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 전과

윤평호 기자 2022. 5. 25.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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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평호 천안아산취재본부 차장

보름도 채 남지 않은 제8대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전과가 '소환'되고 있다. 몇몇 충남교육감 후보들이 상대 후보 전과를 현수막에 게시해 알리며 본인의 차별성 부각에 활용하고 있다. 김영춘, 조영종 두 충남교육감 후보는 지난 20일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전과를 지닌 후보의 사퇴를 촉구했다.

국어사전상 전과는 '이전에 죄를 범하여 그 죄에 근거해 재판을 받고 확정된 형벌의 이력'이다. 네 명 충남교육감 후보 가운데 김지철, 이병학 후보가 전과를 갖고 있다. 김 후보의 전과기록은 국가공무원법 위반 등 3건. 이 후보는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뇌물) 1건이다.

김지철 후보는 국가공무원법 위반, 집회 및 시위에 관한 위반 전과가 전교조 결성 등 교육민주화운동에서 생겼다고 소명했다. 2007년 8월 정부는 그에게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회복·신장시킨 공로로 민주화운동관련자증서를 전달했다. 이병학 후보는 "2003년 (뇌물)사건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불찰이고 과오"라며 "이후 20여 년 동안 뼈를 깎는 후회와 속죄의 시간을 보내왔다"고 말했다.

맥락과 배경을 도외시한 채 단순히 전과 수만 강조하거나 전과 유·무로만 사람의 됨됨이를 평가하는 것은 간편하기는 하나 또 다른 혐오를 부추길 수 있다. 전과 기록의 지나친 단순화와 도식화는 윤봉길 의사를 테러리스트로, 유관순 열사를 전과자로 낙인찍는 것과 비슷한 오류를 범하게 된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 속 주인공 장발장은 누이의 어린아이들이 굶어 죽을 위기에 처하자 빵 한 덩어리를 훔쳤다. 징역 5년을 선고 받고 탈옥을 감행하다 결국 19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레미제라블(비참한사람들)은 전과자인 장발장이 "어떻게 성인이 되고, 어떻게 예수가 되고, 어떻게 하느님이 되는"지를 보여준다.

통계청의 '2020 한국의 사회지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10명 중 7명은 전과자를 어떤 관계로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응답했다. 전과자가 엄존해도 그들을 용인하지 않고 밀어내기만 하는 사회가 공정할까. 교육과 정치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시스템이라면, 그것의 설계와 운영이 누군가의 배제를 전제로 해서는 곤란하다. 설령 전과를 지닌 이라고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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