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철의 셀럽앤카]㉝ 5월의 추천 유물로 車가 뽑힌 이유는..
어차(御車)는 임금이 타는 자동차를 뜻한다. 첫 탑승자는 조선의 26대 왕이자 대한제국 초대 황제였던 고종(재위 1863~1907년)이다. 고종은 가마 대신 마차를 처음 타고 다닌 임금인데, 1903년 즉위 40주년을 기념하는 칭경식(稱慶式)에 맞춰 자동차도 처음 탔다.
한반도 첫 車는 고종이 탔다
문헌상 탁지대신(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미국 공사의 도움을 받아 인천항을 통해 들여왔다고 적혀 있지만, 제조업체가 어디인지는 알 수 없다. 캐딜락(1909년 제너럴모터스에 합병) 혹은 포드가 만든 거로 추정될 뿐, 사진으로도 남은 것이 없다.
자동차 업계는 1903년을 한국 자동차 원년으로 삼고, 2003년 자동차 도입 100주년을 맞아 ‘자동차의 날’ 제정을 추진했다. 이듬해부터 산업자원부(현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자동차공업협회(현 한국자동차산업협회)가 5월 12일을 ‘자동차의 날’로 정해 기리고 있다.
고종 탑승 어차 사라져
1999년 5월 12일 자동차 누적 수출 1000만 대를 달성한 날을 기준한 것으로 고종 칭경식 날과는 상관없다. 고종은 1903년 처음 탄 차 말고 한 대를 더 탄 것으로 전해졌지만, 전언만 남아 있을 뿐 차체 흔적이나 사진 증거가 없는 상태다.
다행스럽게도 고종의 아들이자 조선의 마지막(27대) 왕인 순종(재위 1907~1910년)과 그의 비(妃) 순정효황후가 탔던 어차 두 대는 남아 있다. 순종의 어차는 미국 제너럴모터스(GM)가 1918년 제작한 캐딜락 모델이고, 순정효황후의 어차는 영국 다임러(재규어에 합병)가 1914년 만들었다.
순종과 비의 어차는 현존
순정효황후의 어차는 처음 순종이 탔으나, 주로 황후가 타고 다녔다. 한때 고종이 탄 것으로 보인다는 추측이 있었으나, 고증 결과 상관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승희 국립고궁박물관 학예연구원은 “두 어차는 현재 남아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자동차”라고 설명했다.
본래 창덕궁 어차고에 오래 보관돼 있었다. 그러나 자연 부식에 의한 노후화와 부품 손실로 인해 많은 부분이 훼손됐다. 현대자동차의 후원으로 5년간 수리와 복원 작업을 거쳐 지금의 모습을 찾게 됐다.
국립고궁박물관에 전시 중
영국의 복원 전문 업체 윌대(Wildae) 등의 도움을 받았다. 2007년 전관 개관에 맞춰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옮겨졌다. 창덕궁~국립고궁박물관 3㎞ 구간에서 대한제국 당시 시가지 행진을 재현했다.
두 어차 모두 7인승의 대형 차량이다. 운전자석과 승객석이 격벽으로 분리돼 있다. 마차 형태의 목조 차체로 초기 자동차의 형태를 보여준다. 지금은 당연하게 생각하는 지붕이 덮여 있다. 당시만 하더라도 엔진에 부담을 주는 것을 막기 위해 무거운 지붕이 없는 무개차(無蓋車)가 일반적이었다. 외부는 전통 기법인 옻으로 칠해져 있다.
대한제국 상징 오얏꽃 무늬 장식
차 문에는 대한제국을 상징하는 이화문(李花紋)으로 불리는 오얏꽃 무늬의 금장이 장식돼 있다. 내부 공간에도 금빛 이화문이 들어간 비단으로 꾸며져 황실의 위엄을 보여준다. 의자를 접거나 펼 수 있어 공간을 편리하게 활용할 수 있다.
대한제국 황실의 생활 문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근대 자료로 평가받아 2006년 국가문화재에 등록됐다. 당시의 자동차 기술을 집약한 고급 대형차로 자동차 발달사에서도 상징적 유물이다.
세계에도 몇 대 안 남아
전 세계적으로도 순종의 캐딜락 차종은 20대, 순정효황후의 다임러는 세 대 정도만 남아 있다. 국립고궁박물관은 어차를 ‘5월의 큐레이터 추천 왕실 유물’로 정했다. 현장에서 로봇 해설사 ‘고북이’의 설명을 함께 들을 수 있다.
강병철 기자 bong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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