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 소리] 무력함을 마주하는 법

국제신문 2022. 5. 25.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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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동네청년공간 ‘청년월동기지 니트플레이스’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문을 연 날부터 일주일간, 매일 저녁밥을 지었다. 여느 개소식과는 달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국밥도 끓이고, 덮밥도 만들고, 라면도 끓이고, 김밥도 말았다.

공간도 궁금하고, 밥도 준다고 해서 온 한 청년은, 요리는 할 줄 모르고, 무엇을 어떻게 도와야 할지 몰라 서성이다 공간지기들 손에 이끌려, 첫날에는 수저를 놓고, 다음 날에는 밥을 펐으며, 3일째 되던 날엔 반찬으로 곁들일 소시지를 구웠다.

오늘이 첫 방문인 또 다른 청년은, 그 모습을 보고 “자연스럽게 이야기 나누고, 준비하고 계셔서 이전부터 알고 계신 사이인 줄 알았어요”라고 말한다. 청년월동기지는 서로가 머물 자리를 내어주고 받으며 ‘개개인의 마음 한구석에 존재하는 따뜻함’을 지켜내고자 애쓰는 동네청년공간이다.

함께 공유주방(토실토실)에 앉아 밥을 먹으며, “다들 어떻게 오게 되셨어요?”, “공간이 너무 편안해요, 자주 올게요.” 하는 이야기를 나눈다. 갓 지은 쌀밥의 온기만큼, 그들 사이에 활력이 피어나고 있다.

도란도란 이어지는 대화들을 보며, 또 고단했던 이의 얼굴이 편안해지는 것을 보며 ‘다행이다’ 안도하다가도, 마음 한켠에는 고민들이 마구 휘몰아친다. ‘꺼내 볼까…’ 한 명 한 명 살아나는 눈빛들을 보곤 ‘믿어보자’며 내뱉는다.

“청년월동기지가 지난주 문을 열었지만, 12월에 문 닫을 수도 있어요.”, “공간은 그 공간을 아끼는 사람들이 있어야 지켜질 수 있어요. 공간지기들이 오늘과 같이 여러분들을 위한 자리를 만들고, 맞이하며 애쓸 테지만, 가장 중요한건 여러분들과 같이 공간을 이용하시는 분들의 관심과 애정인 것 같아요. 저 지금 이 말을 하면서, 여러분들에게 짐을 하나씩 지우고 있는 거에요~오늘 드신 쌀알 개수만큼! 하하!!…많이 아껴주세요.”

웃으면서 이야기했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다. 공간의 문을 연 지 3일째 되던 날, 동료 공간지기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사람들에게 말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저는 고민이 되더라고요. 서원님이 ‘12월에 문 닫을 수 있어요’라고 말하는 것을 들을 때, 작년에 부산청년센터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들과의 끝을 경험해서 그런지, 제가 ‘무력함’을 느끼고 있더라고요.”

이 말을 듣는 순간 아차 싶었다. 나도 (얼마 전 임기가 끝났지만) ‘청년정책조정위원회 위원장’으로 때로는 한 개인으로 부산청년센터가 청년들에게 잘 가닿기를 바라면서, 작년 한 해 센터를 중심으로 사람들을 모으고 만났던 터라, 2021년 12월 모든 매니저가 센터를 그만두고, 위탁기관인 부산인재평생교육원이 올 초 센터 본격적인 운영을 앞두고 갑작스런 인사이동을 하는 등 앞으로 나아가진 않고, 뒤로 퇴보하는 모습을 보며 굉장한 무력감을 느꼈다.

그럼에도 “끝이 있다는 걸 알지만, 잘 맞이할 수는 없을까?”라는 질문에는 “매일 정성껏, 공간을 이용하는 청년을 맞이하고, 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을 우리답게 펼치는 것” 밖에는 없다고 답한다.

공간에 있다 보면 매일 정답 없는 고민의 반복이다. 행정이 요구하는 정량적인 성과와 청년들의 마음에 가닿는 정성적인 성과 사이에서의 내적 갈등이다. 언제나 무게 추는 노트북을 덮고 공간에 찾아온 청년들과의 만남에 기울여져 있다. 어떤 때는 체력적 한계로 전자를 택할 때도 있다. 그럴 땐 늘 아쉽다. 하지만 공간에서 일어난 청년들의 이야기를 잘 해석하고 기록하고 행정에 가 닿게 만드는 것 또한 나의 일이라, 아쉬운 만큼 기록에 정성을 쏟는다.


지난 3월 27일, 청년정책 다시쓰기 토론회에서 만난 이야기를 곱씹어본다. ‘지난해에는 센터 측과 파트너 느낌이 들었다면 올해는 단순히 사무업무를 하는 느낌이다’, ‘공간을 관리하는 차원으로 운영되는 것이 문제라고 판단된다’.

동네청년공간 청년월동기지 니트플레이스의 5개월 남짓한 시간, 공간을 매개로 만들고 지켜낼 그 ‘무엇’에 골몰해야겠다.

정서원 협동조합고치 이사·청년월동기지 니트플레이스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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