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한국에서 많은 사람이 장르에 엄밀한 잣대를 들이민다. 전 세계 거의 유일무이한 〈스타워즈〉 불모지이면서 ‘〈스타워즈〉가 SF이긴 하냐’는 해묵은 논쟁을 일삼는 게 대표적이다. SF로서 가져야 할 조건이나 소양을 따지고 들면서 광선검이 가당키나 하냐, 왜 우주에서 폭발음이 들리냐는, 과학적이지 않다는 등의 이유를 들며 비판한다. 이에 창조자인 조지 루카스 감독은 아주 당연한 말로 현명하게 응한 바 있다. “내 우주에서는 그렇다”고. 이미 서구권에서는 SF나 판타지, 호러 장르의 요소가 자연스럽게 뒤섞인 장르소설을 가리켜 사변소설(SF·Speculative Fiction)로 통칭하고 있기도 하다. 결국 오늘날 장르란 경계이기보다 특성이니, 장르의 구체성보다는 장르 요소들의 결합이 가리키는 지점에 집중해야 옳다. 이 역시 당연한 말이겠지만.
심너울 작가의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 표지 / 안전가옥
심너울 작가의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는 몇가지 판타지 요소가 현실세계에 관여한 상황을 묘사한 5편의 단편소설을 수록한 작품집이다. 우선 분방한 상상력이 흥미를 끈다. “현실의 경계 끝자락에 걸쳐 있는 세계에서 분투하는 인간의 마음을 묘사하는 것을 즐긴다”는 작가의 자기소개처럼 현실과 유리되지 않은 채 인간을 향하는 부분이 각 단편의 핵심을 이룬다. 무엇보다 사변소설의 뜻 그대로 다양한 장르 요소를 한데 꿰어 독특한 단편의 매력을 한껏 드러낸다.
첫 작품 ‘정적’은 일순간 서울 마포구와 서대문구에서 소리가 사라진 이상 현상에서 시작한다. 행정상 경계를 구획 삼아 갑자기 소리가 들리지 않자 여기 속한 학교들은 휴교에 들어가고 방송사는 후시녹음을 활용하는 등 일대 소동이 인다. 작품이 주목하는 건 소요나 사태의 원인이 아니라 소리가 사라지자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 청각장애인의 존재다. 주인공은 딱히 정적을 피할 생각을 하지 않다가 결국 수어를 배우기로 한다. 이상 현상이 아니었으면 결코 알지 못했을 청각장애인들의 세계로 적극 진입해 공감하고 마침내 공존하게 된다. 이윽고 정적이 종식되는 결말에 이르러 작지만 의미 있는 파문으로 기분 좋은 여운까지 남긴다.
다른 작품 ‘경의중앙선에서 마주치다’는 배차 간격도 길고 연착마저 잦은 백마역을 열차를 기다리는 승객들이 영혼 없이 배회하는 이공간으로 묘사한다. 좀비처럼 변한 사람들과 시간이 멈춘 세계를 적극 이용하는 만화가와의 뜻밖의 만남 등 현실을 풍자하는 방식이 무척 재기 넘친다. 표제작인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는 금요일 밤에 잠들어 다시 다음 주 금요일 아침에 깨어나는 공무원을 통해 무미하게 반복되는 직장인의 애환을 의식의 증발이라는 SF 요소를 거쳐 일상의 공포로 그려낸다. ‘신화의 해방자’와 ‘최고의 가축’은 현대문명과 용이 공존하는 세계를 공유하며 오래전 인류를 지배하던 신화적 존재마저 과학으로 해석하고 이용하는 인류를 풍자한다. 인간보다 고등한 용이 인터넷이라는 무한한 정보의 바다에서 허우적대며, 왜 이토록 인류는 귀여운 동물과 포르노에 집착하는지 고민하는 익숙한 장면은 당연히 인간을 저격하기 위한 설정이다.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는 날카로운 비수라기보다 조그마한 가시처럼 짧고 경쾌한 작품으로 채워져 있다. 가시라니 금방 읽고 뽑아내면 그만일 듯하지만 어쩐지 까끌까끌한 느낌 때문에 한 번 더 더듬어 보게 된다. 무엇보다 꽤나 신경 쓰이는 작품 일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