특급 셋업맨으로 거듭났다.
거기다 91년생이지만 키움 불펜에선 경험이 많은 축에 속하는 문성현이 19경기 7홀드 3세이브 평균자책 2.30으로 셋업맨으로 나서면서 유사 시에 마무리로도 뛸 수 있다.
충수염 수술로 이탈한 클로저 김태훈도 비록 시간(2012 넥센 79순위 지명)은 다소 오래 걸렸지만 지난해부터 마무리 투수로 자리 잡은 자원이다. 많은 팀이 불펜 불안으로 고전하는 현재, 키움의 이런 마운드 운영은 더 빛이 난다.
기존 선수들의 자리를 새로운 선수들이 순조롭게 대체하는 야구를 모든 구단이 꿈꾼다. 하지만 그것을 실현할 육성 능력, 선수 선발 능력과 함께 팀 기조를 유지하는 뚝심을 모두 갖춘 구단도 많지 않다. 그런 부족함 때문에 많은 구단이 큰 비용을 들여 외부에서 선수들을 데려오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주축 선수들이 오랜 기간 팀에 남지 않고 떠나는 건 팬들에게나 구단에게 큰 비극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쓰러지지 않고 상위권을 유지하는 것 역시 분명 인정 받을만한 일이며, 강팀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김원익 MK스포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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