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詩를 쓸 자격이 없는 당신

김도훈 문화칼럼니스트 2022. 5. 2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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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詩)를 못 쓴다. 노력은 했다. 대학 1학년 때는 ‘시의 이해’라는 이름의 강의도 들었다. 어머니에 대한 시를 써오라길래 짧은 시를 썼다. 나팔바지 입던 우리 엄마가 이제는 앞치마를 입고 어쩌고저쩌고 하는 소리밖에 나오질 않았다. 끔찍했다. 다시는 시를 쓰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사람들 앞에서 입으로 내뱉을 수 없는 소리는 절대 글로 써서는 안 된다고 다짐했다.

대통령실 총무비서관이 20년 전 쓴 시들을 보면서 그때의 다짐이 떠올랐다. 그의 ‘전동차에서’라는 제목의 시는 ‘짓궂은 사내아이들의 자유’가 ‘계집아이의 젖가슴을 밀쳐보고 엉덩이도 만져보는’ 행위라고 노래한다. 많은 사람이 성(性)추행에 대한 부적절한 표현이라 지적하고 나섰다. 나는 그렇게 구린 시를 종이책으로 내는 것은 교토기후협약 위반이라고 먼저 지적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라 생각했다.

지난 몇십 년간 그런 시는 익숙하게 봐왔다. 어느 지하철 스크린 도어에 붙어있던 ‘목련꽃 브라자’라는 시도 비슷한 이유로 한동안 웃음거리가 됐다. ‘목련꽃 목련꽃/ 예쁘단대도/ 시방 우리 선혜 앞가슴에 벙그는 목련 송이만 할까’. 어떤 유머 감각을 지닌 지하철역 아재 관리자가 이 시민 투고 시를 선정했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이런 시들을 묶어서 ‘토속 아재 시’라고 부른다. 어머니의 젖줄 같은 강과 누이의 젖가슴 같은 능선으로 아재의 추억과 민족의 한을 노래하는 시들이다.

세상에는 아마추어가 많다. 아재가 많다. 시인이 많다. 개별적으로 그건 전혀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아마추어 아재 시인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이걸 방지하려면? 방법이 하나 있다. 마흔 넘은 아재가 자가 출판으로 시집 내는 행위를 법적으로 금지하는 것이다. 법을 만들 수 없다면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자가 검진을 해보는 것도 좋다. 뒷산을 보는데 여성의 가슴이 떠오른다면? 쓰지 마라. 당신은 시를 쓸 자격이 없다. 강을 보고 있는데 분만의 생명력이 떠오른다면? 쓰지 마라. 당신은 정말 자격이 없다. 당신의 시는 아직도 고집스레 만년필로 시를 쓰고 있는 수첩 속에 머무를 때 가장 아름답다.

김도훈 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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