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숲길] 8년의 약속

국제신문 2022. 5. 25.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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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높은음으로 올라가던 나의 질문이 긴 물음표를 달고 사람들 사이를 빛처럼 지나갔다.

이렇게 안부를 묻는 일은 내가 꽃 수업을 시작하기 위한 하나의 의식이다. 자신에 대해 돌아보고 말하는 과정을 통해 삶의 중요한 사실이 드러나게 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나는 어떤 기대 같은 것을 품고 사람들의 꽃을 챙겼다. 같은 종류의 꽃이라면 다른 색상을 선택하여 새로움을 느끼게 했다. 우리들의 하루가 매일 다른 것처럼 꽃의 아름다움에도 수천만 가지의 놀라움이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러한 날들이 쌓여 언젠가 사람들의 삶에서도 저마다의 꽃이 피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이러한 나의 의도를 눈치챈 사람은 많지 않다. 사람들은 각자의 시간을 돌아보기 바쁘고 꽃이라는 존재에 대한 가치와 의미도 저마다 달랐다. 그렇게 8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의 정원에 있는 호두나무에 열매가 맺혔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난해 태풍으로 뿌리가 드러날 만큼 기울어져 살 수 있을지 걱정하던 나무였다. 살아있어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러나 직접 나무를 심었던 엄마의 마음은 달랐을 것이다. 잎이 돋아나던 호두나무를 얼마나 간절한 마음으로 바라보았을까. 나무는 그 정성에 보답하듯 심은 지 8년이 지나야 열매를 맺는다던 약속을 지켰다. 동그란 호두열매를 보란 듯 달았다.

8년이라…. 우연처럼 겹치는 숫자 8을 옆으로 돌려보니 무한대를 나타내던 수학기호와 닮아있었다. 문득 수비학을 공부하던 지인의 말이 생각났다. 그녀는 내게 숫자가 가지고 있는 상징을 언급하며 숫자 8은 무한과 힘의 균형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나는 무한대의 사랑과 기쁨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8년이라는 시간 동안 호두나무도 나도 용케 잘 살아왔구나 싶었다. 이제 누군가에게서 꽃 수업을 통해 인생의 열매를 맺게 되었다는 말을 들으면 더 바랄 것이 없었다. 나의 오래된 과거와 타인의 먼 미래가 연결되던 순간이었다.

사람들에게 꽃은 무엇일까?

인간의 생명과 치유를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꽃을 가까이하는 것을 감상적인 사치 혹은 할 일 없는 여인들의 놀이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 한창 자신의 젊음과 욕망에 충실한 이들에게는 하나의 상품일 뿐이고 세상 어디서나 볼 수 있어서 무시하기도 한다.

이것은 자연과 관계 맺는 법을 잊은 것이다. 우리는 모두 그것을 알고 있으며 기억해 낼 수 있다. 꽃이 그 자체로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이 그 증거이며 꽃은 현재의 삶을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게 만들어 주는 힘을 가지고 있다.

틱낫한 스님의 ‘평화로움’이라는 책에 이런 대목이 있다. “꽃이 시들어 떨어져도 나는 슬퍼하지 않는다. 영원한 것은 없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연의 본질을 자각할 때 우리는 슬픔에서 벗어나 기쁘게 살아갈 수 있다.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그대는 현재의 일을 보다 소중히 여기게 될 것이다.”

이렇게 꽃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하느냐에 따라 삶의 목적과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자연의 존재를 통해 저절로 깨닫게 되는 자연스런 과정이다. 그것은 삶 전체가 바뀌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행복한 삶으로 안내하는 길에는 몰입 관계 균형의 조건이 따라다닌다. 만약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다면 꽃을 가까이 두어보시라.


한 송이의 꽃을 당신이 머무는 자리에 둔다면 그 순간 당신의 라이프스타일은 바뀌게 될 것이며 더 자주 바라볼수록 행복이 지속될 것이다. 꽃이 피고 지는 것을 보는 것은 현재를 사는 법을 배우는 방법이 된다. 나에게 있어 지난 8년은 꽃의 에너지를 통해 삶의 연결고리를 풍요롭게 만들어 꽃과 사람들 사이를 이어주는 매개자가 되자고 스스로 약속한 시간이었다. 몇 사람에게라도 전해졌다면 그것으로 되었다. 고 마침표를 찍으며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에게 말을 건네 본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차영은 플로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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