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생물을 묶어 생명을 불어넣다..이승택 개인전 '(언)바운드'

김준억 2022. 5. 24.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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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멩이를 쪼아 홈을 내고 홈을 따라 노끈을 묶어두자 딱딱한 돌은 물렁물렁한 돌처럼 보인다.

갤러리현대가 24일 선보인 이번 개인전의 지하 전시장에는 '비조각'의 출발점이 되는 작품 '고드랫돌'(1957)과 '묶기'가 적용된 대형 작품 '오지' 등을 전시했다.

이 돌을 노끈으로 묶어 각목에도 매어 보는 등 다양한 형태로 실험하다 '물렁물렁한 돌' 시리즈로 발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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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현대, 노끈으로 작업한 '묶음' 연작 집중 조명
이승택 '매어진 돌', 1989, 돌, 철사 [갤러리현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김준억 기자 = 돌멩이를 쪼아 홈을 내고 홈을 따라 노끈을 묶어두자 딱딱한 돌은 물렁물렁한 돌처럼 보인다. 옹기도 노끈으로 묶인 부분은 움푹 들어가고, 묶이지 않은 부분을 부풀려져 굳은 물체로 보이지 않는다.

돌이나 도자기, 캔버스 등을 묶자 익숙한 물성은 낯설어지고 무생물이 유기체로 바뀌는 듯한 착각을 준다.

이승택 '매어진 백자', 2017, 도자에 채색 [갤러리현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갤러리현대는 이승택(91)의 '비(非)조각' 작품 세계의 하나인 '묶음'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전시회 '(Un)Bound[(언)바운드]'를 개최한다고 24일 밝혔다.

함경남도 고원 출신으로 홍익대에서 조각을 전공한 작가는 1950년대 후반부터 서구의 근대적 조각 개념에서 벗어나 '비조각'이란 개념에서 출발한 전통적인 작품을 발표했다.

이승택의 비조각은 바람이나 연기, 불과 같은 물질적 양감이 없는 자연 현상을 시각적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만든 설치와 퍼포먼스 등 '비물질' 시리즈와 이번 개인전에 선보인 '묶기' 시리즈로 양분된다.

작가는 2020년 8월 세계적 전시기획자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와 만나 "'묶기'라는 행위는 재료의 물성에 대한 착시를 일으키며 생명력에 대한 환영을 불러오는 효과로 연결돼 점점 더 이 작업 과정에 몰두하게 된 것 같다"고 설명한 바 있다.

(서울=연합뉴스) 김준억 기자 = 갤러리현대가 24일 전시한 이승택 작가의 '고드랫돌'. 2022.5.24.

갤러리현대가 24일 선보인 이번 개인전의 지하 전시장에는 '비조각'의 출발점이 되는 작품 '고드랫돌'(1957)과 '묶기'가 적용된 대형 작품 '오지' 등을 전시했다.

고드랫돌은 발이나 돗자리를 엮을 때 쓰인 돌로, 날을 감을 수 있도록 가운데 홈이 있다. 작가는 대학생 때 덕수궁 미술관에서 우연히 접한 고드랫돌에서 영감을 얻어 짬이 날 때마다 돌멩이를 모아 깎아 뒀다고 한다. 이 돌을 노끈으로 묶어 각목에도 매어 보는 등 다양한 형태로 실험하다 '물렁물렁한 돌' 시리즈로 발전된다.

이승택 개인전 '(Un)Bound' 전시장 [갤러리현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1층 전시장에는 묶음 연작의 핵심 재료인 노끈을 활용한 작품들이 전시됐다.

전통적인 소조에서 노끈은 점토를 붙이기 위해 감아두는 재료지만, 작가는 작품 위에 노끈을 드러낸다. 이런 '역설의 시각화'를 통해 캔버스와 종이, 점토판 등은 입체적이고 유기체적인 물질성을 갖게 만든다.

'노끈 캔버스' 시리즈는 1960년대부터 실험 삼아 제작되다가 1972년 독일문화원이 주최한 '현대조각초대전'을 통해 처음 공개된 작품들이다.

이승택 '무제', 2018, 캔버스에 노끈, 55.3x70.2x3(d)cm. [갤러리현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층 전시장은 묶음 시리즈가 돌에서 도자기, 고서 등으로 변주되는 작품 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작품들을 배치했다. 또한 머리카락을 캔버스에 붙여 만든 연작들도 선보여 작가의 전위적 예술세계를 소개한다.

이승택은 1980년에 '비조각'이란 개념을 정립하는 등 한국 현대미술사에 큰 획을 그었지만, 그에 대한 평가는 2009년 백남준아트센터 미술상을 받으면서 본격화했다.

미술사학자 조수진은 이번 전시의 도록에 실은 '이승택의 묶기: 비조각의 방법론'이란 글에서 작가의 비조각을 "과거와 현재의 것, 한국과 한국 아닌 것, 조각과 조각 아닌 것, 순수예술과 순수예술이 아닌 것을 모두 묶어내어 새로이 예술화한 이승택만의 독자적인 조각 예술"이라며 "생성소멸하는 세계 안의 모든 존재자를 탐구하는 존재론으로서의 예술"이라고 평했다.

앞서 국립현대미술관은 2020년 작가의 방대한 작품 세계를 재조명한 회고전 '이승택-거꾸로, 비미술'을 개최했으며 런던 화이트 큐브 갤러리(2018), 뉴욕 레비고비 갤러리(2017) 등에서도 개인전이 열렸다.

전시는 25일부터 7월 3일까지.

이승택 작가 [갤러리현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justdust@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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