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서서 사는 박재범 '원소주'..이 남자의 '힙한 비법' 통했다 [비크닉]

정세희 2022. 5. 25.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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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브랜드 소개팅 전문 정세희 기자입니다. 요즘 구하고 싶어도 못 구한다는 소주가 있습니다. 뮤지션 박재범이 만든 ‘원소주’입니다. 꺅! 박재범을 만나고 왔냐고요? 아뇨. (아쉽지만 바쁘신 몸이라…) 원소주 탄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숨은 기획자, 김희준 원스피리츠 CCO(최고 커뮤니케이션 책임자)를 만나봤습니다. 그런데 잠깐! 소개팅 시작하기 전에 원소주 리뷰를 들려드릴 분을 먼저 소개할게요.


우리 소주가 달라졌어요


비크닉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쇼핑에 진심인 1n년차 마케터, 한재동입니다. 미리 고백하건대 술맛에 대한 리뷰는 없습니다. 아직도 원소주 오픈런 1분 컷의 벽을 넘지 못해 세계 최초로 제품을 마셔보지 못하고 글을 썼기 때문이에요. (여러분, 주류 중고 거래는 불법입니다.)
서울 한 대형마트에서 고객이 소주를 고르고 있다. [연힙뉴스]

‘소주’와 ‘힙하다’는 어울리는 단어가 아니었습니다. 그간 소주의 이미지는 ‘독하다’,‘녹색병’, ‘삼겹살과 어울리는 술’ 정도였지요. 제가 술을 처음 접했던 세기말 즈음 소주는 독주라는 인식에 점점 젊은 세대에게 외면받기 시작했습니다. 주류회사들이 선택한 돌파구는 허름한 삼겹살집 한구석에 붙어있는 포스터에 여자 연예인을 모델로 쓴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올 줄은 솔직히 몰랐습니다.

변화가 체감된 건 2019년 진로이즈백이 출시되면서예요. 우선 병이 달라졌습니다. MZ세대의 뉴트로 트렌드를 자극하는 디자인이었죠.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대형소주잔 같은 굿즈는 품절 대란을 일으켰고, 패션잡화 등 다양한 브랜드와 콜라보레이션이 이어졌습니다. 소주병의 재활용을 위한 업계의 녹색병 사용 협약을 깼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묻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정말 소주를 사기 위해 줄을 서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박재범이 만든 전통 소주 ‘원소주’를 사기 위해 백화점 오픈 전부터 사람들이 줄을 섰습니다. 팝업스토어가 끝나고 온라인으로 판매를 시작한 지 한참 지난 지금도 1분 만에 품절이 되는 ‘1분 컷’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인스타그램의 원소주 구매인증을 보면 그간 소주와는 친하지 않을 것 같은 MZ세대 인싸들이 대다수입니다. 원소주는 어떻게 MZ세대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브랜드가 되었을까요?


원소주 오픈런, 증류식 소주의 시대 열렸나


지난 2월 더 현대 서울에서 원소주 팝업스토어 오픈 행사를 연 힙합 아티스트 겸 원스피리츠 대표 박재범. 현대백화점 제공
소주는 희석식 소주와 증류식 소주가 있어요. ‘서민물가 비상, 소주 n천원 시대’ 이런 식의 기사에 등장하는 녹색병이 바로 희석식 소주입니다. 우리의 소울푸드 삼겹살의 단짝이며, 편의점에서도 2000원 이하(360ml기준)에 구할 수 있는 대한민국 대표 주류입니다. 원소주는 전통 방식으로 제조한 증류식 소주예요. 증류식 소주에서 가장 대중적인 화요나 일품진로의 경우 350ml 용량에 편의점에서 1만원 중반대, 원소주는 같은 용량에 1만4900원인 프리미엄 주류입니다.

떠오르는 소비주체인 MZ세대의 술 소비 트렌드는 기성세대와 달라요. 기성세대가 ‘부어라 마셔라 or 마시고 죽자’였다면, MZ세대는 술의 맛과 스토리를 즐기는 쪽이랄까요. 원소주라는 브랜드를 경험해 보았다는 것을 공유하는 놀이가 된 것입니다. 일단 원소주로 부어라 마셔라 하려면 지갑이 탈탈 털립니다. 술값 자체가 최대 7배 비싸요. (물론 돈으로 플렉스 할 수도 있겠지만….)

원소주가 증류식 소주의 시대를 열었다는 반응도 있어요. 원소주 이전에도 힙스터들이 뉴욕에서 구해서 먹었다고 입소문이 돌았던 ‘토끼 소주’나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과 배우 고소영 등이 극찬했다는 ‘KHEE 소주’ 등이 스토리와 희소성 등으로 SNS 등에서 이슈가 되면서 증류주 바람을 예고했지요.


온라인에서 살 수 있는 술은 뭐가 달라?


배달 앱에서 음식을 주문하거나 온라인 마트에서 장 볼 때 맥주나 소주 배달이 안 돼 불편했던 경험 있으시죠? 일반적으로 술은 온라인 판매가 금지돼 있어요. 미성년자는 아닌지, 신분 확인을 할 수가 없으니까요. 그런데 2017년부터 정부는 전통주를 보호·육성하기 위해 요건을 충족한 제품에 한해 온라인 판매를 허용했습니다. 주류 부문 무형문화재 보유자 혹은 대한민국 식품명인이 만들거나, 농업 경영체 및 생산자 단체가 직접 생산, 또는 주류제조장 소재지 관할 및 인접 시·군·구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주원료로 제조하는 주류가 이에 해당합니다.

원소주는 양조장이 강원도 원주에 있고 100% 원주에서 생산된 쌀만 사용하기 때문에 전통주로 분류돼 온라인 판매 허들을 넘었어요. 앞서 말씀드린 토끼 소주는 원래는 미국 술이었어요. 한국 전통 소주의 매력에 빠진 미국인 브랜 힐이 술 빚는 법을 배워 2016년 뉴욕에서 생산한 증류식 소주입니다. 누룩을 수입하지 못해 뉴욕에서 직접 배양에 성공하면서 이슈가 됐죠. 2020년 충청북도 충주시에 양조장을 세웠고, 지역 전통술로 인정받아 온라인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공병까지 당근하면 술이야, 굿즈야?


‘Soju(소주)’는 박재범의 첫 번째 미국 진출 싱글 제목입니다. 소주를 진탕 마셔보자는 가사로 도배가 되어 있을 정도로 소주에 대한 사랑이 가득하죠. 2019년부터 박재범은 소주 회사를 차릴 것이라고 공공연히 이야기하고 다녔습니다.

소주병의 디자인 패키지에도 하나하나 브랜드 스토리가 들어가 있습니다. 일단 ‘원’이라는 네이밍에는 하나(One)와 승리(Won)와 소망(Want)이라는 의미를 담았다고 합니다. 태극기 건곤감리에서 패키지 디자인 모티브를 따왔다고 하고요. 하나하나 인스타에 자랑하기 좋게 되어있습니다.

원소주가 당근마켓에서 거래되고 있는 모습


박재범 팬덤은 화력이 좋기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예전에 박재범이 방송에 신고 나왔던 곰돌이 양말을 사기 위해 공장에 연락해 단종된 모델을 재생산하게 만든 일화는 팬덤 굿즈업계에서도 전설처럼 회자됩니다. 당장 당근마켓에 들어가서 원소주를 검색해보세요. 심심치 않게 공병을 거래하는 것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어떤가요. 원소주 인기는 단순한 스타 팬덤일까요? 원소주 기획자 김희준 CCO와 브랜드 소개팅을 하고 돌아온 정세희 기자에게 다시 바통을 넘깁니다.


프로필


[원스피리츠 인스타그램]
생년월일: 2022년 2월 25일
워너비 : 술 좋아하고 광고도 잘 만드는 라이언 레이놀즈
가치관 : WANT하는 걸 WON하고 ONLY ONE이 되자
꿈: 대한민국 소주의 세계화
이상형: 오늘 하루 응원하고 내일의 파이팅을 외치고 싶은 모든 이들

첫인상


김희준 원소주 브랜드 매니저 [김희준 제공]
원소주 소개팅은 오후 1시에 진행됐어요. 점심을 일찍 먹고 오나 했는데 4년째 점심을 건너뛰었다고 해요. 아침도 아닌 점심을 굶은 이유는 일할 때 식곤증을 느끼기 싫어서! 대신 저녁 한 끼만은 맛있는 음식과 술을 곁들인답니다. 낮에 늘어지지 않으니 집중하기 좋고, 건강에도 좋다(?)고 주장했고요. 술과 여행을 좋아한다는 그는 원소주에서 덕업일치 삶을 실천하고 있었죠.

초록색 소주는 가라, 힙한 소주가 왔다


김희준 CCO가 소주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건 스코틀랜드를 여행하면서였대요. 스코틀랜드가 위스키로 유명하잖아요. 동네 술이 전 세계인이 즐기는 술이 됐으니 자부심이 상당했겠죠. 그때 생각했대요. ‘왜 한국의 전통주는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지 못할까.’

“해외여행 가서 ‘한국에도 좋은 술이 많다’고 아무리 얘기해도 사람들이 모르더라고요. 초록색 병 술을 아는 사람도 있지만 브랜드는 몰랐어요. 희석식 소주 말고도 우리나라에 잘 만든 술이 많은데 안타까웠어요.”

이런 고민을 지인에게 털어놨는데 마침 박재범이 소주 제작을 준비하고 있다며 연결해줬대요. 박재범은 2019년부터 꾸준히 소주 브랜드화를 준비하고 있었어요. 그의 술에 대한 지식, 다양한 마케팅 경험과 박재범의 트렌디한 감각이 만나는 순간이었죠.


소주에서 쌀향이 난다고?


사진 연합뉴스
“일제강점기 이후 희석식 소주가 들어오면서 그게 마치 우리나라 전통주처럼 돼버렸는데, 증류식 소주가 원조예요. 뚜껑을 열어서 한번 향을 맡아보세요. 그러면 ‘막걸리 향이 나요, 사케 같아요’ 이런 얘기들을 하시거든요. 쌀의 향을 느끼는 거예요.”

증류식 소주는 쌀, 보리, 고구마 등 재료를 발효시킨 다음 이를 증류시켜 만드는데요. 재료 본연의 맛을 잘 느낄 수 있어요. 보통 20도 이상으로 도수가 높아요.

반면 초록병 소주는 주정에 감미료를 넣고 물에 희석해 만들어요. 주정은 전분 성분이 있는 술의 재료인데요. 희석식 소주에는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자라는 카사바 식물 뿌리에서 추출한 식용 녹말 타피오카가 많이 쓰여요.

“쌀이 귀했던 시절이 있었잖아요. 1960~70년대만 해도 쌀로 밥을 해 먹지도 못했는데 이걸로 술을 빚는다는 거 자체가 어려웠죠. 그래서 주정을 활용한 희석식 소주가 많이 나왔어요. 이후 폭탄주 문화가 형성되면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희석식 소주가 더욱 빠르게 대중화됐죠.”

생각 날 때 꺼내 한 두 잔씩 마시고 잠가 두는 위스키처럼, 기분 좋게 적당히 마시는 사람들에게 선물하고 싶은 술이 원소주가 되었으면 좋겠대요.

“부어라 마셔라 문화에선 빨리 취할 수 있는 소주가 가성비가 좋았죠. 그런데 코로나 이후 술 문화도 빠르게 변했어요. 좋아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과 딱 좋을 때까지 즐기고, 술의 재료나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술을 즐기는 문화가 형성되고 있어요.”


22도, 24도 도수에 담긴 전략


원소주 도수는 22도로 일반 소주보다 높아요. 22도가 독하게 느껴지는 건 요즘의 희석식 소주에 길든 탓이라고요. 원소주로 도수에 대한 고정관념도 깨고 싶었대요.

“증류식 술은 도수가 높을수록 맛있어요. 하지만 16~17도짜리 술을 즐기던 분에게 너무 높을 수 있으니까, 일단 한 발짝 손을 내밀었어요. ‘증류주의 매력에 한 번 빠져 보세요’하고요. 다행히 고객들의 반응이 좋아요. 1차는 통과한 거죠.”

7월에 출시될 신제품은 24도로 2도 더 올렸어요. “한식은 맛이 강하기 때문에 22도가 음식을 뚫고 나오기에는 부족하거든요. ‘자 이제 2도 차이로 맛이 또 얼마나 달라지는지 경험해보세요’ 하고 한 번 더 손 내민 거예요.”


전통을 내세우지 않는 라벨링


원소주 팝업 현장 포스터 [원스피리츠 제공]
원소주를 제작할 때 가장 오래 걸렸던 것은 라벨링이었어요. 끝까지 고심한 부분은 ‘소주 같지만 소주 같지 않고 전통주면서도 전통을 말하지 않는 것’.

“우리나라 사람들은 양주 같다고 평가하지만, 외국인들이 봤을 때 라벨이 굉장히 전통적이라고 해요. 자세히 보면 태극기의 건곤감리도 들어가 있고 한국의 원 화폐 단위도 들어가 있어요. 소재 자체도 천으로 만들었어요. 한지를 떠올리게 해 더욱 전통적인 느낌이 나죠.”

홍보할 때 전통주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이에요.

“MZ세대들도 K팝, K뷰티 등 한류 문화로 우리나라에 대한 자부심이 있어요. 하지만 고유의 것을 대놓고 어필하면 젊은층과 멀어져요. 트렌드에 끌려서 먹어보니 전통주였네를 노린 거죠. 그래야만 ‘우리나라 전통주가 맛있네, 다른 전통주는 또 뭐가 있을까?’하며 자발적으로 움직일 거거든요.”


‘원’불교와 목탁 에디션? 유쾌한 원소주


“브랜드는 사람들이 마음껏 가지고 놀 수 있어야 성공한다고 생각해요. 이미 사람들이 원소주의 ‘원’을 갖고 놀고 있어요. 댓글을 달아도 응‘원’해요, 원소주 ‘원’해요 라고요. 저희도 재밌는 기획을 많이 구상중이에요. 이런 얘기도 해요. ‘원’불교랑 콜라보 해서 목탁 에디션을 만들까? 멋있으면서 위트 있는 사람들이 저희 브랜드를 즐기길 바라는 마음이에요.”

스타마케팅의 승리로는 끝내지 않을 거라는 자신감도 보였어요. “박재범 대표님의 원 소주라는 건 영원하겠죠. 그런데 그 틀 안에 갇힐 생각은 없어요.”

원소주는 애초에 처음부터 수출을 목표로 만든 술이었대요. 이미 ‘원 밀리언(부자되는 술)’ 같은 원소주 칵테일 레시피도 만들었다는데요. 칵테일을 만들려면 베이스가 깔끔해야 하는데, 이미 글로벌화까지 생각해 준비한 거죠.

“금탑산업훈장을 받는 게 목표예요. 올해 안에 해외에 진출할 예정이에요. 한국의 술 하면 원소주를 떠올리게 만들 거예요. 나중에 ‘원소주가 외화벌이하느라 고생했구나’ 칭찬하며 상을 줬으면 좋겠어요.”


원소주 맛있게 먹는 법


차가운 냉장고 말고 상온에 둬야 쌀 본연의 풍미를 느낄 수 있다고 하고요. 추천 안주는 견과류와 해산물. 소주와 견과류라, 어색하다고요? 아직 우리가 희석식 소주에 익숙해서 그래요.

원소주의 인기에 가수 임창정도 증류식 소주를 판매한다고 하더라고요. 정말 증류식 소주 시장이 커지는 걸까요? 연예인의 사업 아이템으로 변질되는 건 아닐지 우려된다고요? 똑똑한 소비자들은 소주에 진심인 브랜드를 기가 막히게 찾을 거라고 봐요. 참, 원소주는 7월부터 GS 편의점에서도 만나볼 수 있대요.

이번 소개팅은 여기까지예요. 원소주 더 만나볼까요, 말까요? 혹시 만나고픈 브랜드가 있으면 알려주세요.

정세희 기자 jeong.saehee@joongang.co.kr 한재동 중앙일보 BP팀 마케터 han.jaed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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