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의 과학세상] 이제는 진정한 '과학방역'을 시작해야 한다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2022. 5. 2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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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유성구 한국과학기술원(KAIST) 내 나노종합기술원을 방문, 나노기술을 접목한 코로나검사키트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새 정부가 ‘과학방역을 강조하고 있다. 최대한 객관적 데이터와 전문가의 의견을 근거로 마련한 과학적합리적 기준에 따라 방역정책을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심지어 사회적 거리두기의 원칙도 과학적으로 바꾼다. 업종과 총인원에 따른 획일적인 제한이 아니라 밀집밀접밀폐에 대한 합리적인 기준을 적용한다. 감염자의 격리와 실외 마스크 착용의 기준도 방역 상황과 의료대응 상황에 대한 객관적인 데이터를 근거로 결정한다.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켜줄 방역정책에는 정치 논리를 철저하게 배제한다. 과학보다 정치 논리를 앞세워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에게만 부담을 떠넘겨버린 방역정책을 바로잡겠다는 것이다.

 

과학을 압도해버린 정치 논리

검사·추적·완화를 핵심으로 했던 K-방역이 초기에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은 사실이다. 작년 74차 감염이 확산되기 전까지만 해도 감염률과 치명률이 모두 세계 최저 수준이었다. 특히 미국영국독일프랑스와 같은 소위 보건의료 선진국과 비교하면 우리의 K-방역은 놀라울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410개월 만에 방역 사령관에서 물러난 정은경 전 질병관리청장에 대한 우리의 국민적 신뢰가 K-방역의 성과를 만들어낸 핵심이었다. 특히 202024일 바이러스의 염기서열이 공개되고 2주일 만에 세계 최초로 PCR과 신속항원 진단키트를 개발하고, 전국에 선별진료소생활치료센터를 설치운영했던 것도 메르스 현장에서 고초를 겪었던 정은경 본부장이 밀어붙인 과학방역의 성과였다. 정은경 청장이 2020BBC올해의 여성 100과 타임지의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으로 선정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정부 교체로 질병관리청을 떠나는 정은경 청장이 17일 비공개 이임식을 마치고 직원들과 인사하며 청사를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그러나 현대 기술에 대한 인식이 턱없이 부족했던 정부의 입장은 달랐다. 감염자의 유입을 적극적으로 차단해야 한다는 방역 전문가들의 간절한 요구를 처음부터 외면해버렸다. 중국의 눈치를 보면서 경제를 강조하는 일이 더 중요했다. 결국 중국으로부터의 유입을 방치한 결과 대구를 중심으로 코로나19가 들불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하루 800명 정도의 수준이었지만 상황은 매우 심각했다. 우리가 중국 다음으로 심각한 감염대국이 돼버렸다. 전 세계 190여 개 국에서 우리 국민의 입국을 제한하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졌다.

정부의 인식은 놀라울 정도로 안이했다. 코로나19의 심각성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걱정할 이유가 없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여과 없이 쏟아냈다. 코로나19에 의한 첫 사망자가 발생한 2020220일에는 청와대에서 짜파구리잔치를 벌이기도 했다. 국민을 안심시켜야 한다는 알량한 핑계로 터널의 끝이 보인다고 우기기도 했다.

20203월에 처음 도입된 사회적 거리두기도 과학과는 거리가 먼 제도였다. 국무총리가 운영하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가 교회식당헬스장결혼식장례식 등에 대한 무차별적인 집합금지 조치를 밀어붙였다. 헬스장의 샤워 시설이 수영장의 샤워 시설보다 감염에 더 취약하다는 과학적 근거는 없었다. 면적이나 환기 상태에 대한 고려도 없었다. 감염자 총수만을 근거로 하는 사회적 거리두기의 기준도 정치적 판단에 따라 갈팡질팡했다. 정부가 스스로 정해놓은 단계별 기준도 지키지 않았다. 3단계로 시작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느닷없이 5단계로 늘어나기도 했다. 결국 중대본을 운영하던 국무총리가 자영업자의 운명을 틀어쥐는 형국을 만들어버렸다.

정부가 백신 접종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것도 과학보다 정치를 앞세운 결과였다. 우리 기업이 세계 최초로 치료제를 개발할 수 있다는 일부 정치권의 근거 없는 확신이 백신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을 철저하게 차단시켜버렸다. 백신 도입을 반대하던 엉터리 전문가를 청와대의 방역기획관에 임명했다. 행정적 위상만 높여놓은 질병관리청은 방역정책의 결정 과정에서 철저하게 밀려나버렸다. 국민 앞에 떳떳하게 나서지 못하는 방역기획관에게는 아무 것도 기대할 수 없는 법이다. 정부가 과학적 인과성을 핑계로 백신 부작용을 인정하지 않은 것도 과학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정치적 판단이었다.

정부가 일상회복지원위원회를 등장시켜 일방적인 단계적 일상회복을 밀어붙인 것도 정치방역이었다. 정부가 일상회복을 밀어붙이면서 감염자위중증자사망자가 급격하게 치솟기 시작했다. 지난 3월에는 하루 62만 명의 감염자가 확인됐다. 한 달 만에 감염자의 수가 1000만 명이 넘어섰고, 9034명이 사망했다. 정부의 통계에 잡히지 않았던 9784명의 초과 사망자도 코로나19와 관련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도 일상회복을 외치던 정부는 무차별적인 역주행 방역을 밀어붙였다.

결국 523일 현재 1797만 명이 코로나19에 감염되었다. 인구 당 감염률이 35%로 껑충 뛰어서 세계 14위로 올라가버렸다. 세계 최악의 감염 상황을 경험했던 미국(25.7%)영국(32.8%)독일(31.1%)스페인(26.2%)스웨덴(24.8%)보다 뒤떨어졌다. 감염률이 일본(6.8%)5.1배이고, 상하이 등을 중심으로 지옥과 같은 상황을 겪고 있는 중국(1.6%)22배나 된다. 본격적인 일상회복을 시작하기 전까지 3000명 수준이었던 사망자가 23987명까지 치솟았다. 치명율이 0.13%로 세계 143위라는 사실에 만족할 수밖에 없는 옹색한 상황이다. K-방역의 성공은 아득한 기억으로만 남겨져 버렸다는 뜻이다.

늦었지만 다시 과학방역으로

백경란 질병관리청장이 20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중앙재난안전상황실 서울상황센터에서 열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방역정책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특히 방역정책의 핵심일 수밖에 없는 사회적 거리두기는 과학적 근거만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 합의나 정치적 고려가 반드시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방역에 대한 전문성을 기대할 수 없는 국무총리의 상황 분석에 의존하는 정치적사회적 거리두기는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 누구나 확인할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를 근거로 예측할 수 있는 거리두기와 집합금지 기준이 필요하다.

정부가 고도의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 불확실성이 클 수밖에 없는 감염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국민이 수용할 수 있는 합리적이고 투명한 정책을 제시해야만 한다. 백신 부작용의 경우처럼 정부가 책임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과학을 잘못 사용하지 않겠다는 확실한 의지도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정치권의 부당한 요구를 당당하게 물리칠 수 있는 권한도 확보해야 한다. 언론과 인터넷을 가득 채우고 있는 엉터리 전문가들에 의한 혼란도 적극적으로 정리를 해줘야 한다.

무엇보다도 방역정책의 관리체계를 과감하게 정리해야 한다. 당연히 방역 전문기관인 질병관리청이 방역정책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역할과 기능이 불확실했던 일상회복지원위원회는 해체하는 것이 마땅하다. ‘중대본(국무총리)중수본(보건복지부 장관)방대본(질병관리청장)’으로 이어지는 방역 행정체계도 정비를 해야 한다. 중대본과 중수본은 질병관리청의 결정을 지원하는 역할에 만족해야 한다. 대통령실도 질병관리청의 결정을 적극적으로 존중해줘야 한다. 그래야만 진정한 의미의 과학방역이 가능해진다.

※필자소개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대한화학회 탄소문화원 원장을 맡고 있다. 2012년 대한화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과학기술,교육,에너지,환경, 보건위생 등 사회문제에 관한 칼럼과 논문 2500편을 발표했다.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번역했고 주요 저서로 《이덕환의 과학세상》이 있다.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duckhwan@sogang.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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