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치 앞이 안 보이는 시대[편집실에서]

2022. 5. 25.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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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한 이승만 정권을 무너뜨린 4·19혁명의 민심을 확인한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군부독재의 싹이 자라날 수 있었을까.’ 박정희 소장이 이끌었다는 5·16쿠데타를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처음 접했을 때 든 의문이었습니다. 불과 1년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자유를 향한 갈망과 민주주의를 등에 업고 집권한 민주당의 장면 정부가 ‘혁명군’ 세력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던 걸까요. 물론 민주공화국을 전복시킨 쿠데타 세력을 악(惡)으로 규정하는 게 역사의 정설입니다. 그렇다고 무능, 파벌싸움, 부정부패로 세월을 보내다 결국 정치군인들이 전면에 등장하는 빌미를 제공한 당시 집권세력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이 또한 역사의 냉정한 평가입니다.

60여년이 흘러 당시 상황을 소환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촛불 혁명’ 5년 만의 정권교체, ‘정치신인’의 깜짝 집권, ‘정치검사’(당시는 정치군인)의 대거 등장 등이 놀라우리만치 흡사하다고들 주장합니다. 갑작스레 눈 앞에 펼쳐진 초현실적인 상황에 우왕좌왕하는 대중의 모습까지 당시를 쏙 빼닮았습니다. 경향신문 5월 17일자 홍기빈 칼럼 ‘2022년 5월 16일’에 따르면 박정희를 바라보는 당시 민중의 반응은 크게 네갈래로 나뉘었습니다. ‘원천 반대’(함석헌), ‘비판적 지지’(장준하), ‘현실 도피’(김수영) 등이 대표적이었습니다. 이와 함께 ‘적극 찬동’ 부류가 있었겠지요.

지금도 갈피를 잡기 어렵긴 매한가지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을 위시해 참모, 내각, 집권당 의원들이 대거 KTX를 타고 광주 망월동 5·18묘지를 찾아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습니다. 취임사에서 ‘국민통합’이나 ‘협치’라는 말을 한 번도 꺼내지 않은 대통령입니다. 국회 시정연설에선 ‘의회민주주의’와 ‘여야 협치’를 강조합니다. 이튿날에는 야당이 그렇게 반대하는 한동훈 후보자의 법무부 장관 임명을 강행합니다.

현실이 안갯속입니다. 박정희 세력은 민정 이양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종신집권’으로 나아갔습니다. 검찰 출신들이 야금야금 정치 전면에 등장하는 작금의 모양새가 육사 출신들이 사회 전체를 장악하다시피 했던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합니다. 고도의 경제성장과 함께 산업화 세력이라는 훈장을 달았지만, 그들이 남긴 ‘유신독재’, ‘인권탄압’, ‘정경유착’, ‘지역갈등’의 그림자는 넓고도 짙습니다.

빛을 키우고 그림자를 줄이는 건 결국 민중의 힘입니다. 사회의 공기를 자처하는 언론의 역할은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결코 가벼울 수 없습니다. ‘씨알의 소리’ 발행인 함석헌 선생은 처음부터 반대 입장을 명확히 했고, 초기엔 불가피성을 역설했던 ‘사상계’ 발행인 장준하 선생도 훗날 박정희 세력의 장기독재에 맞서 목숨을 걸고 싸웠습니다. 1992년 5월 뉴스메이커라는 이름으로 창간한 시사주간지 주간경향이 30주년을 맞았습니다. 독자들과 울고 웃으며 지난 30년을 달려왔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만들어갈 ‘30년 후 미래 세상’을 그려봅니다. 언론의 소명을 생각합니다.

권재현 편집장 jaynew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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