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의 오마이갓] 제자에게 90도 숙여 사과하고 비서에게 택시비 꾸던 김수환 추기경

김한수 종교전문기자 2022. 5. 25.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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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추기경에 대한 추억 담은 '우리 곁에 왔던 성자' 발간, 6월 5일엔 기념 미사
1986년 수도자 미사 중 김수환 추기경. 서연준 작가는 1980년대 김수환 추기경의 미공개 사진 50여점을 서울 갤러리1898에서 전시했고, 대구에서도 전시할 예정이다. /서연준 작가 제공

“천 원짜리 몇 장 있나?”

1980년대 어느 주일(일요일) 오후, 누군가 교구장 비서였던 허근 신부의 숙소 방문을 두드렸답니다. 문을 열어보니 당시 교구장 김수환 추기경이 서 계셨다지요. 추기경은 허근 신부에게 천 원짜리가 있냐고 물으시곤 “택시를 타야 하는데 차비가 없어서...”라고 하셨고, 허근 신부에게 천 원짜리를 받아 외출하셨다지요. 천주교 서울대교구 대변인 허영엽 신부는 당시 대신학교 4학년이었는데 친형님인 허근 신부님 방에 놀라가서 이야기를 나누다 이 모습을 목격했답니다. 허영엽 신부는 “뚜벅뚜벅 걸어가던 그분의 뒷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회고하지요.

김수환(1922~2009) 추기경의 탄생 100주년이 6월 6일(음력 5월 8일)입니다. 이를 기념해 최근 가톨릭 언론인들이 중심이 돼 김 추기경에 대한 추억을 모아 ‘우리 곁에 왔던 성자’(서교출판사)를 출간했습니다. 허영엽 신부의 회고도 이 책에 실린 내용입니다.

지난 2009년 김 추기경이 선종(善終)했을 때 명동성당 주변의 추모인파를 기억하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이 책은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김 추기경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더군요.

김수환추기경이 1999년 설날 화재로 마을 전체가 전소돼 천막생활을 하던 주민들을 찾아 함께 식사하는 모습. /가톨릭평화신문 제공

김 추기경이 90도로 허리를 숙여 사과한 일도 있었답니다. 김지영 전 경향신문 편집인의 회고에 등장하는 일화입니다. 김 전 편집인은 동성중학교를 졸업했는데 당시 이사장이 김수환 추기경이었답니다. ‘사건’이 벌어진 것은 졸업식장이었답니다. 한 졸업생이 ‘1년 정근상’을 받고는 장난스럽게 상장을 높이 들고 계속 흔들었다지요. 졸업생과 하객 사이에선 폭소가 터졌지만 장내는 어수선해졌답니다. 곧이어 격려사를 위해 단에 오른 김 추기경은 준비한 메모를 덮고 그 학생들의 경망스러운 행동을 나무랐답니다. “사회에 나가서 무엇이 되겠냐”면서. 김 추기경은 꾸지람만 했지만 졸업식 후 ‘후폭풍’이 있었답니다. 문제의 학생은 교무실에 불려가 선생님에게 뺨을 맞았다지요.

그로부터 15년이 흐른 1987년 12월 동성고 개교 80주년 행사가 열렸는데, 공교롭게도 행사 사회를 뺨 맞은 졸업생이 맡았답니다. 그 행사엔 김 추기경도 참석하셨고요. 사회자는 행사 중 15년 전 일화를 이야기했답니다. 그러자 사회자 바로 앞에 앉았던 김 추기경은 무척 당황해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 졸업생에게 90도로 허리를 굽히며 “Ο동문, 미안합니다”라고 사과했다지요.

아마 김 추기경 기억 속에 그 사건은 없었을지 모릅니다. 김 추기경이 직접 뺨을 때린 것도 아니고요. 그렇지만 김 추기경은 아무 변명 없이 바로 허리를 꺾어 사과했다는 것이죠.

매스커뮤니케이션학 박사이기도 한 김민수 신부는 김 추기경의 ‘아재 유머’를 기억하시네요. 김 신부의 미국 유학 시절 중 일화인데요. 김 추기경이 미국 한인성당을 순회하던 중 김 신부가 유학하던 텍사스 포트워스를 방문했답니다. 미사 후에 교민들과 파티를 하던 중 김 추기경은 이런 유머를 말씀했답니다. “미국에 이주해서 사는 경상도 부부가 있었는데, 남편이 외출했다 집에 돌아왔는데 열쇠가 없어서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러니까 집안에서 부인이 ‘훈교?(Who인교?)’ 하니까, 밖에 있던 남편은 ‘미(Me)랑께’ 하더라는 것입니다.” 고국을 떠나 고된 이민 생활을 하는 교민들을 위로하는 김 추기경만의 유머였던 셈이지요.

2001년 성바오로딸 수녀회가 제작하는 다큐 '김수환 추기경의 삶과 사랑' 촬영 중 기념 촬영한 김수환 추기경. /성바오로딸 수녀회 제공

2001년 김 추기경 다큐멘터리 촬영팀이었던 이재선 성바오로딸수녀회 수녀는 ‘NG(No Good)의 추억’을 소개했습니다. 김 추기경에게 ‘자연스럽게 산책만 하시면 된다’고 말씀드렸는데, 걷다가 자꾸 멈춰서서 제작진을 쳐다봤다는 것. 그때마다 수녀는 ‘NG’를 외치고 다시 처음부터 걷도록 주문했다고 합니다. 저희도 취재 다니면서 느끼지만 아무리 높은 분들도 사진기자 앞에선 주문(?)대로 움직일 수 밖에 없지요.

앞에 소개한 허영엽 신부는 신학교 학보사 기자 시절 김 추기경을 인터뷰한 적이 있답니다. 당시 한국 추기경으론 처음으로 새 교황 선거에 참석하고 귀국한 김 추기경을 인터뷰했는데 아무래도 학생 기자이니 좀 서투른 점이 있었겠지요. 그러자 김 추기경이 “기사를 쓰려면 이런 것도 질문해야 하지 않아?”라며 오히려 가르쳐주셨답니. 그러면서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누구나 실수하며 배우는 거야. 나도 그랬어”라고 말씀해주었답니다.

가톨릭 언론인을 중심으로 김수환 추기경에 얽힌 일화를 정리한 책 '우리 곁에 왔던 성자' 표지. /서교출판사

생각해보면 김 추기경이 세상에 남긴 선물은 ‘좋은 기억’이 아닐까 합니다. 서울 명동성당 앞 ‘갤러리1898′에서 1980년대 김 추기경의 미공개 사진전을 연 서연준씨는 직접 대화를 나누지도 않았지만 김 추기경의 눈빛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사진을 촬영하러 제대 가까이 다가갈 때 김 추기경이 던진 ‘또 왔냐?’는 눈빛이지요. 서씨는 그것만으로도 좋았답니다.

가톨릭평화방송도 16일부터 6월 6일까지 4주간 매주 ‘서로에게 밥이 되겠습니다’라는 제목의 특집 토크 릴레이를 방영하고 있습니다. 김 추기경에 관한 좋은 기억을 공유할 수 있는 기회일 듯합니다. 6월 5일 12시엔 서울 명동대성당에서 정순택 대주교 주례로 기념미사도 열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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