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과 고장난 알고리즘

한광덕 2022. 5. 24.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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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프리즘]

지난 19일 오전 서울 서초구 가상자산거래소 빗썸 고객센터에 최근 폭락한 루나 코인 시세가 표시되어 있다. 연합뉴스

[한겨레 프리즘] 한광덕 | 경제팀장

가상자산(암호화폐) 생태계에 다시 겨울이 찾아왔다. 미국 달러에 가치를 연동해 안정적이라던 국산 스테이블 코인이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빠른 속도로 주저앉았다. 금융공학으로 제조했다는 상품이 대개 그렇듯, 테라(UST)와 루나의 난해한 조합을 해독하다 보면 가려진 ‘화약’의 냄새가 풍긴다.

비트코인 등 전통적인 가상자산은 수요에 따라 가격의 출렁거림이 심해 화폐로 쓰기에는 부적합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스테이블 코인이 똬리를 틀었다. 스테이블 코인은 공급량을 조절해 가격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도록 설계됐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었다.

스테이블 코인은 크게 법정화폐 담보형, 가상자산 담보형, 무담보형 3가지로 나뉜다. 먼저, 법정화폐 담보형은 달러나 엔 등을 담보로 코인을 발행한다. 세계 최대 스테이블 코인 테더(USDT)는 가치를 달러와 1 대 1로 고정했다. 거래소에서 코인 가격이 1달러를 벗어나더라도 보유자는 발행회사에서 1코인을 1달러로 바꿀 수 있다. 가격이 1달러 아래로 떨어지면 코인 일부를 소각해 공급량을 줄여 가격 회복을 이끈다. 반대로 가격이 1달러보다 높아졌을 땐 코인을 추가 발행해 가격을 끌어내린다.

차익거래 유입도 코인 가격 안정에 기여한다. 시장에서 1테더가 1.2달러에 거래되면 투자자는 1달러를 발행사에 맡기고 테더 1개를 받은 뒤 거래소에서 1.2달러에 팔면 20%의 차익을 얻을 수 있다. 더 많은 사람이 차익거래에 가세하면 시장에 테더 매물이 늘어 가격이 1달러로 내려온다. 반대로 1테더가 0.8달러에 거래되면 시장에서 0.8달러로 테더를 사서 발행사에 환전을 요청해 1달러를 받는다. 그러면 테더 공급이 줄어 가격은 1달러로 올라설 것이다.

하지만 시장의 유동성 악화에 따른 코인런(대규모 환전) 위험에서는 자유롭지 못하다. 거래 상대방(운용기관) 위험도 상존한다. 발행사가 예치된 법정화폐를 빼돌리거나 정해진 환율대로 환전해주지 않을 경우 코인은 휴지조각이 된다. 발행한 코인의 가치만큼 실제 현금성 지급준비자산을 보유하고 있는지 등을 사용자에게 지속 보고하는 등 투명성 담보 조치가 필요한 이유다.

가상자산 담보형은 이더리움 등을 맡기면 스테이블 코인을 대출해주는 방식이다. 무담보형은 아무런 담보 없이 코인을 찍어낼 수 있어 안정성이 떨어진다. 대신에 짝꿍 코인을 만들어 스테이블 코인 가격 안정화를 뒷받침한다. 발행사들은 스테이블 코인 가격이 변하면 짝꿍과 연동한 알고리즘으로 유통량을 조절해 가격이 유지된다는 주장을 편다.

테라가 바로 무담보형이다. 테라도 가격이 1달러보다 낮아지면 유통량을 줄여야 가격을 떠받칠 수 있다. 이때 짝인 루나가 개입한다. 루나를 팔아 테라를 사들여 자사주처럼 소각하면 테라 가격이 1달러를 회복할 수 있다는 논리다. 루나의 가치 원천은 테라로 결제할 때 받는 수수료 수익이다.

그런데 왜 이번 사태에선 테라 가격이 반등하지 못한 채 역대급 폭락으로 이어졌을까. 발행사인 테라폼랩스는 테라를 사서 맡기면 연 19%대 이자를 준다는 탈중앙화금융(디파이)을 앞세워 투자자들을 끌어들였다. 하지만 역마진으로 고금리가 지속될 수 없을 것이라는 불안이 퍼지며, 이달 들어 테라 가격은 1달러를 밑돌았다. 유통량을 줄여도 대량 매물은 지속됐고, 차익거래는 들어오지 않자 가격이 고꾸라졌다. 테라와 엮인 루나도 동반 추락했다. 마치 뜨거운 바람을 불어넣던 풀무가 갑자기 작동을 멈춘 듯, 알고리즘이 고장난 것이다. 코인 가치가 유지될 것이라는 투자자의 믿음에 금이 갔기 때문이다. 하늘까지 올라갈 듯 보였던 ‘피라미드’는 의심이 벽을 타고 오르는 순간 ‘죽음의 소용돌이’로 빠져들었다.

테라·루나의 알고리즘 위험을 사전에 경고한 바 있는 월가의 분석가 앤디 케슬러는 최근 칼럼에서 “너무 많은 투자자들이 진짜 돈을 가짜 화폐와 거래했다 손해를 본 것”이라고 짚었다. 음악은 멈췄고 ‘의자 뺏기’ 놀이는 끝났다.

k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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