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학 아워홈 회장 별세, 한국전 참전·충무무공훈장 영예로 여긴 전천후 기업인

2022. 5. 24.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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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년 92세..2000년 계열 분리 후 매출 1조7000억원 기업으로 키워
"식당 하나 차리는 꿈이 이렇게 커졌네요. 같이 고생한 직원분들 감사합니다"
[비즈니스 포커스]

구자학 회장이 1981년 럭키그룹 시무식에서 임직원들에게 신년사를 전하는 모습. 사진=아워홈 제공


스웨덴이 자랑하는 세 가지가 있다. 복지 제도, 빼어난 자연환경, 발렌베리 가문이다. 발렌베리 가문에서도 제2차 세계대전 때 유대인 10만 명의 목숨을 구하고 실종된 라울 발렌베리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이 됐다. 

한국에서는 LG 구씨 가문이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일제 강점기 때 독립운동 자금을 댄 사실과 함께 오너 일가의 병역 사항이 일일이 공개된 영향이다.

대부분 군대를 다녀왔고 베트남전에도 참전했다. 이런 범 LG가에서도 국가를 위해 가장 헌신했던 것으로 평가받는 인물이 구자학 아워홈 회장이다. 그는 5월 12일 향년 92세로 별세했다.

구 회장은 1930년 7월 15일 구인회 LG그룹 창업자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재계에서 드물게 해군사관학교를 나와 기업을 일군 군인 출신 경영인이다. 군 복무 시절 6·25전쟁에 참전했고 충무무공훈장·화랑무공훈장·호국영웅기장 등 다수의 훈장을 받았다.

지금도 서울 마곡동에 있는 막내딸 구지은 아워홈 부회장의 방에는 아버지가 받은 훈장이 그대로 걸려 있다. 아버지에 대해 구지은 부회장은 “생전 아버지는 훈장을 가장 큰 자랑으로 여기셨다”고 전했다. 

구 회장은 미국 디파이언스대 상경학과를 졸업하고 1957년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자의 차녀 이숙희 씨와 결혼해 삼성·LG에서 두루 활약했다. 구 회장의 결혼은 대기업 삼성·LG 가문의 결합으로 많은 관심을 받았다. 

구 회장은 장남인 구본성 아워홈 전 부회장, 장녀 구미현 씨, 차녀 구명진 씨, 막내 구지은 아워홈 부회장 등 1남 3녀를 뒀다.


2021년 8월 집무실에서 구자학 회장이 구지은 부회장과 함께 있는 모습. 구 회장의 뒤로 집무실에 전시된 충무무공훈장 등이 보인다. 사진=구지은 부회장 페이스북


 

 사업보국 일념으로 삼성·LG에서 두루 활약

구 회장은 한창 산업화가 진행되던 당시 “나라가 죽고 사는 기로에 있다. 기업은 돈을 벌어 나라를, 국민을 부강하게 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산업에 뛰어들었다. 1960년 한일은행을 시작으로 호텔신라·제일제당·중앙개발·럭키(현 LG화학)·금성사(현 LG전자)·금성일렉트론(현 SK하이닉스)·LG건설(현 GS건설) 등 그가 거쳐 가지 않은 곳이 별로 없을 정도다. 

5월 12일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된 구 회장의 빈소에는 이재현 CJ그룹 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 등 범삼성가 인사들이 가장 먼저 찾았다. 이어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구광모 LG 회장, 구자은 LS그룹 회장, 구자열 LS 의장 등 범LG가 인사들이 빈소를 찾아 고인을 추모했다.

5월 13일에는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이 남편 김재열 삼성경제연구소 사장과 함께 빈소를 찾았다. 손경식 CJ그룹 회장, 정재은 신세계 명예회장,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부부, 정유경 신세계 백화점부문 총괄사장, 허창수 GS 명예회장,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도 빈소를 찾아 고인을 추모했다.

권영수 LG에너지솔루션 부회장은 “굉장히 엄격하셔서 회장님을 모실 때 많이 배웠다”며 “후배들도 많이 가르쳐 주셨던 올바른 분”이라고 애도를 표했다. 권 부회장은 평생의 은인으로 구 회장을 꼽는다.

금성사 사장이었던 구 회장이 과장 2년 차였던 권 부회장의 능력을 높이 평가해 신설 해외투자실 부장을 맡겼고 권 부회장은 만 39세에 임원에 올랐다. 조주완 LG전자 사장은 “구 회장님이 금성사 대표일 때 아주 각별한 기억이 있다”며 “회사와 직원들을 위해 많은 성과를 내고 지원해 주셨다”고 말했다.


구자학 회장이 1986년 금성사 대표이사 재직 시절 마이크로웨이브 오븐 공장 준공식에 참석한 모습. 사진=아워홈 제공


구 회장은 1980년 럭키 대표이사 재직 시절 기업과 나라가 잘되려면 기술력만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당시 세계 석유화학 시장 수출 강국인 일본과 대만을 따라잡기 위해 기술 개발에 모든 역량을 집중했다.

구 회장은 당시 “우리는 지금 가진 게 없다. 자본도, 물건을 팔 수 있는 시장도 없다. 오직 창의력과 기술, 지금 우리 위치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해 고민하고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 회장은 현장형 경영인으로 어느 공장에 가도 그의 손때가 묻지 않는 곳이 없었다.

구 회장은 “남이 하지 않는 것, 남이 못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1981년 당시에 없던 잇몸 질환을 예방하는 페리오치약을 개발했다. 1983년 한국 최초로 플라스틱 폴리부틸렌테레프탈레이트(PBT)를 만들어 한국 화학 산업의 전기를 마련했다.

1985년에는 화장품 ‘드봉’을 해외에 수출했다. 1989년 금성일렉트론에서는 세계 최초로 램버스 D램 반도체를 개발했고 1995년 LG엔지니어링에서는 굴지의 일본 기업들을 제치고 한국 업계 최초로 일본 플랜트 사업을 수주했다. 현재 LG의 근간이 된 주요 사업의 시작과 중심에는 늘 구 회장이 있었다.


구자학 회장이 1983년 한·독 수교 100주년 기념 사업 행사에 참석한 모습. 사진=아워홈 제공


 

 “작은 식당 하나 차리는 꿈이 이렇게 커졌다”

구 회장은 2000년 LG유통(현 GS리테일) FS사업부(푸드서비스 사업부)에서 분리 독립한 아워홈의 회장에 취임해 20여 년간 아워홈을 이끌었다. 그동안 아워홈의 매출은 2125억원(2000년)에서 2021년 1조7408억원으로 8배 이상 성장했다.

사업 포트폴리오도 다양해졌다. 단체 급식 사업과 식재 유통 사업으로 시작한 아워홈은 현재 식품·외식 사업과 함께 기내식 사업, 호텔 운영업까지 영역을 확장하며 글로벌 종합 식품 기업으로 거듭났다.

LG에서 화학·전자·반도체·건설·화장품에 이르기까지 핵심 사업의 기반을 다진 경영자가 LG유통에서 가장 작은 아워홈 사업부를 분사 독립할 때 주변에서는 의아한 반응이었다. 역량에 비해 너무 작은 규모의 사업이었다. 구 회장은 작은 사업부를 매출 2조원에 가까운 지금의 종합 식품 기업 아워홈으로 성장시켰다.

구지은 부회장은 5월 8일 어버이날을 맞아 구 회장을 만나고 난 뒤 직원들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아버지의 역량에 비해 작은 규모의 사업들이라는 의견들이 많았지만 남다른 모습을 보이셨다”며 “‘난 아주 좋아, 크게 성장시키면 된다, 회사 이름도 아워홈 그대로 쓸 거다, 얼마나 좋아 아워홈!’ 하며 의욕에 넘치던 모습을 기억한다”고 회고했다. 

구 회장은 ‘국민 생활과 가장 밀접한 먹거리로 사업을 영위하는 식품 기업은 막대한 사회적 영향력과 책임감을 동시에 짊어져야 한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아워홈을 경영했다. 국민 건강을 최우선 가치로 삼았다. 

구 회장은 음식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다. 먹는 만큼이나 만드는 과정도 좋아했다. 미국 유학 중 현지 한인마트에 직접 김치를 담가 주고 용돈벌이를 했다. LG건설 회장 재직 당시 LG유통 FS사업부에서 제공하는 단체 급식에 개선할 점이 많다고 느꼈다. 구 회장은 2000년 아워홈 회장에 취임하면서 맛·서비스·제조·물류 등 모든 과정에 깊이 관여했다.

특히 그는 미래를 내다보고 대비하는 혜안을 가지고 있었다. 구 회장은 단체 급식 사업도 화학·전자와 같이 자신이 몸담았던 첨단 산업 분야에 못지 않은 연구·개발(R&D) 인프라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단체 급식업계 최초로 2000년 식품연구원을 설립했다.

구 회장은 2000년대 초 미래 식음 서비스 산업에서 생산과 물류 시스템이 핵심 역량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당시 70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생산·물류센터 부지를 찾아 전국을 돌았다.

현재 아워홈은 업계 최다 생산 시설(9개)과 물류센터(14개)를 운영하며 전국 어디든 1시간 내에 신선한 식품을 제공하고 있다. 콜드 체인 시스템이 물류 핵심 요소로 대두되기 전에 신선 물류 시스템을 선제적으로 구축해 업계 최고 수준의 물류 인프라를 자랑하고 있다.

해외 진출도 빨랐다. 아워홈은 2010년 중국 단체 급식 사업을 시작했다. 2017년 베트남 시장에 진출했고 2018년에는 인수·합병(M&A)을 통해 기내식 업체 HACOR를 인수하며 기내식 사업에도 진출했다.

2021년에는 한국 업계 최초로 미국우정청(USPS)과 구내식당 위탁 운영 계약을 체결했다. 폴란드 법인을 설립해 유럽 시장에도 진출했다. 구 회장은 와병에 들기 전 아워홈 경영회의에서 ‘국민 건강’을 최우선 가치로 삼았던 경영 철학과 소회를 밝혔다.


2009년 아워홈 비전 선포식에 참석한 구자학 회장. 사진=아워홈 제공


 
“요새 길에서 사람들을 보면 정말 커요. 언뜻 보면 서양 사람 같아요. 좋은 음식 잘 먹고 건강해서 그래요. 불과 30년 사이에 많이 변했습니다. 나름 아워홈이 공헌했다고 생각하고 뿌듯합니다.

은퇴하면 경기도 양평에 작은 식당 하나 차리는 게 꿈이었는데 이렇게 커져 버렸어요. 그동안 같이 고생한 우리 직원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해요.”

- 고(故) 구자학 아워홈 회장(19300715 - 20220512)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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