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억명이 부족한 비타민D..유전자 편집 토마토로 보충할까

곽노필 2022. 5. 25.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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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10억명 이상이 부족한 필수 영양소
한·영, 비타민D 함유 유전자편집 토마토 개발
지엠오 논란 속 비타민D 섭취 대안될지 주목
어느 쪽이 유전자편집 토마토일까? 왼쪽이 비타민D를 함유한 유전자편집 토마토, 오른쪽이 일반 토마토이다. 존인스센터 제공

현대 도시인들에게 가장 부족한 영양소 가운데 하나가 비타민D다. 하루의 대부분을 실내에서 생활하다 보니 비타민D를 생성하는 햇빛을 쪼일 시간이 없다. 비타민D는 뼈 건강에 중요한 체내 칼슘 흡수와 면역 기능을 촉진하는 필수 영양소다. 그로 인해 코로나19 팬데믹 국면에서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따르면 국내 비타민D 결핍으로 진료 받은 환자는 2017년부터 2021년 사이에 거의 3배가 늘었다. 연평균 30%씩 늘어난 꼴이다.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한국 성인의 대다수가 비타민D가 부족 또는 결핍 상태다. 전 세계적으로는 10억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한다.

비타민D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식물성 식품과 효모에 들어 있는 D2(에르고칼시페롤), 다른 하나는 동물성 식품에 있는 D3(콜레칼시페롤)다. 햇빛을 쪼일 때 피부에서 합성되는 것이 D3다. 우리 몸에서 필요로 하는 건 주로 비타민D3다. 비타민D3의 가장 좋은 공급원은 생선과 유제품이다. 버섯, 효모 등에 있는 비타민D2는 비타민D3보다 효과가 상당히 낮다. 시중에서 파는 비타민D 보충제는 대개 D3 제품이다.

그러니 동물성 식품을 먹지 않는 채식주의자들에겐 비타민D를 보충할 방법이 마땅찮은 상태다. 채식주의자들의 이런 고민을 덜어줄 수 있는 토마토가 개발됐다. 동물성 식품이나 그에 기반한 영양제 대신 토마토를 통해 비타민D 섭취를 할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영국 식물·미생물 연구기관 존인스센터(John Innes Centre) 과학자들이 유전자편집 기술을 이용해 비타민D3를 함유한 토마토를 개발해 국제학술지 ‘네이처 식물’(Nature Plants)에 발표했다.

유전자편집 토마토 발육 상황을 살펴보고 있는 지에 리 박사. 존인스센터 제공

채식주의자에게 희소식…감자·가지도 가능

가지과 식물인 토마토의 잎에는 원래 적은 양의 비타민 프로비타민D3(비타민D3의 전구체)인 7-DHC(디하이드로콜레스테롤)이 함유돼 있다. 그런데 이 물질은 토마토 열매에는 없다. ‘S17-DR2’라는 효소단백질이 이 물질을 콜레스테롤로 바꿔놓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비타민D3 전구체가 사라지지 않고 열매에 축적되도록 유전자가위인 크리스퍼-카스9을 이용해 이 효소가 기능을 못하도록 유전자를 교정했다.

그 결과 다 자란 유전자 교정 토마토 잎의 비타민D 전구체 함유량이 1g(건조 중량 기준)당 최대 600㎍까지 증가했다. 비타민D의 하루 섭취 권장량은 10㎍이다. 열매로 이동한 이 물질은 토마토 과육뿐 아니라 껍질에도 축적된다.

연구진은 이어 토마토 잎과 얇게 썬 열매에 자외선 빛을 1시간 동안 비춰주고 전구체가 실제 비타민D3로 전환되는지 살펴봤다. 결과는 긍정적이었다. 토마토 1개당 중간 크기 계란 2개 또는 참치 28g과 같은 수준의 비타민D가 들어 있음을 확인했다. 연구진은 토마토 열매를 햇볕에 말리면 비타민D3가 더 늘어날 수 있다고 밝혔다. 유전자편집 토마토에 함유된 비타민D3 양은 하루 권장량(RD)의 20~30%였다. 연구진은 효소 기능을 차단할 경우 토마토 발육이나 수확량에 영향을 줄까 우려했지만 기우였던 것으로 판명났다.

연구진은 가지나 감자, 후추와 같은 가지과의 다른 식물에도 똑같은 생화학 경로가 존재하는 만큼 이들 식물에도 같은 방법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비타민D는 햇빛을 통해 피부가 합성한다고 해서 ‘햇빛 비타민’으로도 불린다. 픽사베이

영국선 6월부터 시험재배…한국은 종자 해외판매 추진

이번 연구는 식물 기반의 햇빛 비타민D 공급 기술을 개발했다는 의미가 있다. 논문 제1저자인 지에 리 박사는 보도자료를 통해 “코로나19는 비타민D가 우리의 면역 기능에 미치는 영향을 부각시켜줬다”며 “비타민D를 공급하는 식물은 채식주의자와 비타민D 결핍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희소식”이라고 말했다.

비타민D를 함유한 유전자편집 토마토의 등장은 채식주의자로선 선택지가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 과학전문지 ‘뉴사이언티스트’에 따르면 채식주의자들에겐 그동안 이끼에서 추출한 값비싼 비타민D 보충제가 유일한 선택지였다.

한국에서도 서울대 최성화 교수(생명과학부)가 설립한 지플러스생명과학이 프로비타민D3, 가바(혈압상승 억제 물질) 등이 함유된 토마토 품종을 개발하고 있다.

지플러스생명과학이 개발한 비타민D3 함유 토마토와 상추(한입상추). 농림축산식품부 제공

최 교수팀 역시 영국 연구진과 같은 방식의 토마토 유전자편집 연구 성과를 담은 논문을 지난 3월 사전출판 논문집 ‘리서치 스퀘어’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논문에서 토마토 열매의 비타민D3 전구체 함유량을 100g당(건조 중량 기준) 1mg까지 높였다고 밝혔다. 지난 3월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이달의 에이(A)벤처스 업체로 선정된 이 회사는 이 토마토의 종자의 북미 등 해외 판매를 추진하고 있다.

비타민D3 전구체에 관여하는 효소 단백질 유전자는 두개가 있는데, 영국팀은 7-DR2, 한국팀은 7-DR1의 기능을 차단했다.

두 연구진은 지금까지 실험실에서만 토마토를 재배했다. 영국 연구진은 6월1일부터 정부의 승인을 받은 야외시험장에서 시험재배를 시작한다. 지플러스생명과학은 "한국에선 현행 법규상 야외재배가 허용되지 않아 회사 스마트팜, 온실 설비에서 시험재배를 했다"고 밝혔다. 국제학술지 `사이언스'는 한국 연구진도 이번 여름 중 야외 시험재배를 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고 전했다.

유전자편집 규제 완화 둘러싼 논란

유전자편집 작물은 외부 유전자가 개입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지엠오(유전자변형작물)와는 다르다. 그보다는 전통적 육종법에 의한 종자 개량이나 자연적 돌연변이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존이네스센터의 캐시 마틴 교수는 “이번 전통 육종법을 이용했다면 10년이 걸릴 일을 유전자편집 기술을 이용해 1.5년만에 해냈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미국, 일본 등 일부 국가에선 유전자편집 식품에 대한 규제를 완화했다. 예컨대 일본 식약처는 2019년 10월 유전자조작 식품 신고제를 도입해, 새로운 유전자를 추가하지 않은 유전자편집 식품에 대해선 안전성 시험을 면제해줬다. 이에 근거해 지난해 혈압 상승을 억제하는 물질이 함유된 유전자편집 토마토의 시판이 승인됐다. 이는 세계 최초로 시판되는 유전자편집 식품이었다. 미국에서도 지난 3월 유전자편집 기술을 이용해 더운 날씨에도 잘 견딜 수 있도록 털이 짧게 나도록 한 소의 식품 판매를 승인했다.

유럽에선 여전히 유전자편집 작물에 대한 규제가 엄격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유럽연합에서도 이를 완화하자는 주장들이 나오고 있다. 유럽연합을 탈퇴한 영국은 25일 유전자편집 식품을 지엠오 규제에서 제외한 법안을 도입한다. 그러나 영국 환경식품농무부는 유전자편집 작물이 인증을 거쳐 시판되기까지는 적어도 5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 중국에선 올해 들어 유전자편집 식품을 허용하는 쪽으로 인증 절차를 간소화했다.

그러나 지엠오를 반대하는 쪽에서는 유전자를 인위적으로 변형시켰다는 점에서 유전자편집 역시 지엠오라며 똑같인 엄격한 규제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에서도 지난해 5월 유전자편집기술을 적용한 작물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는 내용을 담은 ‘유전자 변형생물체의 국가간 이동 등에 관한 법률’(지엠오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한 것을 계기로 논란이 수면 위로 부상했다.

당국의 규제 말고도 유전공학 기술이 들어간 식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거부감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어쩌면 제도적 장벽보다 이런 심리적 장벽이 더 까다로울 수 있다. 유전자편집 토마토가 식탁 위에 오르기까지는 앞으로도 넘어야 할 벽이 겹겹이 있는 셈이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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